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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을 위해 연재를 강행합니다.
페이트 기반 지크프리트(단테님 자캐) x 파에톤(눙님 자캐)의 2차 창작입니다.
창공의 폴라리스와 이어지는 스토리로, 창공의 폴라리스를 읽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천逆天의 폴라리스
지크프리트 x 파에톤?
아이는 훌륭하게 자랐다. 그는 어머니가 늘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태양신의 이야기를 기억하였으며, 자신이 태양신의 핏줄을 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해가 높게 뜬 날엔 하늘을 우러러보며 아버지를 칭송하였고, 아버지의 광휘 아래 그에 걸맞은 영웅이 되리라 꿈을 품었다. 파에톤이 성인이 될 즈음엔, 주변에서도 그가 이름에 어울리는 빛나는 영웅이라는 칭찬이 늘 뒤따랐다.
그러던 어느날, 파에톤은 평소처럼 사냥을 나섰다가 한 노파를 만났다. 그는 파에톤을 보고 탄식하며 외쳤다.
"새로이 핀 불꽃이 심지를 더해 타오르니, 빛은 하늘을 향하지 않고 지상을 태우는 염화가 되리라!"
파에톤은 그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마지막에 뜻한 염화가 자신을 뜻하는 것임은 이해했다. 충격을 받은 파에톤은 자신의 운명에 괴로워하며 식음을 폐하고 괴로워하였다. 그런 아들을 가만히 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파에톤을 설득했고, 결국 파에톤은 산을 올라 아버지를 찾기로 결심했다.
지크프리트가 눈을 뜬 곳은 메마른 땅이 꺼져서 패인 동굴이었다. 입구엔 빗물이 차오르지 않도록 일자로 길게 파낸 물길이 있었고, 안에는 말들을 위해 모아놓은 듯한 마른 가지와 나무껍질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몸을 일으키던 지크프리트가 작게 신음하며 팔을 쥐었다.
"윽..."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팔뚝에 휘감긴 천에는 붉은 핏물이 배어나온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크프리트는 그제야 자신이 상의를 벗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가 그를 이곳에 데려다놓고 처치를 해준 모양이었다.
"토니... 파에톤?"
호칭을 고쳐부르며 지크프리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기척이 없는 동굴엔 불을 피운 흔적과 동물에게서 벗겨낸 낡은 가죽만 널브러져 있었다. 더 깊은 곳에서 웅크려 있던 무언가가 지크프리트의 시선을 눈치챈 듯 천천히 움직였다. 사람의 발소리가 아닌, 단단하고 훈련이 잘 된 말의 발굽 소리가 어두컴컴한 공간을 울렸다.
"마브로스?"
지크프리트는 기억을 잃기 전 파에톤이 불렀던 이름을 가까스로 기억해냈다. 그러나 그의 털과 갈기는 마브로스와 달리 무척 밝고 금빛 윤기가 맴도는 흰빛이었다. 작게 목을 울리며 소리를 낸 그가 지크프리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마브로스와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이 그을린 살갗은 흉측하게 녹아내려 엉겨 있었으나, 그걸로는 그의 온순한 성미를 돋울 수 없는 듯했다.
"...네 주인이 너한테 나를 맡기고 갔나보군."
지크프리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 모를 흰 말은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긴 목을 말고 눈을 감았다. 지크프리트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기대어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회상했다.
이곳은 지크프리트의 세계가 아니다. 그리고 '파에톤'이 살던 세계도 아니다. 파에톤은 지크프리트의 세계로 건너왔으니, 설령 그의 세계로 떨어졌다면 파에톤이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게다가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놓지 못한 자'로 불리며, 괴수의 미움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금 사과의 수호자라 불린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최소한 파에톤에게 앙심을 품었거나 그를 해치고 싶어하는 존재도 한 둘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대체 왜?'
파에톤은 지크프리트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오만하게 태양 마차를 몰고 길을 벗어났기 때문에, 지상의 모든 생물들이 피해를 볼 뻔했다고. 그래서 제우스의 벼락을 맞았고, 박살난 황금 마차에서 떨어져내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파에톤이 떨어진 직후의 세계인 걸까? 그렇다면 지금 살아 있는 파에톤은...
'......설마......'
지크프리트는 좋지 않은 가정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파에톤이 죽지 않았을 때의 세계인가...?'
팔찌를 쓰다듬으며 지크프리트는 불안한 가정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지크프리트는 룬 마법이나 신비에 정통한 자는 아니었으나 평범한 사람보다는 상식이 풍부했다. 마법이든 저주든, 주술적인 힘에서 벗어나려면 원인을 찾아 해결하거나 불규칙한 것, 뒤틀어진 것을 찾아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 말과 자신의 가설을 합쳐본다면, 지크프리트가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죽지 않은 파에톤'을 죽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지크프리트는 차라리 자신이 죽으면 죽었지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지크프리트가 하얀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잠들 것처럼 길게 콧김을 내뿜던 말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덩달아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든 순간, 저 멀리에서 새카만 것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브로스를 탄 파에톤이었다.
