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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지만 지크하트 생일 기념 글입니다.
그레이엄이 나오지만 커플링은 아닙니다.
“왜 여기 혼자 있어?”
지크하트는 제게 건네진 물음에 금방 답하지 않았다. 길다랗게 자란 풀밭을 침대 삼아 누워 줄곧 질겅대던 풀이 춤추듯이 휘적휘적 흔들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레이엄이 그의 옆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다들 파티해주려고 벼르고 있던데.”
“매년 있는 날이 뭐가 대수라고 저렇게 열심이람. 올해는 뭐라고 둘러댈지 감도 안 와.”
그제야 입을 연 지크하트가 일어나 앉았다. 가벼운 숨과 함께 날아간 풀이 바람에 얹힐 듯하다가 그의 손 언저리에 툭 떨어져내렸다. 그레이엄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막상 안 챙겨주면 서운할 거면서.”
“아니거든.”
“너를 내가 모를까. 너보다 더 잘 알지.”
동료들에게도 엄격하고 농담도 안 통하는 그레이엄이었지만 지크하트에게만큼은 늘 부드럽고 다정하게 굴었다. 막내만 차별한다며 누군가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놀려대어도 그 자신조차 부정하지 않을 정도였다. 익숙하게 저를 쓰다듬는 손에 순순히 머리를 맡기고 있던 지크하트가 이내 그의 무릎에 풀썩 드러누웠다. 도로 올려다본 하늘엔 작고 초라한 구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레이엄.”
“음?”
“내가 축하 같은 걸 받아도 될까?”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조금 느려지나 싶더니 그의 이마를 약하게 때렸다. 피할 틈도 없이 얻어맞은 지크하트가 입을 비죽였다.
“그거 나쁜 버릇이니까 고치라고 했을 텐데?”
“내 맘이야.”
“고집만 세서는.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삐뚤어졌지?”
“헹, 그거야 당연히 그레이엄… 아아, 아파! 아프다구!”
그레이엄에게 코를 쥐어잡혔던 지크하트가 입술을 부리마냥 내밀며 툴툴거렸다. 심술과 불만이 가득한 눈매가 영락없는 열 살 배기 소년이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은 그레이엄이 흐트러진 흑발을 슥슥 빗어넘겨주었다.
“축하 받는 데에 자격 같은 건 없어. 그런 복잡한 생각 말고, 마음 편하게 기뻐하고 즐기면 돼.”
“……매번 같은 잔소리.”
“네가 매번 같은 이유로 슬퍼하니까.”
지크하트가 입을 다물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그레이엄의 미소는 늘 그랬듯 인자하고 온화했다. 그의 피를 받아 하이랜더로서 처음 눈을 뜬 날부터 지금까지, 지크하트라는 사람에게 실망을 해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느리게 깜빡거리는 은빛 눈동자가 일순 무겁게 젖어들다가, 꾹 내리감기며 그 색채를 감추었다. 감긴 눈꺼풀 위로 익숙한 체온이 내려앉으며 눈가를 덮었다.
“지크하트.”
“……응.”
“쉽게 떨치기 어렵다는 건 안다. 너는 다정하니까. 남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너 자신이라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겠지.”
바람이 불었다. 풀이 부딪히는 소란한 소리가 그레이엄의 어조를 흩트렸다. 그것을 잃지 않도록, 지크하트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청각에 집중했다.
“그러니 오늘만이라도 괜찮아. 힘들어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행복하렴.”
“…그레이엄이, 내 곁에 없어도?”
“하지만 이렇게 축하해주러 왔잖아. 내년에도 만나러 올게.”
퍼뜩 눈이 떠졌다. 그를 다독이던 그리운 손길도, 베고 누웠던 아늑한 무릎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위태롭게 떨리는 눈동자에 비치는 건 여전히 홀로 머무르는 작은 구름의 그림자뿐이었다. 북받친 감정으로 흐트러졌던 숨이 느리게 가라앉았다. 지크하트가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바람이 그친 공간에 풀내음만이 아득하도록 짙었다.
“나는 정말… 평생 너는 이기지 못할 거야…”
뒤늦게 헛웃음이 담긴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팔을 거두고 재차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크하트는, 미약하게나마 웃고 있었다.
“꼼짝없이 내년까지 살아야 하잖아.”
분에 넘치게도 과하고 그리운 사랑이다. 그것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삼킬 수 있도록 지크하트는 오래도록 그와 함께 있던 자리에 누워 있었다. 또 다른 사랑들이, 그를 혼자 두지 않도록 데리러 올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