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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지크 현대 au입니다.
디오와 지크하트가 이별한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멸자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다시 시작하자."
지크하트는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다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를 붙든 창백하고 커다란 손에 답지 않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구김 하나 없이 잘 다려진 정장과 그 아래 자리한 검고 얇은 소매, 사슬처럼 단단하게 매인 손목 시계를 확인하던 시선이 점차 위로 올라갔다. 디오 버닝캐니언. 이별한 지 정확히 삼 년하고도 석 달, 사흘이 지난 그의 전 남자 친구였다.
"......."
"......."
지크하트는 침묵했다. 그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까닭이었다. 이별을 고했을 때도 그를 잡지 않던 손길은 그저 낯설었다. 수은처럼 일렁이는 눈동자가 디오를 향했다. 디오의 간절한 눈빛이, 초조한 듯 씰룩이는 입술이 전부 어색하고 생경했다. 지크하트가 오래도록 말이 없자, 덩달아 침묵을 지키던 디오는 천천히 그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지크하트를 마주보는 눈동자에 후회의 기색은 없었다.
"기다리겠다."
"......"
"내 말. 잊지 마라."
먼저 등을 돌린 사람이 누구였는지, 지크하트도 디오도 기억하지 못했다. 둘은 헤어졌다. 연애가 끝나던 날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자.
그 날 이후, 지크하트는 디오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잼을 바른 토스트를 씹다가도, 점심에 할 일 없이 SNS를 들여다볼 때에도 그 기억은 불쑥불쑥 찾아와 디오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떤 날에는 온종일 저를 바라보던 그 필사적인 얼굴이 어른거려 아무것도 잡히지 않기도 했다. 그것이 딱히 얄밉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다만 슬프거나 애틋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설프게 남은 거스러미처럼, 기억을 넘길 적마다 손 끝에 걸려 딸려올 뿐이었다. 디오는 지크하트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지크하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지크하트는 디오가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받았다.
하지만 왜.
우리는 끝났잖아.
지크하트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만난 지 삼 주하고도 세 시간 정도 되었을까. 며칠이 지나면 흐려질 거라 생각했던 기억에서 유독 디오만이 또렷하고 선명했다. 제가 입었던 옷도, 외출을 한 이유도 흐려진 시간에서 그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왜 헤어졌더라. 연애는 왜 시작했더라. 누가 고백했더라. 이별의 통보는 누가 했더라. 지크하트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방을 둘러보았다. 대충 옷가지가 걸린 의자, 읽다 만 책, 어중간하게 비어 있는 책상. 덜 닫힌 서랍 안에도 디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모든 걸 치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싫어져서도, 미련이 남을까 봐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제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크하트의 방은 디오를 만나기 전의 형태로 돌아왔다.
마음도 전부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좋아서 너랑 사귀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생각해보면, 헤어지기 전에도 그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언제는 잘 맞았냐. 이제 정리하자.'
'...그러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디오와, 그 이후로도 애매하게 주고받다가 끊어진 연락들. 전부 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어찌어찌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그저 가슴 한켠에 꾸역꾸역 밀어만 두었나보다. 너도 그랬을까. 나를 보니 잊어둔 것 같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마음이 일렁거려서 손을 뻗은 걸까. 지크하트는 문득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날 밤까지 남아 있던 손자국이 화상처럼 떠올라 살갗이 저릿했다. 그에 대한 것들이 떠오를수록 또렷해지는 확신이 있었다. 그날 디오가 자신을 잡은 건 절대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 날의 그 장소였건 아니건. 디오는 지크하트를 본 날에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말했겠지. 다시 시작하자고.
지크하트는 디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길어지기도 전에 너머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다. 지크하트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머에서도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흔한 '여보세요'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은 걸 보니, 디오는 지크하트의 번호를 지우지 않은 모양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라. 듣고 있으니."
"왜 그랬어?"
우스운 질문이다. 목적어도, 주어도 빠진, 그야말로 내뱉고 싶은 것만 남은 문장. 그럼에도 디오는 이해했다.
"잡고 싶었다."
"...왜?"
"끝이 안 난 것 같아서."
싱거운 이야기다. 하지만 지크하트는, 우습게도 이 실없는 대화에서 무언가가 채워지는 걸 느꼈다. 떠올려보면 연애를 할 적에도 늘 그랬던 것 같다. 입만 열면 영양가 없는 투닥거림을 서로 주고받고, 그것조차 귀찮은 듯이 굴다가도. 그와 손 한 번 잡지 않은 공존에서 평온을 느끼고, 그 여백을 잘라 가슴에 책갈피처럼 꽂아두었더랬지. 봉오리처럼 느리게 열리던 지크하트의 입술이 멈추었다.
"...대답해줘서 고맙다. 그럼."
"지크하트."
수화기 너머에서 말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크하트는 아직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침묵보다 짧은 말이 유독 귓가에 커다랗게 울려퍼졌다.
"...잘 자라."
