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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자님의 낙원의 사람을 읽고 감명을 받아 쓰고 있습니다.
제 글은 어디까지나 팬창작이므로 멸자님의 방향성이나 묘사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저는 3차입니다).
늘 멋진 글 감사합니다!
낙원의 사람 바로가기
I~IV
V~VII
VIII~XI
XII~XV
아이가 내민 것은 귀퉁이가 조금 우그러진 네모난 초코바였다.
한참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크하트는 시선을 옮겨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숱이 많은 적발을 질끈 올려묶은 아이는, 먼지투성이가 된 그를 보고도 겁을 내지 않았다. 앙 다문 입술은 고집스러웠고, 눈썹에는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힘이 실려 있었다. 지크하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후드를 푹 눌러쓴 실루엣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성별은 알 수 없었으나, 지크하트를 경계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 싫어해요?”
지크하트는 다시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럼 왜 안 받아요?”
“배가 안 고파서.”
아이는 대답 대신 발돋움까지 하며 그에게 손바닥을 쭉 펴들었다.
“그럼 나중에 먹으면 돼요. 기분 좋아지게요.”
지크하트는 정말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이가 내보이는 호의가 싫은 건 아니었다. 낯설거나 어색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캠프에 물자를 갖고 온 것도 벌써 다섯 번은 넘었으므로. 그럼에도 지크하트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그가 손을 뻗은 건 순전히 발돋움을 하고 있던 아이의 다리가 조금씩 떨리는 것을 눈치채버린 까닭이었다.
“우리 아빠 구해줘서 고마워요.”
아이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지크하트는 그제야 그 아이를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캠프로 오던 중 발견했던 생존자 부녀. 감염체가 되어 그들을 공격하려던 여성이, 그 아이와 같은 머리끈을 매고 있었다는 것도. 아이가 아버지라고 불렀던 사내는 정작, 지크하트의 칼질 한 번에 죽어버린 여인을 보며 오래도록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기어이 지크하트의 뺨에 주먹을 후려갈겼을 만큼.
지크하트는 제 손에 들린 초코바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주머니 안에서 꼭 쥐고 있었을 그것은 녹아서 물렁했고 아직 따뜻하기까지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땐, 후드를 쓴 사람 곁으로 돌아간 아이가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의 빈 손을 찾아 쥔 아버지는, 잠시 지크하트 쪽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숙여보이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크하트는 그것이 감사와 사과의 인사였다는 걸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
고귀한 희생 정신이나 투철한 책임감 때문은 아니었다.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민망한 알량한 죄책감, 그리고 조금의 절박함과 슬픔. 끝내 잡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들 대신, 누구라도 건져올리고 싶다는 필사적인 간절함. 자신을 여기로 밀어준 사람들의 삶을 빚지고 있다는 괴로움. 비틀림으로 시작되어 단단해지지 못한 마음엔 보람과 기쁨 대신 자책만이 켜켜이 쌓여간다. 이것은 내가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닌데. 여기에 있지 않은, 더 낫고 상냥한 누군가가 받아야 마땅했을 것들이었는데. 길어지는 상념은 금세 우울이 되어 그의 발목에 무겁게 휘감겼다. 역시 거절하는 것이 좋았을까. 무심코 초코바를 꾹 움켜쥔 지크하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장지 사이가 기이하게 바스락거렸다. 정확하게는 그 사이에 끼워진 무언가가 있었다. 의아하게 손을 펴본 지크하트가 두껍게 처리된 포장지를 들춰보았다.
“…….”
버려진 담뱃갑을 주워다 꼬깃꼬깃 편 것에, 불에 그을려 쓴 듯한 글씨가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지크하트는 이번에야말로 숨 쉬는 것도 잊고 우뚝 멈췄다. 발치 아래에서 어렵사리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이, 흙바람에도 꿋꿋하게 머리를 펼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참 글귀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며 작은 꽃에 머물렀다. 아이의 색을 닮은 붉은빛깔의 꽃잎이었다.
“—나도,”
뒤늦게 열린 그의 입에서 조금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의 이 무겁고도 죄스러운 마음도 덜어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더 당당하게 살아도 될 것 같다고,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모두가 구해준 생명은 결코 허무하지 않았다고, 전해줄 수 있었더라면.
그러면 당신들도, 고마워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살아가라고 말해주었을까.
내가 나를 스쳐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처럼.
닿지 않는 목소리와 마음은,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의 발자국으로 이어진다. 지크하트는 다시 캠프 밖으로 걸어나갔다. 한 손엔 아직 건네받았던 초코바를, 모양이 우그러질 만큼 꾹 쥐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