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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지크)내가 오늘 죽을 것 같아서
Caption 1부 내가 오늘 죽는다면 , 2부 내가 오늘 죽을지 모르니까 , 3부 내가 오늘 죽더라도 에서 이어집니다. 육체적 상해, 치명상, 유혈, 성관계 언급, 캐릭터의 죽음 암시 등의 트리거 워닝 요소가 있습니다. 게임 스토리와는 무관한 오리지널 설정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건 진짜 죽겠는데? 제 발로 걷겠다고 한 오기가 무색하게, 지크하트는 또 걸음을 멈추고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았다. 피가 잘 돌지 않는 차갑고 딱딱한 손이 마치 남의 것 같았다. 이마도 묘하게 미지근한 온도가 낯설었다. 피는 어느 정도 멎었고, 작은 상처도 제법 아문 듯했지만 치유력이 돌아오는 것인지 악화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숨을 천천히 고르며 눈을 감았다 뜬 지크하트가 팔뚝을 살폈다. 핏기 하나 없는 살갗이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니라 대리석을 깎아놓은 석상 같았다. “야.” 상대는 부르자마자 바로 다가왔다. 웃음이 나올 법한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놀릴 여유도 없었다. “괜찮냐…? 신성력이, 어째 기억보다 더…” “난 멀쩡하니 너나 걱정해라, 하이랜더.”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평소처럼 차분했다. 겨우 올려다본 얼굴도 힘든 기색은 없어보였다. 그제야 입가에서 힘없는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이게 뭐라고 안심이 된담.” “……힘들면 데리고 나가겠다.” “아냐. 조금만 더… 효과가 없진 않은 것 같아.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 봐야지….” 디오의 눈이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지크하트를 조용히 훑었다. 확실히 얕게 긁혔던 잔흔은 사라지고 어깨의 움직임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평범한 인간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회복 속도였다. 허나 그가 치유력을 되찾고 있는 거라면, 지금의 맥없이 힘들어 하는 모습은 무어란 말인가. 디오의 미간이 깊어졌다. 그 사이 지크하트는 다시 안으로 느리게나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고집이 세니 말려도 들어야 말이지. 한숨을 푹 쉰 디오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인기척에 돌아보던 지크하트가 돌연 덥석 안아올려져 눈을 커다랗게 떴다. “뭐야… 아직 걸을 수 있어!” “열 보 걷고 한 보 멈추는 그거 말이지. 답답해서 못 봐주겠으니 그냥 얌전히 있어라.” 태연하게 말하며 슥슥 나아가던 디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함께 비를 피할 때보다 지금의 지크하트가 더 차갑고 가벼웠다. 착각이길 바랐으나 맨가슴에 닿는 연약한 숨결마저 온기가 없었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다급하게 그를 찾는 시선이 삐딱하게 디오를 올려다보는 은안과 얽혔다. 매번 짜증난다고 생각했던 건방진 기세가 반가워보이긴 처음이었다. “왜. 안 갈 거면 도로 내려줘.” “…….” “갑자기 왜 벙어리가 됐냐? …잠깐, 역시 상태 안 좋은 거 아냐?” 뜨거운 뭔가가 울컥 치솟았다. 화낼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지금 네놈 꼴이 어떤지 알고는 있나? 남 살필 시간에 네 몸이나 걱정해라.” 지크하트는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눈썹을 한껏 구긴 디오가 발을 옮겼다. 그 말 참 자주 듣네. 그렇게 보기 흉한가. 소리 없이 중얼거리면서도 지크하트는 가만히 디오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난 진짜… 네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 동굴을 크게 울리던 발소리가 느려졌다. “우리 사이가 대단히 좋았던 것도 아니잖아? 최악이라면 최악이었지… 솔직히 말하면 별로였던 건 아닌데… 네가 고작 몸정 때문에 이러는 거면, 그건 그거대로 웃길 거 같고.” 지크하트는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질문도 아닌 혼잣말이 그저 깨진 독의 물처럼 줄줄이 새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재수없는 일 생겨도 말을 전해줄 사람 한 명은 있으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이걸 말하려던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오늘 죽는다면…” 억지로 쥐어짠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거면 됐나. “그렇게 되면… 여행을 떠났다고 전해줘… 묘비도 남기지 말고… 검 한 자루도 남기지 말고… 그가 오늘도 살아 있구나 하고… 혹시나 해서 무덤을 찾다가도 안도할 수 있게…” “지크하트.” 