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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을 위해 연재를 강행합니다.
페이트 기반 지크프리트(단테님 자캐) x 파에톤(눙님 자캐)의 2차 창작입니다.
창공의 폴라리스와 이어지는 스토리로, 창공의 폴라리스를 읽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천逆天의 폴라리스
지크프리트 x 파에톤?
파에톤의 마차가 하늘의 중앙에 왔을 때였다. 불안하던 차륜이 기어이 덜그럭거리며 허술하게 빠져나갔다.
균형을 잃은 마브로스의 속도가 느려졌고, 마차가 기울자 파에톤은 당황했다. 태양 마차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길을 벗어나려 했다.
‘안 돼!’
파에톤이 길을 벗어나 너무 높게 날면 하늘을 태울 것이고, 낮게 날면 땅의 사람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파에톤은 고삐를 자신의 팔에 단단히 감아 마브로스를 지탱하려 애썼다.
태양 마차의 혼란에 제일 먼저 괴로워한 건 근처에 있던 독전갈이었다. 그는 오리온을 감시하는 임무를 잊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꼬리를 마구 휘두르며 몸부림쳤다.
독을 머금은 꼬리가 파에톤의 어깨를 찌르고, 이어 아스프로스를 노렸다. 파에톤은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아 전갈의 틈 사이를 내찔렀다.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전갈의 소리 없는 비명이 온 천지를 흔들었다.
08.
“지그.”
“지크.”
“…내 맘이야. 시그.”
“그 말은 또 언제 배운 거지? 고의가 확실하군. 네가 내 이름만 틀리게 부르는 게 몇 번째인지 아나?”
파에톤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름을 부르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 것치고는 영 공손하지 않은 태도였다.
“ ‘토니’ 것까지 합쳐서 백 번은 되나 봐?”
“잘 아는군. 고작해야 이름 틀리게 부르는 걸로 시비를 거니 계속 너를 애 취급하는 거다.”
“이런 걸로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당신도 딱히 어른답진 않거든?”
파에톤이 말하며 이어붙인 조각을 마차에 붙였다. 빈틈없이 꼭 맞아들어간 파편에 묽게 갠 풀을 바르니 미세한 틈이 메워지며 새 것처럼 매끈해졌다. 지크프리트가 마차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처음엔 완성이 가능이나 할지 의심스러웠건만, 조립을 시작한지 며칠이 지난 지금은 제법 그럴 듯한 마차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빠르면 사흘, 최소한 닷새 이내엔 하늘로 출발하려는 것이 파에톤의 계획이었다.
“당신이 있던 세계에서 영웅 대우를 받은 게 맞아? 당신이 열두 시련을 이겨낸 자처럼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말이지.”
파에톤이 의심을 가득 담아 눈을 흘겼다. 지크프리트는 그를 한 대 쥐어박아주는 상상을 했다.
“그런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건 그만뒀다.”
“……그만뒀다니?”
“영웅처럼 행동하는 건 하지 않기로 정했단 뜻이다. 지금의 나와 영웅의 나는… 아니, 토니를 만나기 전의 나는 많이 달라. 마치 지금의 너와 토니처럼.”
죽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부탁이니까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없기에 누구에게든 기꺼이 내어준다. 도리어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면 스스로를 더욱 억누른다. 어차피 쉽게 죽지 않으니, 찌그러지고 모난 형태여도 상관없다. 그저 주군의 검으로서, 사룡을 벤 기사로서 살아갈 뿐이다.
그야말로 짐승 같은 삶이었다. 하겐의 빈정거림을 떠올리며 지크프리트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토니가 채워준 팔찌엔 여전히 그와 같은 푸르고 맑은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난 아주 단단하지만 텅 비어 있는 껍데기였지. 그 안이 채워지면서, 나보다 남을 우선하는 건 그만두었다.”
파에톤이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안을 채운 건, 토니야?”
“나는 삶의 미련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것 역시 토니에게 얻은 것이니, 네 말도 틀린 건 아니군.”
“그렇구나.”
파에톤의 손이 다음 조각을 주워들고 만지작거렸다. 지크프리트의 기억보다 훨씬 거칠고 흉터와 굳은살이 많은 손이었다. 조립을 시작하고서는 풀과 조각 부스러기까지 엉긴 살갗은 가죽을 하나 더 덧씌운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투박했다. 씻겨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지크프리트가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찾을 즈음이었다.
