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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루시)사랑이라 부르자
Caption 신성모독, 살해, 유혈, 폭력, 가스라이팅 등의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적을 없애려면 그를 알아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랑과 살의는 일맥상통하기에, 이사야는 루시아스에 대해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성자’란 대대로 기억과 힘을 이어받는, 허나 삿된 자의 변덕과 술수에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무고한 희생양을 낳을 뿐인 시스템. 기록을 남기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와 삶을 증거할 수도 없으며, 의식이 붕괴되고 자아가 매몰되어가는 그 순간까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이 어찌나 부도덕하고 잔인한 처사란 말인가. 이사야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뜻이 아닌 행위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검은 오롯이 어머니를 위해, 그녀의 손짓, 기도, 고해, 향방, 그 모든 것도 오직 어머니를 위하여. 그러나 이사야는 그날, 처음으로 맹렬하게 누군가를 쫓았다. 어린 양은 불쌍하게도 육신의 한계까지 ‘이단의 힘’을 끌어올려 저항을 택했다. 어리석은 선택을, 이사야는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분노했고, 스스로 선택하여, 그를 향한 사랑을 담아 해방하기로 하였다. 무수한 우자들이 그녀의 사랑을 방해하다 죽어갔다. 그녀의 이해를 받아들이지 못한 어린 소년도, 반송장이 될 때까지 일어나고 또 일어섰다. “……가엾게도.” 핏물이 차올랐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눈동자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선명한 제비꽃색과 청명한 물망초색. 그리고 그 빛을 덮어 퇴색시키고 마는 저주스러운 배신의 노랑. 루아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이 아리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힘을 준 탓에 검 손잡이를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저는… 쉽게 포기하지… 않ㅡ” 그럼에도 검은 빨랐고, 삽시간에 루시아스의 어깨를 관통하여 벽에 꽂혔다. 소름끼치는 비명이 사방을 울렸다. 가엾게도. 황홀하게도. 이사야는 덜덜 떨리는 소년의 턱을 살며시 잡아쥐었다. 집념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억눌렀을지라도, 출혈과 부상으로 인한 육체적 반응까지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사야는 소년의 머리에 성호를 그었다. 아래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저 역시, 포기하지 않을 거랍니다.” 목자는 화사하게 미소지었다. “당신께 어머니의 자비가 온전히 닿을 수 있도록,” “큭……무, 슨… 헛……소리를……” “그 간악하고 지독한 굴레에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도록. 그것이 제 역할… 아니.” 이사야는 그의 뺨을 쓸었다. 그저 커다랗게 뜨여 있었을 뿐인 눈동자가 곧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아, 이 감정을, 이 고통을 한 번에 거두는 것이 진정한 자비로움일진대, 닿지조차 못하게 하다니 이단이란 어찌 이리도 사특하고 교활한가. 여신 루아, 약속의 배신자여! “제가 처음으로 바란 마음이니까요.” “…이, 사야… 당신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군요. 저도 당신의 이름을 알았답니다. ‘루시아스’, 목줄이 채워진 어린 양.” “당신은… 뭘… …………!!!!” 어깨에 꽂힌 검이 그대로 돌아갔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온갖 구멍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았다. 루시아스는 알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기억 속에서 이미 수십 수백 번을 경험했던 고통이었다. 가빠지는 숨. 흐려지는 시야. 아주 느리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 식어가는 체온과 신경이 녹아내리듯 무뎌지는 감각들. 그러나 타인의 기억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고, 루시아스의 최후는 좀 더 처참할 예정이었으며, 이사야는 마치 성인처럼 온화하게 미소를 띠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답니다. 목줄을 부술 수 없다면 목을 자르거나, 으깨거나. 연결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겠지요. 지금 실패하더라도, 언젠간.” “……. …ㅡ, ………….” “어머니께서 제게 긴 수명과 고귀한 힘을 나눠주심은 필히 이를 위한 것이었겠지요. 두려워 마세요. 그녀의 간악함이 당신을 두 번 살릴진대, 세 번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뒤를 이을 어린 양도 필히. 이 이사야의 이름으로.” 죽어가는 이의 몸을 그러안아, 하얀 수녀복 위에 눕히고 단정히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몇 번이고 죽여서,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지요.” 피로 물든 뺨을 조심스레 닦아내는 손은 성녀의 기도와 같고 그를 담는 눈은 애정으로 가득하니, 감히 누가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소리없는 입술이 끔뻑거린다. 이미 핏기가 가시고, 마지막 성흔조차 피에 지워진 순간에. 단정한 이사야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죽었을 터인 몸 뒤에서 사나운 광휘가 가차없이 시야를 내리쳤다. 주변이 먹먹해졌다. 그가 배신자에게서 빌려온 권능 따위가 아니다. 루시아스, 그의 신성력이었다. 이사야는 이 힘을 이미 알고 있었다. ㅡ그럼 전 몇 번이고 살아서, 당신과 맞서겠습니다. ㅡ성자, 루시아스의 이름으로. 새하얀 바람이 시체들 사이를 나부꼈다. 허공에 들려 있던 고운 손이 피투성이 치맛자락을 문질러폈다. 이사야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년은 녹은 눈사람처럼 사라졌지만, 그가 있었던 흔적은 지독히도 짙었다. 이사야는 제 어깨에 박힌 검을 빼냈다. 새파란 핏물이 기괴하게 흘러넘치며 그녀의 걸음마다 긴 꼬리를 남겼다. “…그렇군요.” 이사야는 검을 내려다보다, 웃었다. 한낱 인간의 미약한 기도가 깃들었을 뿐인, 그럼에도 루시아스가 온 힘을 다해 찔러넣었던 신념이다. 이사야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제게 남긴 상흔을 사랑하며, 다시 그를 자비로 안아들 날을 헤아리기로 했다. “어머니 레아시여, 부디 바라옵건대, 길을 잃은 양을 가여이 여기시고 제게 그의 생을 기꺼이 거두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덧없는 신념을 그의 영혼과 함께 어머니의 손에서 지게 하소서.” 아아, 당신도 나와 같다면. “여신의 이름으로.” 이 지독한 술래잡기의 시작을, 끝을, 그를 잇는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 부르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