디오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늘상 듣는 호칭이 아닌 이름에 지크하트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엔 미미하면서도 분명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착각할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시선에 지크하트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네가 안 죽었으면 좋겠다.” “…….” “하다못해 내가 죽을 때까지만. 그 뒤엔 죽어도 뭐라고 안할 테니까.” 동굴 어디선가 물이 느리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달싹이는 지크하트의 입술이 떨렸다. “왜?” “내가 널 사랑하니까.” 지크하트는 그제야 자신이 쭉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해가 안 간다고, 차라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도 차마 말로 내뱉지 못했던 까닭은, 그가 먼저 말해주기를 바란 이기심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또한 깨달았다. 몸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버티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야 했던 이유를. “그럼… 내가 오늘 죽으면…” 뻗은 손가락이 디오의 뺨에 닿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따뜻한 체온에 금세 부드러워졌다. “네가 많이 슬프겠다.” “…….” “그리고 나도…” “……….” 디오의 눈이 살풋 떨렸다가 잔잔해졌다. 지크하트가 그랬듯이 디오도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차마 더 말이 나오지 않는 입술을 그의 손바닥에 옮겨묻으며 디오는 눈을 감았다. 물 소리보다도 연약한 심장 박동이 유독 원망스러웠다. 안으로 들어올수록 지크하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몸도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디오 역시 전신을 짓누르는 신성력에 온 관절이 뻐근했지만 이 정도는 못 버틸 것도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겨우 좁은 통로를 빠져나온 순간, 디오는 마침내 도착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굳이 물어볼 것도 없는, 심장이 뻐근해지도록 아름다운 장소였다. “지크하트. 다 왔다.” 유리를 녹여넣은 듯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움푹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엔 새하얗고 고운 모래가 가득했고, 주변의 벽도 오랜 세월의 물기를 머금어 보석처럼 시시각각 반짝거렸다. 폐가 따끔거리도록 넘실거리는 신성력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경치였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던 디오가 문득 품을 내려다보았다. “지크하트?” “…….” “…어이. 다 왔다니까.” 지크하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얼굴이 확 굳어진 디오가 다급히 그를 내려놓고 상태를 살폈다. 심각한 부상은 거의 나았건만 정작 살갗이 무기질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숨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약하고 맥박도 지나치게 느렸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디오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들었다. 얼빠진 채 멈춰 있을 시간은 없었다. 여기까지 힘내서 버텨온 건 디오 혼자만이 아니지 않은가. 지크하트를 호수 가까이로 옮긴 디오가 물에 두 손을 집어넣었다. “큭….” 반사적으로 악문 잇새 사이로 미처 누르지 못한 신음이 새어나갔다. 독극물에 생살을 담근 것처럼 물이 닿은 부위가 녹는 듯이 화끈거렸다. 디오가 하급 마족이었다면 닿는 즉시 살이고 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하이랜더들도 오래는 머물지 않는 장소라고 했던가. 디오는 그제야 그 말을 이해했다. 동시에, 지크하트가 희망을 걸었던 이유도 알았다. 물을 입에 머금은 디오가 지크하트에게 입맞추며 숨과 함께 물을 흘려넣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디오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이 손에서 피가 나고 살갗이 벗겨지면서도 디오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지크하트의 몸에 남아 있던 흉터는 거짓말처럼 사라져갔다. 