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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디오지크)달고 씁쓸한
Caption 멸자님의 낙원의 사람 을 읽고 감명을 받아 쓰고 있습니다. 제 글은 어디까지나 팬창작이므로 멸자님의 방향성이나 묘사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저는 3차입니다...) 너무나 멋진 글 늘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낙원의 사람 바로가기 I~IV V~VII VIII~XI “안 자고 있었나.” 초콜릿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던 지크하트가 고개를 들었다. 디오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크하트는 방금 까서 넣은 초콜릿을 보란 듯이 혀에 걸쳐 내밀어보였다. 단정한 눈썹이 금세 찌푸려지는 걸 보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초콜릿을 도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달착지근한 향이 눅진해진 식감과 함께 입안에 가득 고였다. “너는 왜 왔는데. 감시하러?” “순찰이다.” “그게 그거지.” 지크하트가 삐딱하게 대꾸했다. 디오는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만약을 대비해서인지 작지도 않은 방에는 침대 곁에 두는 간이 의자 따위도 없어, 디오는 대화가 길어질 것 같거든 곧잘 침대 한켠을 차지하고 앉곤 했다. 지크하트는 무심코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았다. 영양 주사는 다 맞았고, 채혈도 했고, 신체 검사인지 뭔지도 순조로웠다. 그럼 그냥 놀러온 건가. 연구원들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나보구만. 심드렁하게 결론을 내리던 지크하트는 문득 디오가 그를 빤히 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뭐.” 시비를 털려던 어조가 느리게 고분고분해졌다. 디오는 잠시 말없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듯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뭔 생각인가 싶어 같이 마주보고 있자니 불현듯 기시감이 밀려왔다. 낙원의 바깥, 그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지냈던 시절.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때에도 이렇게 눈길이 얽히곤 했었다. 오가는 말이 없는 침묵에서도, 의미 없이 반복하는 사소한 동작에서도 평온을 느꼈던 시간들. 지크하트는 예전처럼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칼을 만지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잠은 잘 자는 것 같군.” 담담한 어조에 상념이 깨졌다. 그가 저를 관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 지크하트는 괜히 억울해졌다. 그의 기분을 알 턱이 없는 디오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초콜릿이었다. “더 필요한 건 없나.” “말하면 갖다주시게?” 배려해주는 걸 알면서도 본심과 다르게 튀어나온 말투는 삐딱했다. 디오는 담담히 대답했다. “가능한 거면.” “진짜 태양.” “…….” 디오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제가 말해놓고도 속이 쓰려 지크하트는 애꿎은 이불만 쥐어뜯었다. 길어지는 침묵이 거북해질 즈음이 되어서야 지크하트는 제 덫에 걸린 사람처럼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아무렴 진심으로 말했겠냐고.” “…….” “이럴 거면 처음부터 거짓말은 왜 했냐?” 디오는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굳이 변명을 대자면, 지크하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것은 임무였고, 지크하트를 알게 된 직후까지도 그것은 생존을 위함이었으며, 지크하트를 알아가기 전까지는 그저 약간의 고민과 진실을 섞어 대답하면 될 일이었다. 지크하트를 알아간 뒤로는 모든 게 반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크하트를 처음 봤을 무렵의 디오가 지크하트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선택지를 상상도 못했던 것과 같았다. 다만 이것을 전부 말로 풀어놓을 자신이 없었다. “할 말 다했으면 가라. 졸려.” 뭔가가 나풀거리며 시야에 떨어졌다. 무심결에 그걸 잡아쥔 디오가 시선을 내렸다. 얼마나 오래 만지작거린 것인지 깔끔하게 펼쳐진 은박지가 그의 머리색이 비칠 만큼 반질거렸다. 그냥 자도 된다고 말하려던 디오는 곧 얌전히 그의 침대에서 일어났다. 말과 달리 지크하트는 눕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초콜릿을 넣어왔던 주머니에 은박지를 밀어넣은 디오가 문득 갈 곳을 잃은 것처럼 주춤거렸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누구도 솔직하지 못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향한 눈빛만이 또렷하고 선명했다. “안 해.” 지크하트가 불쑥 내뱉었다. 디오가 눈을 깜빡였다. “후회 안 한다고.” “…….” 디오는 뒤늦게 제가 차마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떠올렸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기 전에, 지크하트는 풀썩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결국 끝까지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 디오가 전등을 꺼주고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 길에 무심코 꺼내 본 은박지에는 손톱으로 긁어 써내려간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디오는 걸음도 멈추고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바보’ “……하.” 실소 비슷한 것이 툭 터져나왔다. 그래도 미미하게 말려올라간 입꼬리가 조금 전보다 가벼웠다. 지금은 이것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