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ion
'유산의 관리인'과 이어집니다.
티디오 나오기 전에 예상했던 방랑자 디오입니다 줄여서 B디오...(겠냐) 자세한 프로필은 유산의 관리인에 나온 내용을 참조해주세요!
“마족 도련님께서는……”
참다참다 씹어뱉듯이 한 자 한 자 발음하는 목소리엔 짜증이 짙게 배어 있었다. 디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꿈뻑거렸다.
“휴식이란 뜻이 뭔지 모르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 아닌가. 하이랜더는 좀 다른가?”
“다르겠냐. 그럼 좀 놓지 그래.”
지크하트는 저를 꽉 끌어안은 디오의 팔뚝을 힘주어 두어 번 때렸다. 물론 타격은 없었다. 지크하트의 등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디오가 되레 뺨을 그의 목덜미에 붙이며 중얼거렸다.
“같이 붙어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는데.”
“난 아냐. 그러니까 좀 놓고 꺼져.”
“어쩔 수 없지. 익숙해지도록.”
“이런 뻔뻔한…”
욕을 반쯤 뱉던 지크하트가 결국 말을 잘라삼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오만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마족 도련님, 특히 별종이기까지 한 마족은 한 번 정하면 도통 고집을 꺾는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강경하게 내쫓지 않은 제 잘못인지, 혹은 첫만남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인지.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연애라고는 관심도 없던 지크하트로서는 디오의 행동이 그저 철부지의 귀찮은 집착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결국 에너지를 좀 더 아끼는 쪽을 선택한 지크하트가 눈을 감았다.
“잘 건가?”
“…….”
“하이랜더.”
“…….”
말로 설득이 안 된다면 다음은 무시지. 지크하트는 이대로 쪽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그를 꽉 안고 있는 디오는 제법 몸이 단단하게 다져진데다가 제법 따끈해서 무너져가는 폐허의 벽보다 훨씬 나았으니까.
“—에르크나드.”
지크하트의 반응이 느렸던 것은 순전히 예상치 못한 급습이었던 탓이었다. 절대로, 디오의 품이 잠깐이나마 편하다고 생각해서 긴장을 풀어서가 아니다. 감전이라도 된 듯 튀어오른 지크하트가 반격을 하기 전에, 디오는 그를 돌리며 바닥에 눕히고 올라탔다. 두 손목까지 잡히고나자 정말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지크하트가 으르렁거렸다.
“놔!”
디오는 당연하게도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좋아한다.”
정적이 흘렀다. 소리없이 파르르 떨리는 은빛의 눈동자가 자신을 피하기 전에 디오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곁에 있게 해줘.”
“……….”
“내 실력으로 네 발목을 잡을 일은 없다. 도와줄 수도 있지. 네가 계속 떠돌면서 코우나트의 유산을 돌보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대신 널 내게 줘.”
“………….”
“나와 같은 눈으로 나를 봐라. 에르크나드 지크하트.”
지크하트는 차라리 억지로 겁탈이라도 당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룻밤의 변덕이 풋내기 애송이한테 너무 많은 꿈을 불어넣어준 것 같다고 비웃고라도 싶었다. 하지만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코웃음도, 얼빠진 탄식도, 귀찮은 한숨 한 조각조차도. 디오의 눈은 옅은 웃음기도 없이 그저 올곧게 지크하트를 향하고 있었다. 저런 눈으로? 불쾌한 탐욕이나 불순한 소유욕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눈으로 그를 마주보라고? 어설프게 접히다 만 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손목을 놓은 손가락이 손바닥을 덮은 장갑을 어루만지고, 사이사이에 깍지를 낄 때까지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디오가 느리게 상체를 숙였다. 가까워지는 입술이, 자신의 것이 아닌 숨결이 꿈결처럼 따뜻했다.
———.
지크하트는 디오를 밀쳐냈다. 디오가 흐트러진 자세를 잡았을 땐 지크하트의 창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재차 그를 부르려던 디오가 일순 멈칫했다.
“…….”
창을 쥔 손은 너무 힘이 들어간 탓에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백 년 간 떨리지 않았을 창은 목표물을 향하고도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마구 비틀려 구겨진 눈썹은 볼썽사나울 정도였다. 몸을 내어줄 때도 동요하지 않았던 지크하트였다. 그러나 디오는 자신이 그에게 몹쓸 짓을 저질러버린 것 같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 그따위 말을 하면 정말 죽여버리겠어.”
“…….”
“다시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
쇳소리가 섞여나오는 어조가 날카롭고 사나웠다. 디오가 말을 못 찾는 사이, 창을 거둔 지크하트가 빠르게 돌아서서 걸어갔다. 다리가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지나치게 과분한 휴식이어서일 터다. 지크하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멈추기 전보다 더 지독한 피로감이 꾸덕한 진흙처럼 신경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것만 같았다.
쉬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