"일어났네."
파에톤은 무심하게 말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등에 짊어지고 온 검은 덩어리까지 내리고 나자, 마브로스는 앞발을 두어 번 구르더니 동굴 안으로 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흰 말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꾹 맞대며 밀어내었다. 애정 표현을 하는 듯 정겹고 친근한 동작이었다.
"...도와줘서 고맙다."
지크프리트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의 맞은편에 털썩 앉은 파에톤이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어 검은 덩어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먼저 날 도왔으니까."
"......"
"몸이 좀 회복되거든 이곳을 떠나도록 해. 어제 봤겠지만, 이곳에 남은 녀석들은 난폭하고 거칠어서 당신에게 친절하지 않을 거야."
나이프의 날이 번뜩일 때마다 검은 재가 우수수 떨어지며 본연의 색을 드러냈다. 새카맣게 타들어간 정체 모를 덩어리는 사실 불에 그을려 죽은 멧돼지였다. 가죽과 하나가 되어 부스러지는 털을 바라보던 지크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왜 그들은 너를 싫어하는 거지?"
"...내가 말할 이유는 없어."
"들려주지 않으면 납득이 되지 않아. 네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를 찾아가서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겠군."
파에톤이 눈을 찡그렸다. 이런 바보는 난생 처음 본다는 경멸어린 시선이 도리어 신선해, 지크프리트는 눈을 떼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았다. 파에톤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성가신 기색을 숨기지 않고 한숨을 내뱉은 파에톤이, 다시 고기를 손질하며 귀찮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황금 사과의 수호자가 이 곳에 있잖아. 그걸 보고도 깨닫지 못한 거야?"
"난 이 땅의 사람이 아니어서 말이다."
"내 이름은 알면서 그런 건 모르다니. 진짜 수상한 녀석이네."
"맞아. 아까는 아는 체를 하긴 했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내가 아는 건 너뿐이야. 사실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으니 네가 알려줬으면 한다."
지나치게 타버린 살갗을 파내던 칼날이 멈추었다. 지크프리트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황금 사과니 수호자니, 그 괴수의 정체니 하는 건 조금도 관심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너에 대한 것뿐이야."
"......"
"절대로 널 방해하지 않겠다. 도울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손을 보태겠어. 그러니 알려다오. 왜 네가 빛나는 자가 아니게 된 것인지."
파에톤은 여전히 고민하는 눈치였다. 다시 움직이게 된 칼날이 느리게 사체의 다리를 잘라내고 반쯤 구워진 살점을 썰어냈다. 지크프리트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나뭇가지에 살점을 꿰며 파에톤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
"이 근방의 땅이 전부 타버린 건 보았지? 마브로스와 아스프로스도, 우리를 습격했던 용도 끔찍한 화상을 입은 것도."
아스프로스는 동굴에 남아 있던 흰 말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그리 말하며 파에톤은 모닥불에 불을 붙이고 일어섰다. 알고 있다고 말하려던 지크프리트는, 그가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말을 삼켰다. 파에톤은 무언가를 들고 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깨진 황금 조각이었다. 그들이 습격당하기 전, 지크프리트가 발치에서 발견했던 물건이기도 했다. 지크프리트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태양신의 황금 마차를 몰았고, 그 마차로 세상을 불구덩이로 만들었어. 그건 떨어져 부서진 마차의 파편이고."
파에톤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미워해. 나 때문에 벼락을 맞아서 하늘에서 같이 떨어졌거든. 이유 없이 불에 구워진 것도 억울한데 거처까지 잃은 셈이지."
"......"
"난 모든 걸 되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은 믿지 않아. 그게 나를 공격하는 이유야. 이걸로 설명은 충분하겠지."
지크프리트는 말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소화하려 애썼다. 상황은 확실히 파악했다. 그러나 완전히 이해가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지략과 거리가 먼 스스로를 한탄하며 지크프리트는 구워져가는 살점과 황금 마차의 조각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건 왜ㅡ"
지크프리트의 목소리가 볼썽사납게 갈라졌다. 마브로스가 눈치를 주듯 푸르륵거리며 땅을 몇 번 내리쳤다. 민망해진 지크프리트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파에톤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조그만 호수가 있어. 물은 거기서밖에 안 나와."
"......고맙... 크흠."
"아스프로스."
파에톤의 손에 입을 부빈 아스프로스가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왔다. 지크프리트는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동굴을 떠나기 전 지크프리트가 돌아보았을 때, 파에톤은 그가 먹을 고기가 잘 구워졌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안쪽에는 그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마차 조각들이 돌산처럼 모여 있었다.
