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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을 위해 연재를 강행합니다.
페이트 기반 지크프리트(단테님 자캐) x 파에톤(눙님 자캐)의 3차 창작입니다.
창공의 폴라리스와 이어지는 스토리로, 창공의 폴라리스를 읽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크, 이것 봐요!"
짐을 들고 걷던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돌렸다. 파에톤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지크프리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겉보기엔 가죽 팔찌처럼 보였으나, 지크프리트는 곧 그것이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알아차렸다. 매끈하게 결을 다듬은 겉면에 음각으로 용의 문양을 새겼으며, 그 틈을 녹인 황금으로 채운 예술품이었다. 지크프리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뭐가 안 돼요?! 아직 말도 다 안 했는데!"
"보나마나 사달라는 거겠지. 네가 무슨 동굴의 난쟁이도 아니고, 왜 빛나는 것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지?"
"그, 그렇게까지 정신 팔리지 않았거든요!"
빽 소리를 지른 파에톤이 입을 비죽거렸다. 단단히 심통이 난 모양새와 달리 손에 들린 팔찌를 쉽게 놓을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들어봐요... 딱 봐도 엄청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아요? 누구누구에게 엄청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네 손목엔 너무 커."
"아이 참! 누가 내가 하고 싶댔어요?"
지크프리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럼 누구한테 선물할 셈이지? 이제 와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도 소용 없다."
"악!! 머리가 좋든가 나쁘든가 하나만 하라구요! 바보 지크! 내가 마음에 들어서 선물해줄 사람이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어!"
빽 소리를 지른 파에톤이 이번엔 분을 못 참고 씩씩거렸다. 그제야 눈이 동그래진 지크프리트가 팔찌와 파에톤을 번갈아 보았다. 눈을 흘기던 파에톤이 다시금 팔찌를 그에게 내밀어보였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팔찌의 앞에는 푸른색과 금색의 보석이 쌍을 이루듯 곡선으로 점점이 박혀 있었다.
"당신에게 주고 싶어서 그래요."
"......"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고를게요. 그래도 한 번만 해보면 안 돼요? 잘 어울릴 거예요."
지크프리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파에톤의 손에서 제법 크고 굵게 느껴졌던 그것은 지크프리트의 손목에 맞춰 만든 것처럼 부드럽게 휘감겼다. 파에톤과 같은 푸른색 보석을 한참 들여다보던 지크프리트가 다시 파에톤을 보았다. 그는 어느덧 아까의 설전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신나서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역시! 내 눈은 못 속인다니까요. 불편하진 않죠?"
"...그렇군."
"여기 보석 봤어요? 지크 눈색이랑 똑같아요. 아, 보석 때문에 고른 건 아니에요. 그냥, 아까 딱 봤는데 눈이 안 떨어지는 거 있죠. 이건 지크 거다! 하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자꾸 맴돌고..."
"마술에 홀리기라도 한 건가?"
파에톤이 금세 뺨을 부풀렸다. 지크프리트가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 좋은 금발이 그의 팔찌에 닿아 부드럽게 눌렸다.
"농담이다. 이제 그만 놀릴 테니 표정 풀어라."
"...이미 다 놀려놓고서."
"미안하다. 내가 너무 딱딱하게 굴었군."
파에톤의 가장 큰 약점은 지크프리트였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하자 심술로 잔뜩 부풀어 있던 뺨이 금세 가라앉았다.
"참으로 보기 좋은 연인이군."
둘은 거의 동시에 어깨를 움찔거렸다. 당연하게도,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엔 물건을 파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기척도 없이, 마치 배경처럼 존재하던 상인이 몸을 일으켰다. 후드를 푹 눌러쓴 그는 입술 언저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마치 후드 안쪽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림처럼 자리잡은 입술이 움직였다.
"두 분이 사신다면 금화 네 개만 받도록 하죠."
"앗, 정말요? 열 개는 낼 생각이었는데!"
"물건도 주인을 만난 듯하니 더 받으면 가치가 맞지 않습니다. 부디 받아주시길."
지크프리트는 후드 안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한참 그를 응시했다. 파에톤이 주머니를 뒤져 금화를 하나하나 세어 건네주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상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금화의 무게를 재어보듯, 주먹쥔 손을 위로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던 그가 문득 지크프리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크프리트는 자신이 느낀 위화감을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알던 신비로운 마법사와 닮아 있었다.
"그의 말대로군요."
그 속삭임은 지크프리트의 바로 곁에서 들려주듯 가깝고 선명했다. 지크프리트가 눈을 크게 떴다.
"마차에서 내리려면 고삐를 먼저 놓아야 합니다. 잊지 마시길."
"뭐......?"
지크프리트가 눈을 깜빡였다. 그순간, 파에톤이 지크프리트의 시야에 가득찼다. 주머니가 가벼워졌는데도 파에톤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요, 지크! 배고파요."
"......"
