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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디오지크)내 것이 아닐지라도
Caption 멸자님의 낙원의 사람 을 읽고 감명을 받아 쓰고 있습니다. 제 글은 어디까지나 팬창작이므로 멸자님의 방향성이나 묘사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저는 3차입니다). 늘 멋진 글 감사합니다! 낙원의 사람 바로가기 I~IV V~VII VIII~XI XII~XV "......어린애군." 숫돌을 스치는 쇳날의 속삭임이 멎고, 숨죽였던 부산한 소음이 고의로 몸을 부풀리다 멈춘 즈음에야 지크하트는 결론을 내렸다. 디오는 여전히 반듯하게 누워 곤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리닫힌 눈꺼풀은 옅은 떨림 한 번도 없고, 이불 아래 가지런히 내린 손도 무방비한 채였다. 지크하트는 손에 쥔 낡은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익히 아는 길이 닳은 종이의 마지막 호흡처럼 남아 있었다. 방의 그림자처럼 한참 말없이 서 있던 지크하트는 이내 쪽지를 다시 디오의 가방으로 밀어넣었다. 다른 손에 내내 쥐고 있던 나이프가 허리에 맨 포켓에 느릿하게 꽂혔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일의 생존과 공존을 위해 의심을 해결해야 했다. 현금, 보물, 유산, 모든 재화의 값어치가 떨어진 세계에서 방심은 가장 큰 사치가 되었다. 자신을 노리는 것이 감염체만이 아님을 안 뒤로는 더더욱. 그들은 어떨 땐 길을 잃은 생존자처럼 굴기도 했고 어떨 땐 가감 없이 목적을 드러내며 접근하기도 했다. 협박과 회유, 감정에 의존한 호소, 혹은 뻔뻔한 희생의 요구. 방법은 매번 달랐으나 지크하트는 그들을 구분하는 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의 디오처럼, 그들은 안심과 신뢰를 포기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지크하트의 손이 디오의 이불을 들출 듯 뻗어가다 멈추었다. 낮은 한숨과 함께 잠든 이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엔 색채와 어울리지 않는 그늘이 져 있었다. 결국 손을 거둔 지크하트가 지친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디오가 보여주는 무방비한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았던 탓이었다. 습격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안락함에 젖어 있다든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도록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든가. 지크하트에겐 얼룩진 그리움으로 남은 것들을, 홀로 남는 그 순간까지도 풍족히 누릴 수 있었다든가. "네가 있던 곳도 낙원이었겠구나..." 들어주는 이 없는 독백이 허공을 맴돌다 스러졌다. 아직은 방심할 수 없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지크하트는 눈을 내리감고 두 사람 분의 안전을 확보할 계획을 차분히 곱씹고 있었다. 자기 위안과 동정은 때로 타인을 위해 조금의 수고를 들이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잠이 오지 않는 서러운 밤을 견뎌야 할 때에도. 침묵이 소란한 막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