호수는 그리 멀지 않았다. 목을 충분히 채운 지크프리트는 근처의 물소 사체에서 뿔을 잘라내어 그 안을 파내었다. 아스프로스는 지크프리트가 무엇을 하든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호수의 가장자리를 둘러싸듯 자리한 흰 가지의 포폴라 나무에 느리게 머리를 부비기도 했다.
"너한테도 말이 통했다면 상황을 더 알기 쉬웠을 텐데 말이야."
지크프리트가 한숨 쉬듯 말하며 아스프로스에게 다가갔다.
"왜 그는 마차 조각을 모으는 거지? 나한테 설명이나 해주려고? 뭔가 용도가 있는 건가? 이 상황은 어떻게 되돌리겠다는 거지?"
당연하게도 말은 무엇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크프리트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크프리트도 더 기대 않고 그의 등에 올랐다. 그때였다.
쉬익!
지크프리트는 곧장 몸을 돌려 화살을 피했다. 이곳이 전장터나 다름없는 곳임을 인지한 순간부터 지크프리트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으며 지크프리트가 신랄하게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화살부터 쏘는 걸 인사로 여기나보군."
"나는 무인이니, 무예로서 사람을 평가할 수밖에. 생전에 배운 것이 이뿐이니 굳이 이해를 구하진 않겠다."
그는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가 지크프리트의 두 배는 될 듯한 거구의 사내는 한 손에는 그의 키만한 활을 들고 팔엔 맹수의 가죽을 두르고 있었다.
"라돈에게서 들었다. 놓지 못한 자와 동행하고 있다지?"
"라돈?"
"황금 사과를 지키는 신성한 용. 헤라의 영광을 입은 자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용감한 존재를 모르는가?"
지크프리트는 파에톤을 공격했던 괴수를 떠올렸다. 아스프로스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신경질적으로 땅을 굴렀다. 아스프로스를 달래려 손을 뻗은 지크프리트는, 그의 안장 옆에 걸려 있는 짧은 검을 보았다. 호신용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를 쳐죽이려고 했던 괴수 말이지. 그를 안다면, 나도 용을 죽인 적이 있다는 걸 그에게 알려주면 좋겠군."
"으하하하! 배짱이 대단한걸. 좋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전해주지."
웃음을 터트린 그가 활을 아래로 내렸다.
"그 정도의 무예를 갖췄다면 자네 역시 영웅의 자질을 품은 존재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나?"
지크프리트는 단칼에 거절하려 했다. 그들은 파에톤과 대적하고 있는 자다. 그들이 도와달라고 하는 상황이야 뻔하지 않은가. 파에톤에게 해가 되려는 일을 지크프리트가 도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살면서 처음으로, 타인의 생각을 읽어 전황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현명한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상황도 모른 채로 무작정 도울 수는 없다. 상황을 빠짐없이 알려준다면, 협력을 고민해보도록 하지."
"똑똑하군. 좋아, 그럼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바다와 땅 사이에서 태어난 자요, 달의 여신에게 구애받은 사냥꾼, 오리온이다."
그렇군. 하나도 모르겠다. 지크프리트는 무표정하게 그의 화려한 자찬을 흘려넘기며 대답했다.
"나는 지크프리트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그 물을 놓지 못한 자가 떠오라고 시키던가?"
"그건 아니다. 내가 떠주고 싶었을 뿐이야."
"하! 누이들의 눈물을 마시면서까지 생을 연명할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나보군."
지크프리트가 멈칫했다.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의 뜻이다. 이 호수는 그의 누이들이 흘린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지. 그가 땅을 불태우지만 않았어도 그녀들이 신들에게 빌고 빌다가 저 꼴이 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철없는 고집으로 가족까지 저 지경에 몰아넣다니,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사냥꾼은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스프로스가 거친 콧김을 뿜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들 듯한 말의 고삐를 쥐며 지크프리트가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나 손은 어느새 안장에 달린 검의 손잡이를 부러뜨릴 듯이 세게 쥐고 있었다.
"......그 말이 맞다면 그는 이미 가족을 잃은 것으로 죗값을 치른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그래! 그가 황금 마차의 조각을 모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그는 다시 하늘에 오를 작정이다. 마차를 고쳐, 자신을 떨어트린 신들에게까지 복수하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굳게 닫힌 지크프리트의 입술이 뒤틀렸다. 사내의 심기를 미처 읽지 못한 오리온이 살기와 증오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선언하듯 외쳤다.
"그래서 우리는 맹세한 것이다. 그가 하늘로 오르기 전에 그의 거짓된 맹세를 불태우고 지옥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겠다고! 코큐토스의 싸늘한 빙판에서 고통받는 그의 비명이 들려오기 전까지, 우리의 원한 또한 그를 놓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