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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이 삼켜진 밤에 -2장
Caption 굉장히 긴 플롯이 된 이유로 문장은 가볍게, 전개에 중점을 둡니다. 사무라이 렘넌트 스토리 기반이지만, 완전히 다른 별개의 if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또한, 사무라이 렘넌트의 전체 스토리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거나 해당 내용을 보지 않으신 분의 열람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정궁 메인입니다. 설정 1. 아처조가 탈락하지 않음, 떠돌이 버서커를 아처조가 처치 2. 어쌔신은 탈락, 도로테아와 세이버조가 힘을 합쳐 츠치미카도를 처치하고 영맥에 간섭하던 주박을 제거 2-1. 아처조는 라이더조를 상대, 우시고젠에게 일격을 먹이는 데에 성공함 2-2. 이후 우시고젠이 모아두었던 보구를 발동하려는 순간 랜서조의 난입으로 라이더조 탈락(우시고젠 사망), 유이는 도로테아에게 인계됨 3. 랜서조와 세이버조 격돌, 이오리가 치에몬을 먼저 처치하면서 잔다르크가 소멸(랜서조 탈락) 4. 캐스터인 히에다노 아레는 츠치미카도가 죽은 후 행방불명(소멸확인 불가능), 무사시는 이오리와 전투 후 만족스럽게 소멸(버서커조 탈락) 5. 최소 다섯 기의 서번트가 탈락한 가운데, 아처조와 세이버조는 영월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싸움을 결의 +1장. 또 다른 '정성공'이 등장, 영월을 탈취하여 도주 꿈을 꾼다. 아름다운 밤. 달이 뜨지 않는 곳. 바다의 한가운데, 닻을 내리고 정박한 갑판 위에서 그는 검 한자루를 들고 춤을 추고 있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비단실처럼 곱고. 퍼지는 옷자락은 꽃잎 같으며 걸음 걸음이 내려앉으며 내는 소리는 악기처럼 영롱하고도 가볍다. 걸음을 옮겨 그에게로 다가간다. 검을 집어넣으며 소년은 활짝 웃는다. 누군가가 말했다. ‘자주 웃으니 보기 좋군.’ ‘그래? 전혀 몰랐다. 생전에 술에 취해도 이렇게까지 즐겁게 웃었던 적은 없는데.’ 맨발의 소년이 다시금 춤을 추듯 갑판 위를 거닌다. 바닷바람이 한차례 그를 휩쓸고 지나간다. 소년이 돌아보았다. 단정하게 빗어올린 머리카락엔 눈에 익숙한 것과 다른, 더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비녀가 꽂혀 있다. ‘명엄.’ ‘……아아. 듣고 있어.’ ‘이 모든 시간이 마법 같다. 너무 행복해서 무서울 정도야. 난 정말…………’ 점점 멀어지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 어린아이처럼 환하고, 더없이 행복해보이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의 웃음. 손을 뻗으면 허상처럼 부서지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꿈에서 깬 정성공은 비녀를 내려다본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무이한 소중한 것. 정성공은 그것에 입을 맞추고선, 머리를 빗어올려 비녀를 꽂았다. 영월을 흡수한 손의 혈관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해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아니, 반드시 해내고야 말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소원을, 이곳에서— 한편, 정성공과 이오리는 아카사카에 집결한다. 도로테아도 함께였다. 서번트들은 사라진 정성공을 추적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일단 그의 정체 말인데. 역시 서번트가 아닐까?” “근거는?” “영월의 식과 관련되어 있고, 이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고, 서번트들을 상대로도 지지 않을 정도의 마력을 지닌 영웅. 같은 급의 서번트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걸.” 도로테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의식엔 원래 7기의 서번트와 7기의 마스터만이 필요했어. 그런데 떠돌이 서번트들이 8기나 소환되었지. 거기에 한 기가 더 추가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아니라고 봐? 애초에 규격 외의 의식이니까. 이건.” 정성공이 심각하게 팔짱을 꼈다. “그렇다 해도… 도무지 무슨 클래스인지 짐작조차 안 가는데. 아처인가? 아니면 랜서?” “정이라면 캐스터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불의 마술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이오리의 진지한 대답에 도로테아도 말을 얹었다. “7기 외의 다른 서번트일 수도 있지. 당신들이 말해줬잖아? 떠돌이 룰러의 서번트가 있다고.” 끄응. 정성공이 목을 울렸다. “분명 내 이야기가 아닌데 왜 내 이야기처럼 들리지.”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정성공의 이야기니까 그렇지. 빨리 익숙해지길 바랄게?” 피식 웃은 도로테아가 곧 진지한 얼굴을 했다. “사실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야. 그가 우리에게 적의를 드러낸 지금, 클래스를 알아낼 수 없다면 약점이라도 알아내야 해. 아니면 그가 나타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도 좋지. 그러면 자연스레 약점도 찾아질 테니까.” “정의 약점이라…정말 어려운 것이로군. 글쎄, 어떨까……”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던 이오리는 문득 정성공을 본다. 