"오늘 저녁 당번 지크인 거 알죠? 절여둔 고기가 아직 남았으니까 그걸로 파이 해먹어요!"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갑판대 근처에 서 있던 상인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잘못 들었나. 눈을 얼떨떨하게 깜빡이던 지크프리트가 겨우 파에톤을 돌아보았다. 지크프리트를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가 보석보다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래. 그러자."
"야호!"
비록 연이어 벌어진 일이 이상하긴 해도 불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지크프리트는 요정과 룬, 난해한 예언과 불가사의한 신비의 영역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한 번 더 가게를 돌아본 지크프리트가 이내 파에톤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익숙한 길 위, 지크프리트는 새처럼 조잘대는 파에톤에게 순식간에 주의를 빼앗기고 말았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덫을 돌아보겠다며 한바탕 소동을 부린 뒤에야 파에톤은 지크프리트와 함께 침대에 누워 헤실거렸다. 새 두 마리에 제법 큼지막한 버섯까지 캐내었으니 괜찮은 수확이었다. 파에톤의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 덮어주며 지크프리트가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을 끌어온 파에톤이 아직 그가 차고 있는 팔찌를 보며 헤헤 웃었다.
"진짜 잘 어울린다..."
"거기에 너와 어울리는 것도 있는지 찾아볼 걸 그랬군."
"괜찮아요. 지크가 매일 챙겨주니까, 나도 한 번쯤 주고 싶었는걸요."
파에톤이 지크프리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에게 한 팔을 내어준 지크프리트가 금발로 덮인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파에톤의 눈이 졸린 듯이 꿈뻑거렸다.
"난 말이죠, 지크..."
"그래. 듣고 있다."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아요... 지크를 못 만났으면 어땠을까... 살아 있기는 했을까..."
부드럽게 미소 짓던 지크프리트의 입술이 살짝 굳어졌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그냥 가정이잖아요... 지크는 이래서 참... 농담도 안 통한다니까..."
"...네가 죽었다는 가정은 내가 싫어."
파에톤이 눈을 내리감은 채 실없는 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당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할걸요. 그날 살아남는 건..."
"......내가 가서 구해주면 되지."
"구해줄 거예요...?"
파에톤이 고개를 들었다. 졸음에 잠긴 눈이 지크프리트를 담으며 느리게 꿈뻑거렸다. 지크프리트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입맞추었다.
"그래. 구해낼 거다."
"...흐흐. 약속이에요?"
"내 심장과 영혼을 걸고 약속하지."
"정말이지... 농담도 못해......"
내내 웃던 파에톤의 목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색색 울려퍼지는 느린 숨소리를 들으며, 낮게 한숨을 쉰 지크프리트가 그를 더 꼭 끌어안았다. 품 안의 파에톤은 그때와 변함없이 작은 태양처럼 따뜻했다. 그의 금발에 다시금 입을 맞춘 지크프리트가 눈을 감았다.
"잘 자라, 토니. 사랑한다."
팔찌에 새겨진 용이 달빛을 받아 은은한 빛깔로 물들었다. 하늘색의 보석이 어둠에 잠기고 황금의 보석이 그 뒤를 쫓았다.
강한 충격과 함께 지크프리트는 눈을 떴다. 파에톤의 발길질에 침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익숙했지만, 아무리 그라도 익숙한 집이 아닌 새카만 들판에서 눈을 뜨는 상황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사방은 불길로 뜨겁고 온통 재로 그을려 있었으며, 땅을 짚은 손바닥에도 검댕이 묻어났다.
"이게... 도대체..."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모든 것이 선명했다. 손목에 채워진 팔찌도, 자기 전에 입었던 옷차림도 그대로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지크프리트는, 문득 저를 향해 쇄도하는 살기에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가까스로 뺨을 스치고 날아간 화살이 나뭇가지마저 박살내고 날아가 탄 나무를 반으로 갈랐다.
"큭...! 누구냐!"
대답 대신 화살이 연달아 날아왔다. 지크프리트는 저 멀리 꽂힌 검을 발견하고 뽑아들었다. 자신이 쓰던 검과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걸 알아챌 겨를도 없었다. 금빛 잔상을 뿌리며 다가온 자가 몸으로 부딪혀왔다. 반격에 밀린 사내의 몸이 긴 선을 그으며 밀리다가 겨우 멈추었다.
"멈춰! 난 싸울 생각이 없다! 왜 공격하는지 모르겠지만...!"
"시끄러워."
지크프리트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의 방심을 눈치챈 자가 그를 발로 걷어찼다. 요령은 좋았으나 지크프리트를 완전히 넘어뜨리기엔 힘이 부족했다. 검을 땅에 박아 가까스로 멈춰 선 지크프리트가 경악이 어린 시선으로 앞을 보았다. 똑똑히 들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지크프리트가 쓰는 말과 전혀 다른 언어였지만, 지크프리트는 그 말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를 공격한 자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자가, 그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공격한 소년이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잿바람에 흩날리는 금발의 머리카락은 불에 그을린듯 검었고 끝은 부스러지는 재처럼 희었다. 지크프리트는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뾰족한 귀도, 부드럽게 말린 앞머리도 그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오로지 다른 건 빛바랜 회청색의 눈동자였다.
"...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