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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디오지크)공간
Caption 멸자님의 낙원의 사람 을 읽고 감명을 받아 쓰고 있습니다. 제 글은 어디까지나 팬창작이므로 멸자님의 방향성이나 묘사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낙원의 사람이 오피셜입다 오피셜공식 저는 야사...) 너무나 멋진 글 늘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낙원의 사람 바로가기 I~IV V~VII VIII~XI 디오는 자고 있었다. 그것도 일하는 도중에 깜빡 잠든 모양이었다. 발을 반쯤 들인 채로 멈춰서서 잠깐 고민한 지크하트는 일단 들어서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참 신기하게도 잠들었구만.” 한 손에는 서류, 턱을 괸 손에는 펜이라니.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펜을 살그머니 빼낸 지크하트가 슬쩍 허리를 숙여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낙원 밖에서도 그 흔한 뒤척임 하나 없이 죽은 것처럼 곤히 자더니, 사람이 들어와도 모르는 것을 보면 몰래 업어가도 다음날은 되서야 깰 것 같았다. 정말이지 저런 무방비한 꼴로 용케도 밖에서 살아남았군. 속으로 혀를 차며 지크하트는 책상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왔을 때와 같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여러 색의 태그로 분류하여 쌓아놓은 서류며,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은 키보드, 부친과 함께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 액자까지도. 관리되지 않은 것, 버려진 것, 닳거나 부서진 것에 익숙한 지크하트는 또한 누군가가 성실히 가꾸고 정리한 것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잘 펴고 문질러둔, 행여 날아갈까 살짝 틈새에 끼워둔 ‘바보’란 글귀의 초콜릿 은박지도. 지크하트는 디오를 깨울까 조금 고민했다. 잠깐만 자고 말 거면 소파에서 눈이라도 붙이는 게 낫지 싶은데.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이 따뜻하게 이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연구실에 바람처럼 살랑거렸다. 지크하트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매만졌다. 어깨에 걸려 있던 붉고 짙은 머리칼이 흘러내려 지크하트의 손가락에 걸쳐졌다. 곤하게 잠든 디오의 미간은 마치 소년의 것처럼 말랑하게 풀려 있고, 가볍게 닫힌 입술은 꿈 속에서 누구와 대화하는지 미미하게 달싹거리고 있었다. “…이런 얼굴…이었지.” 지크하트는 디오와 동행하던 첫날의 기억을 느릿하게 긁어모았다. 아무리 저를 구해줬다지만, 변이의 기미가 보이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것도 지크하트였는데도. 잘 수 있을 때 자두라는 말에 순순히 누워, 코도 안 골고 얌전히 잠들던 그를 떠올리며 지크하트는 피식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리석다고 하기엔, 그 경계심도 꿍꿍이도 없는 모양새에 싸울 필요는 없겠노라고 안심한 그도 변명거리가 없긴 했다. ‘다시 외부로 나가는 일도 멀지 않았다.’ “…….” 지크하트가 처음 연구실에 들어왔던 날, 디오는 그렇게 말했다. 잠도 잊을 만큼 연구에 전념하는 디오를 보고 있자면 그 말이 단순한 허언이 아니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샌가부터 지크하트는 디오의 말을, 그가 보이는 태도나 표현을 의심하지 않았다. 밖에서 그랬던 것처럼. 침대에 누워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대고 눈을 마주치며, 손이며 숨결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그의 존재를 공간의 일부처럼 편안히 받아들이던 그 시절처럼. 정말 바보는 누구일까. 이미 한 번 금이 간 가슴을 끌어안고 그가 심어주었던 무수한 추억이 상해갈까 미련하게 우울해했던 사람은. “…그러게. 바보라니까.” 엷은 웃음기가 배인 속삭임이 그의 귓가에 닿을 듯하다 흩어졌다. 마냥 행복과 희망에 벅차오르기엔 한참은 이르다. 그럼에도 지크하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으로 섬세하게 떨리고, 머리카락을 더듬어 올라간 손은 드러난 귀 언저리에서 망설이듯 멈추었다. 한참 멈춰 있던 지크하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내듯 옆으로 걷어내자 유독 발그스름하고 곧은 이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디오.” 조근조근, 겨우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지크하트가 소근거렸다. “다시 외부에 나가면………” 연구실이 고요해진다. 깊게 잠든 이는 묵묵부답이었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일어선 지크하트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가 제 것처럼 디오의 가운을 찾아 들고 소파에 가서 누웠다. 몸을 반쯤 구겨넣어야 하는 건 불만이지만 가운에서 풍기는 익숙한 향을 맡다보면 그런 불평도 이내 가라앉았다. 지크하트가 디오 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남의 숨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한 것도 실로 간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