그는 어쩐지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보인다. “마스터?” “내 약점이라고 해도, 마술을 도로테아만큼 잘 쓰지 못한다든가…거짓말을 못한다든가…적이 많다든가… 이런 건 너무 많아서 추리기도 불가능해. 허나 부정할 생각도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약점을 찾아서 간파한다, 는 계획엔 조금도 불만이 없지만….” 정성공은 결국 분을 못 이기고 탁자를 내리쳤다. “저 멍청이는 왜, 폐하의 나라를 되돌린다는 가장 큰 목적을 버리고 여기로 왔느냔 말이다!! 영월이 목적이었다면 날 공격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아!” “확실히…… 그가 영월에 대해 알고 있다면 최소한 영월의식의 참가자라는 건 확실한데. 스스로를 적으로 돌려야 할 이유가 뭔지 납득이 가지는 않는군.” 이오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도로테아가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영령들은 대부분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먼 과거, 혹은 설화에 기반하여 오지만. 미래에서 오는 경우도 있어.” “미래?” “그래. 당신들도 봤을걸? 떠돌이 어쌔신 말이야. 그에 대해서 조사해봤는데, 적어도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헌이나 기록’에서는 그에 대해 찾을 수 없었어. 그렇다면 분명, 지금 시대보다 훨씬 미래에서 온 영령이라는 거겠지.” 이오리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도 가능한 건가…. 새삼스럽지만, 영월의 식이라는 건 참…….” “그렇지? 비록 엉망인 술식이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가 ‘미래에서 활약한 영걸 정성공’일 확률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거지. 겉보기에도 당신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아보였다며?” 도로테아가 정성공을 바라보았다. 정성공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사람은 당장 내일도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 미래에서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어떻게 변해, 지금의 내가 지닌 목적과 다른 소원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로군.” “이해가 빠르네.” “그것도 ‘정성공’이라 부를 수 있나?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는 정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만.” 이오리가 턱을 매만지던 손을 멈추었다. “그는 명을 위해 싸우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고작 몇 년 정도가 흘렀다고 해서 그 마음이 변한다는 건, 나로선 납득이 되지 않아.” “어머. 이건 또 날카로운 지적이네.” 도로테아가 작게 웃었다. “뭐, 나야 당신들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그쪽의 장군님이 우직한 성격이라는 건 알지. 뭐, 중요한 건 이렇게 머리를 모아봐야 결론이 나지는 않을 거란 거야. 그가 정말로 관측 불가능한 미래에서 왔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도로테아가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땅을 내려다보는 도로테아를 보며 이오리가 의아하게 그녀를 불렀다. “도로테아 공?” “………관측…… 미래… 어쩌면 뭔가 방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확실하진 않지만. 당분간은 혼자 조사해볼게.” 도로테아가 휙 돌아섰다. 말이 없는 정성공 대신 이오리가 일어났다. “도울 게 있다면—” “당신들은 당신들 나름대로 준비를 해둬. 지금으로서는 방편을 제일 많이 마련해두는 게 중요해. 그럼, 뭔가 성과가 생기면 연락할 테니까.” 그 말만 남기고 도로테아는 빠르게 사라졌다. 마술 쪽에 능통한 그녀니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이오리는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성공은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그를 지켜보던 이오리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정, 혹시 명을 재건한 뒤에 하고 싶었던 일이 있나? 혹은 그것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긴 일이라든가.” “말하자면 정말 많지. 소원이란 건 하나를 이루면 또 하나가 갖고 싶어지는 법이잖나.” 투덜거리듯 말한 정성공이 턱을 괴었다. “그의 얼굴로 봤을 때, 미래에서 왔을 가능성은 제법 높아. 하지만 그 복식… 적어도 평화로운 시대를 지내는 자의 것은 아니었어. 청과 싸울 때 그의 것과 비슷한 갑옷을 입은 적은 있지만……. 그렇다면, 그는 청과 여전히 싸우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가 자신의 명을 내팽개치고 과거로 왔다는 게, 이오리 네 말대로 납득이 되지 않아. 그가 나 자신이 맞다면 수치스러워서 자결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다!” “자결은… 그만둬주게. 지금은 정이 없으면 이 사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으니까.” 이오리의 어설프지만 진심어린 제지에 정성공은 한숨만 깊게 내쉬었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겠지만, 그는 나에게는 호의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첫 싸움에선 유독 나만 노리고 있었지…….” “…….” 