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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을 위해 연재를 강행합니다.
페이트 기반 지크프리트(단테님 자캐) x 파에톤(눙님 자캐)의 2차 창작입니다.
창공의 폴라리스와 이어지는 스토리로, 창공의 폴라리스를 읽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천逆天의 폴라리스
지크프리트 x 파에톤
"윽...!"
화살에 찢겨나간 팔에서 피가 길게 이어졌다. 파에톤이 괴로운 듯 눈을 찡그렸지만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사납게 포효한 아스프로스가 제 몸으로 하늘을 들이받듯이 솟구쳤다. 하얀 갈기를 휘날리며 그가 향하는 곳은 황금 차륜이 박힌 하늘의 꼭대기였다.
"젠장, 젠장...!! 왜 안 끊어지는 거야!"
지크프리트는 어떻게든 고삐를 끊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얼기설기 얽어놓았다고 생각했던 매듭은 지크프리트가 힘으로 풀어내려 할수록 더 단단하게 옭아매며 그를 붙잡고 있었다. 마브로스가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마브로스! 파에톤에게 가! 아직 늦지 않았어! 가서 그를―"
지크프리트가 말하는 사이, 다시금 불덩이 같은 화살이 하늘을 갈랐다. 고개를 급히 든 지크프리트의 시야에 하얀 머리칼이 불이 붙은 것처럼 흔들렸다. 지크프리트가 목에 핏줄을 세우며 소리질렀다.
"마브로스!!"
마브로스가 목을 휙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사람의 것과 다를 바 없는 눈에서 붉게 물든 물줄기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짝인 아스프로스가 파에톤을 태우고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도 일찍이 비통하게 받아들였을 터다. 지크프리트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모를 수 없었다. 그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파에톤이 미끼를 자처했단 사실을. 지크프리트와 멀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지는 금화살이 그 증거였다. 고삐를 잡아당기던 지크프리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
그리고 그는, 이미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을 향한 소년에게 버럭 소리질렀다.
"이 구제 못할 고집쟁이 같으니라고!!!"
한편 파에톤은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금화살을 피하느라 온 정신을 쏟기도 바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팔뚝에 엉겨 있던 낡은 고삐가 피에 젖어 무겁게 축 늘어졌다. 하늘 저편을 노려보던 파에톤이 멀쩡한 손을 뻗어 아스프로스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너희까지 힘들게 만들어서."
아스프로스가 작게 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되레 파에톤을 위로하듯, 긴 머리를 부드럽게 좌우로 흔든 아스프로스가 다시금 별을 딛어 높게 치솟았다. 소리 없이 쏟아지는 화살은 매서웠고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던 혈육의 정은 이미 흔적도 없었다. 눈을 꾹 감았다 뜬 파에톤이 황금 차륜을 노려보았다.
'태양이 쪼개져 떨어지는 때, 별을 삼키는 용은 결국 돌아오리라.'
"...절대로, 길을 잃게 두진 않아."
파에톤이 허리에 매인 검을 뽑아들었다. 날렵하게 검을 돌려 역수로 쥔 그의 푸른 눈엔 결연한 의지가 또렷했다.
"돌려보내고 말겠어!!"
검이 차륜에 내리꽂혔다. 단단히 고정된 차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체중을 실어서 파에톤은 몇 번이고 검을 내려쳤다. 칼날이 황금에 부딪힐 때마다 비명처럼 살벌한 굉음이 하늘을 울렸다. 둥글게 말린 앞머리가 차차 노란 빛을 잃고 희어져도 파에톤은 멈추지 않았다. 화살이 다시금 그의 팔을 긁으며 스쳐갔다. 사방으로 핏방울이 터지며 흉측한 고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태양신이시여!!"
파에톤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목숨 따윈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검이 차륜을 도끼처럼 내리찍었다. 갈려나간 황금이 살점처럼 튀었다.
"다만 그에게만큼은...!!"