지크하트는 침대에 도로 누웠다. 하지만 전화는 끄지 않았다. 언젠가 연애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귀 하나를 그에게 내어주고서 묵묵히 있었다. 너머의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지크하트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디오의 숨소리가, 그의 고요한 긴장이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음에 물감처럼 묻어드는 색채가 조용하게 화려했다.
"궁합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아예 계산 외인 것 같다."
"기적의 사랑이란 거지? 아름답다, 아름다워."
지크하트가 혀를 차며 기계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궁합지수는? 서로의 인생 숫자로 궁합을 맞춰보아요!' 라는 문구가 유행이 지난 채색과 함께 삐뚤빼뚤 써져 있었다. 지크하트의 인생 숫자는 600, 디오의 인생 숫자는 2000. 궁합을 계산하면 3하고도 3 하고도 3333...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가 화면 가득 이어지고 있었다. 어쩐지 인생 숫자라는 것부터가 수상쩍긴 했다. 6이면 6이고 2면 2지, 이 어중간하게 따라붙는 0은 대체 뭐란 말인가. 두 숫자를 번갈아보던 지크하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재미로 보는 거라지만 동전을 두 개나 넣고 얻은 것치고는 어이없는 결과였다.
"이만 가자... 뭐해?"
"뭔가 나오고 있다."
디오가 상체를 살짝 숙여 기계 아래에 달린 창구를 들여다보았다.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디오가 꺼내든 건 영화 티켓보다 크고 뻣뻣한 종이 두 장이었다. 기계에 달린 멋없고 못난 문구와 로고가 새겨진 바탕에 큼지막한 숫자 두 개와, 무수히 이어지는 3이 잘못 인쇄된 패턴처럼 찍혀 있었다. 지크하트는 픽 웃고 말았다.
"이런 기념품은 또 처음이네."
"가져갈 건가."
"일단은."
나중에 버리겠지만. 주머니에 그것을 밀어넣으면서도 지크하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디오를 돌아보니 그는 길게 이어진 숫자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던 지크하트는, 디오가 움직일 기미가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마음에 들어?"
"...조금은."
"어떤 점이?"
디오는 종이를 반으로 정갈하게 접었다.
"끝이 없다는 점이."
지크하트가 지켜보는 사이, 그것을 한 번 더 접은 디오가 지갑에 넣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저럴 땐 은근 감성적이라니까. 어깨를 가볍게 으쓱한 지크하트가 그를 따라 걸었다. 등 뒤에서 궁합 기계가 '환상의 궁합! 보기만 해도 아름다워요!' 하고 외치고 있었다.
지크하트는 종이를 매만졌다. 남아 있는 줄도 몰라 미처 처분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싸구려 종이에 싸구려 잉크로 새겨진 것치고는 숫자가 제법 또렷했다. 디오의 이름을 한참 바라보던 지크하트의 눈동자가 느리게 굴러갔다. 3 하고도 3, 그리고 3, 다시 3...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를 매만지는 손끝이 느려지다 멈추었다.
우리는 왜 시작했을까.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참 보잘것없는, 평범하고도 굴곡없는 연애를 했다. 우린. 인상적인 데이트도, 멋들어진 고백도, 평생 기억에 남을 근사한 선물이나 에피소드 한 번도 없이. 일상과도 같은 소소하고 단순한 사랑을 했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지울 수 있는.
...그러나, 그렇기에 이별조차 없었던 것처럼, 언제고 이을 수 있는.
다시 시작하자. 기억 속의 디오가 재차 지크하트에게 말해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3의 연속처럼, 마치 처음부터 공백이 없었던 것처럼 그와의 기억이,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지크하트는 홀린 것처럼 집을 나섰다.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어느샌가 그가 자신의 곁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잘라두고 지워두었던 공백이 무색하게 그의 색채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지크하트는 어느새 디오의 저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손에는 테두리가 조금 낡은 종이 한 장을 구겨쥐어 쥔 채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지크하트가 막 디오의 저택 앞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지갑을 막 품에 넣으며 돌아서던 디오가 그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땀에 젖은 손 안에서 종이가 너덜한 모양새로 흔들렸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거칠고 빠른 숨소리가 길어지는 침묵 속에서 점차 차분해졌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시금 내딛는 지크하트의 발이 디오에게 가까워졌다. 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어도 거리를 좁히는 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지크하트가 디오를 와락 끌어안았다. 디오도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품에 가득 들어온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물었을 따름이었다.
"무슨 일로 결심이 섰지."
"...그냥."
지크하트가 그를 좀 더 힘껏 안으며 눈을 감았다.
"아직 안 끝난 것 같아서."
참 단순하고 조용한 사랑을 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러나 언제 다시 시작해도 어색하지 않은. 마치 어제와 오늘의 일상 같은, 평범해서 한없이 그리운 사랑을 했다. 우린. 그를 마주 끌어안은 디오가 피식 웃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마주친지 정확히 삼십삼 일하고도 세 시간 삼 분 후의 이야기였다. 둘은 다시 사랑을 하기로 했다. 연애가 끝나던 날에 그랬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