“영웅처럼 해내려면 그런 걸 버리고 비워야 하는 걸까.”
지크프리트가 손을 멈췄다. 정작 파에톤은 평온하게 다음 조각을 찾아 집어들고 있었다.
“……영웅이 되고 싶은 건가?”
“꼭 그런 건 아니야.”
어중간한 대답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처음으로 눈앞의 파에톤에게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모습과 성격의 변화가 있어도, 지크프리트는 그를 토니와 같은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의 파에톤은, 마치 모습만 토니에게서 빌려온 낯선 누군가 같았다.
“너는……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 마차를 몬 게 아닌가?”
“그랬지.”
위화감이 더욱 짙어졌다. 지크프리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과거형의 대답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마차를 몰았던 건 마차가 부숴진 시점에서 무의미해졌으므로. 그렇다면 지금의 그는,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별자리들의 오해와 살의 속에서 싸우는 그는 무엇을 품고 살아가는가.
“이 모든 게 끝나면,”
파에톤의 푸른 눈이 지크프리트를 향했다. 질문을 이어가는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넌 어떻게 할 거지?”
“…….”
짧은 침묵 속에서 지크프리트는 마치 과거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음울하게 흐려진 내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싶은 마음과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불안이 수없이 교차했다. 지크프리트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
파에톤이 열었던 입을 도로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무시할 수 없는 소음에 지크프리트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잿빛의 뱀이 고개를 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너구나.”
지크프리트는 한 번 더 놀랐다. 파에톤이 마브로스와 아스프로스를 부르듯 다정한 어조를 낸 탓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파에톤이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뱀은 그를 향해 부드럽게 미끄러져서는 마치 애교를 부리듯 그의 발목에 몸을 감았다. 파에톤이 제 손바닥만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아, 이걸 찾아준 거야?”
파에톤이 근처의 모래 더미에서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황금 마차의 파편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얼떨떨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마들을 빼면 누구도 파에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게 아니었나?
“형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형님?”
되묻는 목소리가 무심코 튀어나갔다. 파에톤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 뱀의 주인. 아버지가 나와 같으니 내겐 형이나 다름없지.”
“아버지라면… 태양신 말인가?”
“그래.”
파에톤의 다리를 풀어주던 뱀이 문득 머리를 틀어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위협적이진 않지만 명백한 의미가 담긴 몸짓이었다. 지크프리트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멈춰 있는 사이, 슬금슬금 움직이던 뱀이 마치 사람처럼 고갯짓했다.
따라 와.
“…….”
파에톤이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뱀은 한 번 더 지크프리트를 돌아보고는 느리게 몸을 움직여 멀어져갔다. 잠시 고민하던 지크프리트가 흘긋 파에톤을 보았다. 그는 아까까지의 대화를 전부 잊어버린 것처럼, 뱀이 물어다준 조각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디에 맞춰야할지 궁리중인 듯했다.
마음을 정한 지크프리트가 벌떡 일어섰다.
“잠시 주변 좀 돌아보고 오겠다.”
뱀이 그를 데리고 간 곳은 그들의 거처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껍질만 어설프게 탄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힘겹게 뻗어들고, 바닥은 검고 흰 재들이 잔뜩 깔려 모래처럼 부드러웠다. 그 사이에 반쯤 몸이 파묻힌 채로 나아가던 뱀이 이윽고 바위에 앉아 있는 자 앞에 멈춰 섰다. 등을 곧게 편 그는 지크프리트와 비슷한 키를 가졌으나 좀 더 마른 느낌을 주었고, 후드 아래로는 뱀과 같은 잿빛의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와 다소 음침해보였다.
“왔군. 세계의 이방인.”
지크프리트는 작게 놀랐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별자리들은 정체모를 불청객, 출신을 알 수 없는 외지인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크프리트와 또래거나, 조금 더 연상일 청년의 부름은 마치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것만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뱀의 속삭임 같이 낮고 조용했으나 매우 또렷했고 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의 한 팔을 타고 올라간 뱀이 집에 도착한 것처럼 느긋하게 제 머리를 어깨에 올려두었다.
“아스클레피오스다.”
청년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지크프리트.”