가차 없는 화살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쳐갔다. 지크프리트가 정성껏 땋아주었던 머리카락이 풀려나며 어지럽게 흩날렸다.
"그에게만큼은 자비를 베푸소서!!"
검에 부딪힌 차륜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순간, 찰나의 자애도 허락하지 않는 화살이 아스프로스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천마여도 버틸 재간이 없는 공격이었다. 아스프로스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허공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파에톤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윽, 조금만... 조금만 더...!!"
파에톤이 간절하게 검을 올려다보았다. 차륜에 완전히 걸린 검이 덜그럭거렸지만 차륜은 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허우적거리듯 발을 굴리던 아스프로스의 복부에 화살이 내리꽂혔다.
"아스프로스!"
비명도 지르지 못한 말이 기어이 중심을 잃고 땅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파에톤이 질끈 눈을 감았다. 검은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는 오도가도 못한 채 하늘에 매달린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감각이 무뎌진 팔에 매인 고삐의 무게만이 처절하리만치 생경했다.
뭔가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파에톤은 눈을 떴다. 자신은 여전히 멀쩡했다. 허공에 남겨지지도 않았다. 그의 허리를 누군가가 단단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파에톤이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분명 이별을 고했던 찬란한 황금빛의 눈동자가 코앞에 있었다.
"지, 지크프리트?! 당신이 왜...!!"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사람 말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돌아가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을 줄 알아!!"
파에톤이 말을 잃은 동안 지크프리트가 다른 팔에 걸린 것을 잡아당겼다. 그제야 파에톤은 그가 마차가 아닌 마브로스를 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이 열심히 조립했던 황금 마차에 화살이 박혀 녹아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파에톤이 경악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그렇다고 해. 너도 그런 거 같으니."
"이제 돌아갈 방법도 없어졌잖아! 아니, 마브로스가 있으니 아직 괜찮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 호의를 이렇게 무시해?! 당신 뭐 돼?!"
"지크프리트다. 진작 말하지 않았나?"
보이지 않는 적도 적잖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흔들린 화살을 다시금 마차로 받아낸 지크프리트가, 기어이 제 손목에 매인 가죽끈을 마차째 뜯어냈다. 두 사람의 아래로 형체를 잃은 황금들이 부서져 흩어졌다. 말문이 막힌 파에톤의 손을 지크프리트가 단단히 감싸쥐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눈은 여전히 찬란하게 밝았다.
"파에톤, 너의 연인이다."
"......!!"
"더는 영웅 행세는 하지 않기로 했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어...!"
지크프리트의 손등에 마디가 두드러지며 핏줄이 솟았다.
"이미 이름도 영혼도 걸었다. 너를 위한 영웅이 되는 건 어렵지도 않아!"
차륜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힘에 못 이긴 차륜이 하늘의 틈을 찢으며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커다랗게 뜨인 파에톤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엷게 고이는 물기의 이름을 알기가 두려웠다.
"그러니 얼마든지 싸워서 이겨주마! 신에게도, 운명에게도!!"
차륜이 미끄러졌다.
하늘을 가른 화살이 마브로스의 목을 찔렀다.
지크프리트가 힘을 주어 한 번 더 차륜을 내리쳤다. 무수한 금을 따라 갈라진 차륜이 쪼개지며 하늘에 상흔을 새기며 떨어져내렸다. 결국 미끄러진 검이 두 사람의 팔에 얽힌 고삐에 걸렸다. 마지막 순간, 마브로스는 혼신의 힘을 끌어모아 높이 도약했다. 파에톤이 떨어지지 않도록 꽉 끌어안은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돌렸다. 차륜이 박혀 있던 자리부터 생긴 균열이 서서히 길게 갈라지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바보야."
지크프리트의 품 안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옷자락을 꽉 붙든 손이 덜덜 떨고 있었다.
"나도 바보가 된 기분이잖아..."
"된 기분이라니. 너도 늘 바보였다만."
지크프리트가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먼저 추락하기 시작한 마브로스를 따라 두 사람도 지상으로 한없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파에톤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라붙은 호수 같던 회청색의 눈동자가 물기로 가득했다.