그를 향해 날아오던 불화살. 그것은 분명 정성공을 노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혼란스러워하던 정성공은 문득 고개를 들어 이오리를 보았다. 그는 덤덤하게, 하지만 예리한 눈빛으로 정성공을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이건 미래의 당신이 아닌 지금의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만.” 이오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 “……정, 당신은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진 않은가?” “……!!” 잠시 놀란 듯했던 정성공이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이오리가 말을 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당신은, ‘표리가 같은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는 세이버의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었지. 그건 아마, 그 말에 동의하지 않거나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 않나?” “…….” “물론, 나는 그때 말한대로 아카사카에 도착했을 때의 당신의 이야기를 믿고 있어. 지금도 굉장히 신뢰하고 있고, 선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일 뿐이지.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정성공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오리는 끈기 있게 독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한참만에 헛웃음을 흘린 정성공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오리, 자넨 정말 눈이 날카롭군.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칭찬으로 듣지.” “칭찬이고 말고. …뭐, 부정하진 않겠다. 내가 저질러온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선 그런 짓을 해온 나 자신을 경멸하고 있어. 이건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얻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피로 물든 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전쟁이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방비하게 적에게 당할 뿐이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한 것과, 인간으로서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래서야 자신이 힘들어질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정은 끝까지 그 감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하지만 경멸하고, 스스로를 미워하면서도 나아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이미 죄를 저지른 내가 감당하는 것이 맞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를 잃고 고통받는 민중들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명을 다시 세우더라도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면 계속해서 싸워나갈 거다. 그러고 싶어.” “……그런가.” 이오리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를 미워한다고 했지만, 역시 정,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다. 어쩌면 스스로가 너무 미워져서 과거의 자신을 죽이러 온 게 아닐까 했지만…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 더 큰 대의와 충심을 품고 있어. 만약에 그것을 저버렸다면 그에 준하는 엄청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아는 정성공은 그런 남자다.” “……듣고 보니 굉장히 낯뜨거운데… 크흠. 말하고 싶은 바는 알겠다. ……고맙다는 말은 해두지.” 헛기침을 하던 정성공이 화제를 돌렸다. “그렇다면 결국 미래의 ‘내’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변해버렸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다시 원점이로군.” “그렇군. 도로테아 공도 조사해준다고 했고, 아처와 세이버가 뭔가 알아올지도 모른다. 그들을 기다려보자.” “음. 그게 낫겠군.” 고개를 끄덕이던 정성공은 문득 그가 머리에 꽂고 있던 비녀를 떠올렸다. 그것은 분명, 아처가 머리에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물건이었다. 아처가 해준 걸까? 영월의식이 끝나면 서번트인 아처는 사라질 운명. 아처가 곁에 없는 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정성공은 입을 다물었다. 묘한 불길함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불합리하고, 의미없지 않은가. 차라리 그가 아처를 다시 소환하는 게 낫지, 굳이 미래까지 와서 과거의 자신의 서번트를 갈취한다는 건……. ‘역시 망상이겠지.’ 정성공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지웠다. 지금으로선 이오리의 말대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