“처음엔 좀 의심했다만… 너는 진심으로 그 아이를 돕는 것 같더군. 늦게나마 감사를 표하마.”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다. …그래도 인사는 받아두지. 당신이 그 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서 하는 말이라면.”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지크프리트는 할 말이 너무 많아 무엇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마주본 그는 다소 마르고 병약해보였으며, 눈은 뱀의 동공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으나 눈만은 파에톤과 같은 푸른빛이었다.
“왜 파에톤과 함께 있지 않은 거지? 다른 별자리들처럼 그를 적대하는 게 아니라면, 같이 있어주는 게 더 위로가 되었을 거다.”
“그랬다면 그 아이를 돕기도 전에 죽었을 거다.”
지크프리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청년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를 내버려두고 있는 건 네가 그야말로 이방인이기 때문이야. 위대한 주신의 눈조차도 너를 꿰뚫어보지 못하니 내버려둘 수밖에. 하지만 난 처지가 다르다.”
“……감시받고 있단 건가?”
“이해가 빠르군.”
지크프리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그들은 파에톤을 그렇게 미워하지? 별자리들 자신들조차도 고통에 허덕이는 주제에, 그를 방해하려는 이유가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예언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예언?”
그의 어깨에 앉은 뱀이 작게 쉿쉿 소리를 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고삐를 놓지 못한 자, 두 태양 중 하나를 빛으로 부딪혀 쪼개라. 풀려난 광채는 영웅으로 구원받으리라.”
지크프리트는 필사적으로 그 문장을 곱씹었다. 놓지 못한 자. 오리온도, 라돈도 그를 그렇게 불렀다. 파에톤 본인조차도 자신을 그리 여기는 듯했다. 두 개의 태양을 그려 하나를 짓밟던 마브로스의 모습도 스쳐갔다.
“...토니가... 언젠가 이 세계의 '시련'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어. 신의 분노를 사서 벌을 받는 것. 하지만 그를 이겨내면 영웅이 되거나, 신과 나란히 서는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
순간 지크프리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이며 스쳐갔다. 운명의 갈래길. '토니'와 '파에톤'의 결정적인 다른 점. 생사의 여부가 아니었다. '영웅이 될 운명'. 그것을 벗어났는가, 그 길 위에 갇혀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파에톤을 가둔 자는 누구인가? 그에게 이런 고행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든 자는?
“한 가지 정정해줘야겠군. 이것은 영웅이나 신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사실 늘 그러했지. 열두 시련을 극복한 대영웅조차도 마찬가지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느릿느릿 말을 덧붙였다. 그 목소리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싸늘한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
“죽이고 싶었으나 버텨냈기 때문에 죽이지 못한 자들의 체면을 살리려 했을 뿐이지.”
지크프리트의 등의 흉터가 욱씬거렸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살의. 설득되지 않는 분노. 상대를 부수고 나서도 가라앉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원한. 지크프리트는 그 대상이 된 자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대체…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도 신의 아들이잖나. 어머니나 누이가 죽었다지만, 가족이 아직 남아 있다면…!”
사나운 비웃음이 지크프리트의 말을 끊었다. 말을 잊은 지크프리트를 내버려둔 채 한참이고 웃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이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여전히 그 눈에 깃든 경멸은 다른 자를 향해 있었다.
“누가 하늘의 별자리들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나.”
“뭐…?”
“그 아이가 죽인 스콜피온조차 그 신이 만든 피조물이었다. 자신의 길을 피로 물들이고, 피조물의 숨통을 끊고, 마차를 망가뜨렸다.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의 본의가 아닌 것이 중요할까? 아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자식들이 죽는 것을 방관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으시지.”
머리속이 새하얘졌다. 하겐에게 등을 찔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이 뇌리를 뒤흔들었다. 지크프리트는 저도 모르는 새에 멍하니 그에게 묻고 있었다.
“……설마… 그 아이는 모르겠지…?”
“아쉽게도 그 아이는 당신보다 그분을 더 잘 알지. 내가 그 분을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태양을 몇 번이고 짓밟던 마브로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냉랭한 단언이 칼날처럼 지크프리트의 고막을 내리쳤다.
“누구보다 파에톤을 죽이고 싶어하는 자가 태양신- 그의 아버지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