"인정 못해. 전부 당신 때문이야."
"그래. 너다운 말이군."
"그 말투도 정말 짜증나. 정말 싫어. 마지막까지 이게 뭐야. 내가 하고 싶었던 것까지 다 망쳐버리고!!"
황금의 파편이 파에톤의 팔을 스쳤다. 오랜 세월 그를 붙잡아두었던 고삐가 비로소 풀려나갔다. 충격에 너덜너덜해진 지크프리트의 팔찌가 기어이 부서지며 어설프게 걸려 있던 가죽 끈을 풀어놓았다. 자유로워진 팔로 파에톤이 힘껏 지크프리트를 끌어안았다. 빠르게 식어가는 하늘로 향하는 무수한 빛무리도, 영원히 먼 곳에 있을 듯한 잿빛의 황야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길고 영원한 찰나에 오로지 둘뿐이었다.
"...그러니까, 책임져."
지크프리트가 눈을 크게 떴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파에톤이 활짝 웃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당신이 구해내버렸으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지크프리트는 더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파에톤을 끌어안았다. 두 팔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하늘이 뒤집혔을지언정 품 안의 온기만은 그대로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갔다. 사나운 바람이 귓바퀴를 할퀴고 머리를 흐트려놓아도 또렷한 하나로 충분했다.
"지크프리트,"
밤새워서 연습했을 이름을 그가 불렀다.
"나, 당신을――――"
쿵!
"윽......"
지크프리트가 눈가를 한껏 찡그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치고는 제법 견딜 만한 통증이었다. 지크프리트가 머리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차곡차곡 쌓인 벽돌 모양이 두드러진 천장은 햇빛을 받아 붉은 색채가 선명했고, 그 옆에는 린넨으로 만든 커튼이 부드럽게 나부꼈다. 지크프리트가 기억하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돌아온 건가...?"
지크프리트가 일어나 앉으려다 문득 품을 내려다보았다. 그에게 꼭 안겨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곱게 땋은 선명한 황금빛 머리카락은 자고 일어난 뒤에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눈꺼풀에 촘촘히 달린 속눈썹은 풍성하고 부드러웠다. 느리게 뜨인 눈이 도로 덮일 듯 깜빡이다가 이내 지크프리트를 향했다. 맑은 호수처럼 푸르고 깨끗한 색은 여전히 그가 좋아하는 색이었다. 지크프리트가 저도 모르게 말을 삼켰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감정이 밀려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상하네..."
느리게 눈을 비빈 파에톤이 그의 품에 도로 폭 안겼다.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아요..."
지크프리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끝이 그의 부드러운 금발을 어루만졌다.
"...어떤 꿈?"
"조금 무섭고, 외롭고... 그래도 행복한 꿈."
파에톤이 그의 품에 뺨을 부비적거렸다. 영락없이 애교 부리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지크프리트가 몇 번이고 말을 고르는 동안, 그의 체취를 한껏 들이켜며 지크프리트에게 어리광을 부린 파에톤이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고 후련해보이는 표정이었다. 걱정이 담뿍 어려 있던 지크프리트의 눈매가 서서히 누그러들었다.
"행복했다니 다행이군."
"네! 마지막에 지크가 구해줬거든요. 아주 멋있고 듬직했어요."
파에톤이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애인이라 다행이에요."
지크프리트는 더 참지 못하고 그를 꽉 끌어안았다. 숨이 막힌다는 투정도 금세 웃음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의 손목을 감싼 팔찌에선 보다 찬란한 호박석이 푸른 보석과 어우러져 빛나고 있었다. 지크프리트가 눈을 내리감았다. 그의 말처럼 아주 길고도 무서운,
그럼에도 행복한 꿈이었다.
"당연하지. 너와 한 거니까."
창 너머에서 반짝이는 해를 부드러운 구름 한 조각이 가려주었다. 평소와 같은 평온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