인형처럼 굳어 있던 손가락도 조금씩 까닥거렸다. 하얗게 터서 말라붙어 있던 입술에도 옅게나마 생기가 돌아왔다. 제 입술에서 묻어난 핏자국을 부드럽게 닦아내고서야 그것을 확인한 디오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난 네가 하이랜더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어.” 늘 그를 하이랜더라고 불러온 디오였지만 이것만은 진심이었다. 그는 하이랜더이기 전에 인간이었고, 천재 검투사로서의 자긍심을 가진 존재였다. 한낱 인간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세월을 견뎌낸 건 그저 육신에 깃든 축복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다. 그는 늘 욕망하며 살았다. 따분한 것을 싫어하고 재밌는 것은 한껏 즐겼다. 그는 죄책감에 짓눌려 그저 도망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일을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알았다.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았다. 그래서 디오는 지크하트가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일도 살아 있어라.” 다시금 물을 머금는 입은 이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화끈거리고 간질거리는 감각이 목구멍 언저리에서 애매하게 맴돌 뿐이었다. 벌어진 입에 재차 물을 흘려넣어주며 디오가 그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부르튼 살갗 너머의 그의 체온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진 것 같았다. “……피맛 나…” 디오가 퍼뜩 눈을 떴다. 지크하트가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디오는 긴장을 놓지 않으려 무던히 애써야 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조금만 더 참아라.” 초점이 흐릿한 은안이 느리게 깜빡이다가 점차 빛이 돌아왔다. 내내 축 늘어져 있던 왼손이 힘겹게 움직여 피투성이가 된 디오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더는 차갑지 않은 체온이 거짓말 같았다. 디오는 저도 모르게 그 손을 꽉 감싸쥐었다. “참 미련하다, 너도…” “…너 때문이다.” “할 말 없네. …비켜. 내가 마실게…”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지 않나. 가만 있어라. 무리하지 말고.” 지크하트는 더 우기지 못했다. 힘도 없거니와 저를 위해 손과 입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애써주는 사람을 더 막을 용기도 없었다. 두세 번 정도 더 물을 받아먹고 나서야 의식이 또렷해진 지크하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물보다 네 피를 더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러다 마족 되는 건 아니겠지.” “잘됐군.” “하여간 농담도 못해… 나 좀 부축해줘. 아직 못 일어나겠다…” 물론 디오는 지크하트가 제 발로 걷도록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호수와 좀 떨어진 벽에 기대어 앉은 지크하트가 눈을 감고 있다가 그를 끌어당겨 곁에 앉혔다. “손 봐봐.” “괜찮다.” “됐고, 보여줘. 나 환자야.” 말을 그렇게 하는 환자가 어딨냐는 듯 디오가 눈을 흘겼지만 곧 순순히 손을 내어주었다. 호수와 멀어지자마자 조금씩 아물어가는 흉터를 찬찬히 살펴보던 지크하트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툭 머리를 기댔다. “…무식한 짓 하지 마.” “네가 할 소리냐.” “이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작게 항변하던 지크하트가 콜록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디오가 아직 창백한 이마에 제 이마를 갖다대었다가 표정을 굳혔다. 닿는 살갗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다 나은 것 아니었나? 왜 열이…” “후우… 낫는 중이라서 그래… 괜찮아… 잠깐 자면, 나아질 거야…” “…….” “진짜야. 그러니까 이제 됐어…” 지크하트가 디오의 팔을 힘겹게 붙들었다. 품으로 바짝 다가앉는 몸이 오한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디오는 차마 그를 두고 일어날 수 없었다. “같이 있어 줘……” 이 목소리를 어떻게 모른 척하고 간단 말인가. 결국 디오는 한숨을 내쉬며 지크하트를 꼭 끌어안았다. 손의 흉터는 이미 다 아물었는데도 가슴 한 구석이 유독 쓰라리고 아팠다. 품에서 몇 번이고 들려오는 작은 기침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