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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지크)애정의 길이
Caption 하이랜더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는 뇌피셜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기에 반응해 머리카락이나 손톱이 자란다는 것도 뇌피셜입니다. 디오와 지크하트는 동거는 하고 있지 않지만 지크하트가 편할 때 디오 집에 놀러가서 자면서 평범하게 연애하고 있는 사이입니다. 꾸금은 아니지만 그렇고 그런 뉘앙스는 있습니다. 제 침실 문을 남의 방 들어가듯 정중하게 노크한 디오가 안으로 들어섰다. 둥글게 솟은 이불의 주인공은 일어나는 시늉도 않고 있었다. "하이랜더. 이만 일어나라." "싫어..." 애교라도 있었으면 귀엽게 봐주기라도 하지. 디오는 혀를 찼다. 정작 본인은 그를 봐주느라 아침이 한참 지나고도 지크하트를 깨우러 왔다는 건 새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벌써 점심 시간이다. 적당히 하고 일어나." "차라리 죽고 말지..." 한 마디도 안 지는 지크하트의 말대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건 디오의 익숙한 버릇이었다. 디오가 뭐라 하든 말든 자기 말을 하는 지크하트처럼, 그의 말을 싸그리 무시한 디오가 탁상에 물 컵을 내려놓았다. 푸르게 빛나는 커다란 손이 이불을 당겨 걷어냈다. "나잇값은 언제할 거냐? 애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그리고 디오는 우뚝 멈췄다. 햇빛도 없는 방에서 눈만 찡그린 지크하트가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글쎄... 그냥 내버려두라니까..." "...이게 뭐지?" "이젠 사람보고 이거란다... 참나..." "적당히 하고 좀 일어나라. 지금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진 아나?" 디오의 목소리가 딱딱해지며 힘이 들어갔다.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것을 대강 걷어낸 지크하트가 하품을 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자꾸 귀찮게... 엉?" 지크하트가 제 손가락에 걸린 것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실처럼 보이는 그것은 끝이 부드럽게 말려 있었고 매끄러웠으며, 길이가 마치 지크하트의 변덕처럼 뒤죽박죽이었다. 뚱하니 그것을 만지작거리던 지크하트가 김샜다는 듯이 손을 휙 넘겼다. "뭐야. 머리카락이잖아." "놀라는 척이라도 하지 그래."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뭘. 이렇게 길게 자란 건 처음인가..." 디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단 거군?" "오오냐." 재차 늘어지게 하품을 한 지크하트가 디오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 밀었다. "너 때문이야." "...하?" "어제도 같이 잤잖아." 머리카락을 정기를 먹고 자라는 콩나무 얘기하듯 말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지크하트밖에 없을 것이다. 디오가 좀 더 캐물어본 결과, 하이랜더의 신혈은 육체를 재생시키는 동시에 몸의 성장과 노화를 막고 있다고도 했다. 그 때문에 머리카락도 손톱도 자라지 않고, 뭘 먹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크하트의 몸이 조금 '성장'해버릴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나랑 잤을 때라고." "네놈이 어지간한 마족이어야 말이지. 몸에 어느 정도 영향이 오긴 하나 봐. 그래봤자 머리카락 좀 자라는 정도라 신경 안 썼지만. 좀 길어봤자 자르면 그만이기도 하고." 디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럼, 지금까지 말도 않고 잘랐다고? 이런 중대사항을? 말도 안 하고 처리했단 거냐?" "중대사항 같은 소리 하네. 원래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거든? 너도 머리 길어서 거추장스럽다고 잘랐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나?" 오늘따라 쓸데없이 끈질기다고 뭐라 하려던 지크하트는 문득 이상함을 눈치챘다. 디오가 어느새 그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에게 일어나라고 독촉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눈도 묘하게 초롱초롱한 것이, 중대사항 운운했던 것치고는 전혀 화가 나지 않은 것은 명백했다. "...너 뭐하냐?" "어디까지 자라나 궁금해졌다." 솔직한 대답에 지크하트는 화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짜증이 쏙 사라지는 걸 느끼며 지크하트가 무심결에 반문했다. "어디까지 하려고?" "......" "미리 말해두지만 죽순처럼 쑥쑥 자라지 않거든?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뭣보다 어제보다 더 많이 하면 복상사로 죽거든!" 디오는 지크하트가 아까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즉, 무시했다. 귀찮음이 가득한 눈으로 디오를 올려다보던 지크하트였지만, 그는 드물게도 순순히 반항을 포기했다. 더 말해봤자 안 통할 것 같았거니와, 무엇보다 디오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만큼이나 지크하트도 디오의 반응이 신선했던 탓이었다. 쇄골 언저리까지 자란 흑발을 만지는 손은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가슴이 간질간질해질 정도였다.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만 지크하트가 그의 손에 툭 뺨을 기댔다. "너도 참 특이해. 이런 게 뭐라고 꽂혀서는."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하지 않았나." 뜻밖의 말에 지크하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오가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 위에 입술을 맞댔다. "사랑하는 연인이 그런 말을 하면, 누구라도 심장이 뛰는 게 당연하지 않나?" "......바보야?" 디오가 소리 없이 웃었다. 흥이 깨졌다는 듯 투덜거리며 지크하트가 그를 밀어냈지만, 붉어진 뺨이 이미 들통나버린 뒤였다. 애꿎은 디오의 팔뚝만 긁으며 지크하트가 꿍얼거렸다. "그동안 손톱도 이렇게 자라다 말다 했는데, 나한테 얼마나 관심이 없었던 거야." "미안하게 됐군." "농담이야. 진심으로 반응하긴." 디오가 지크하트의 손을 끌어다 손톱에도 쪽 입맞췄다. 마지막 투정까지 쏙 들어가게 하는 애교에 지크하트의 웃음이 연이어 터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는 정말 날 좋아하는구나..." 놀리고 싶은데도 그럴 수가 없다니까. 뭔가 더 말하려는 디오의 입을 이번엔 지크하트가 막았다. 잠은 이미 다 깨어버렸지만, 침대 밖으로 벗어나는 건 한참 후가 될 듯했다. 컵에 담긴 물이 고요히 물결치다가 이내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