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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입니다.
발렌타인 기념입니다.
"악!!"
디오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누가 들으면 죽는 줄 알겠군."
"아 시끄러워... 스읍... 방심하고 있는데 훅 들어오네..."
상자들로 두들겨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지크하트가 뚱하게 고개를 들었다. 최선을 다해 포개고 밀어넣은 것처럼 보이는 형형색색의 상자들이 좁은 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비죽비죽 밀려나오는 중이었다. 개중엔 결국 모서리가 구겨지거나 가장자리가 움푹 들어간 안타까운 녀석들도 섞여 있었다.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던 지크하트가 한숨과 함께 가방을 내려놓았다.
"사람의 멍청함은 끝이 없다지만 어떻게 매년 이 난리가 나는 걸 까먹는다냐... 이게 다 내가 너무 잘난 탓이겠지..."
"그건 네가 잘난 멍청이란 뜻 아닌가?"
"너는 진짜 그놈의 주둥아리가 문제야. 말하기 전에 생각했냐?"
"일 분 정도... 아니, 삼십 초쯤 했다."
"하 쫌... 됐다 그냥."
대화를 포기한 지크하트가 초콜릿 상자를 가방에 차곡차곡 밀어넣기 시작했다. 조그만 장난감이 들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색지를 곱게 접어 포장한 것까지, 종류도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빼곡히 찬 글씨가 절로 연상되는 두툼한 편지봉투도 있었다. 조그맣게 접힌 쪽지부터 제 이름표만 겨우 적힌 상자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던 지크하트가 아예 쭈그려앉아 자리를 잡았다. 확실히 대충 쑤셔넣는다고 정리될 물량이 아니긴 했다.
'......줘도 안 들어가겠군.'
디오는 재킷 안주머니를 슬쩍 만져보았다. 한 달 전부터 온갖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돌려보며 고민하다가 어렵게 손에 넣은 한정판 초콜릿이었다. 도중에 레이에게 들킨 바람에 적당히 둘러대느라 돈이 두 배나 나가 피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심 좋은 선물을 골랐다고 흡족해했음에도, 디오는 눈 앞의 물량에 압도되는 것만 같았다. 딱 봐도 수제 초콜릿일 듯한, 지크하트의 이름 철자가 새겨진 초콜릿이 담긴 봉투까지 발견하자 기분은 더 바닥까지 떨어졌다. 저로서는 흉내도 못낼 정성이었다.
"뭘 그렇게 보냐?"
디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미 가방을 한가득 채운 지크하트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디오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고개를 저었다. 꺼내지 못한 상자가 조금 묵직하게 늘어졌다.
"...아무것도 아니다."
"뭐야. 난 또 도와주려고 그러나 했네."
불쑥 심술이 솟아 대꾸하는 목소리가 삐딱해졌다.
"그걸 왜 이몸이 도와줘야 하지?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해라."
"하아? 안 그래도 그럴 거거든?"
영문 모르고 말로 얻어맞은 지크하트가 발끈했다. 결국 가방의 양옆 포켓과 바지 주머니까지 꽉꽉 쑤셔넣고서야 초콜릿 수납이 끝이 났다. 그때까지도 디오는 언짢은 속내를 마저 숨기지 못하고 부루퉁하게 서 있었다.
"이걸 언제 다 먹냐."
"남한테 주면 되지 않나."
"받은 성의가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넌 진짜 연애하기 힘들겠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가방끈을 쥔 디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깟 연애 관심도 없다고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입은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착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내내 죄없는 가방을 노려보던 디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준비한 것이 야속하게도 그 품의 상자가 주인을 찾아가기엔 영 그른 모양이었다.
"야."
"...뭐냐."
반 걸음 앞서 있던 지크하트가 대강 걸치고 있던 재킷 안쪽을 뒤적거렸다. 입지도 않을 재킷에 뭘 넣어두었나 싶었던 찰나, 무언가가 휙 날아와 디오는 얼결에 받아들었다. 보라색 리본이 달린 손바닥만한 상자였다.
"이제 됐지? 얼굴 좀 풀어."
"...초콜릿이 먹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럼 버리든가. 어쨌든 난 줬다?"
지크하트가 휙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남에게 받은 건 안 준다더니. 의아한 얼굴이 된 디오가 손에 쥐어진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묘하게 따뜻한 상자는 계속 만지작거린 듯 리본이 살짝 풀려 있었고 모서리는 뭉툭하게 닳아 있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던 디오의 표정이 서서히 미묘해졌다. 휙 고개를 돌려 바라본 순간, 꽤 멀어졌음에도 지크하트의 귀가 붉어진 게 확연히 보였다.
디오는 곧장 뛰기 시작했다. 하나를 주었으니, 그의 선물이 들어갈 공간은 비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