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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같이 대화를 하고 개연성은 어디로 갔는지 잘 모릅니다 사실 졸렸을 때 갈겼습니다
“왜 제가 싫으십니까?”
샤크메가 기울인 잔에서 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뭐 그딴 질문을 하느냐는, 어이없음과 약간의 곤혹이 그대로 묻어나는 얼굴에 자피르는 뭘 먼저 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물론 손은 반사적으로 수건을 집어 그에게 건넨 채였다.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단순히 제가 신왕의 혈통이라서입니까? 자식도 손주도 아닌 머나먼 후손보다 당신이 그분과 더 가깝다는 건 당신도 알 텐데-”
“말이 많군. 귀찮으니 꺼져라.”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샤크메가 수건을 낚아챘다. 물론 자피르는 떠나지 않았다. 최근 며칠 간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는 제법 고집이 셌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굽힐 줄을 몰랐다. 지렁이 한 마리 못 잡아봤을 법한 순한 눈을 하고서 저렇게도 고지식할 줄이야. 제 몸집의 몇 배는 거대한 손에 짓눌려가면서도 버티고 섰던 때부터 진작 알아보긴 했다만… 샤크메는 젖은 수건을 도로 던졌다. 물론 자피르는 실수로라도 맞아주지 않았다.
“카인과 관련된 거면 뭐든 질색이다.”
“그게 전부입니까?”
“내 감정을 네놈이 납득해야 할 때까지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
샛노란 동공이 칼날처럼 번들거렸다. 자피르는 기죽지도 않고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여간 눈엣가시 같은 놈. 샤크메는 팔짱을 끼고 험악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이쯤 되면 물러서겠거니 했지만 그는 샤크메의 예상보다도 훨씬 집요했다.
“저는 신왕의 후손이 아니면 누구도 저를 알아봐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누군가들은 그러했고요.”
힘이 잔뜩 들어간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그래서 신왕의 후예가 아닌 저를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좋은 분들께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당신과 마주하기 전에 저는 스스로와 싸우고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고작 그딴 자기 소개를 하려고 날 귀찮게 만들었단 말이냐.”
“아직도 알아주지 않는군요. 당신은 신왕과 관련된 제가 싫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가까워졌다. 샤크메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느라 방심했단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청년의 눈이 거짓말처럼 맑고 진지했다. 탁자를 짚은 손이 저보다 뼈대가 굵고 단단한 손에 스칠 듯 가까워지다 멈췄다. 아주 잠깐의 순간, 샤크메는 일전 그의 화살에 맞았을 때처럼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신왕과 관련 없는 저만의 모습을 보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
“그래야만 저도 당신의 증오를 꺾어내고 인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 풋내기가, 그럼에도 저보다 더 멀리 보는 눈을 가진 녀석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게 도리어 분노를 부추겼다. 욕심이라곤 일절 없는, 처절함도 긴장감도 다 털어낸 어조로 자피르는 말하고 있었다. 나를 미워하고 싶다면 제대로 ‘나’를 보라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누군가를 바로 들여다보고, 헤아리려 애쓰는 노력이, 그 시도가 자신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샤크메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감정이 극에 달하다 기어이 뇌리를 아프게 찌른 순간, 판단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뽑힌 검붉은 칼날이 코앞까지 다가온 자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챙!!
자피르의 무기는 활이다. 그러나 허리에 찬 검 또한 장식용이 아니었다. 간발의 차로 그의 검을 막아낸 자피르가 눈썹을 찡그렸다. 뺨에 미세하게 그어진 실낱같은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아직은 그것조차 무리입니까.”
사내는 맹수처럼 씨근거리며 자피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부딪힌 날붙이를 거두고 물러선 뒤에도 그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제가 급소를 찌른 것 같군요. 속으로만 어깨를 으쓱이며 자피르는 공손히 물러섰다.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서.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니까요.”
살기로 물들었던 동공이 그제야 가라앉았다.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 자피르가 정중히 인사했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진지한 얼굴 그대로였다. 차라리 제라마냥 놀리는 거였다면, 아니면 카인처럼 그저 의중만 전하는 인사였다면 이리도 싫어하진 않았을 것을.
“그럼 다음에 또.”
지나치도록, 자신을 당기고 흔들고, 끝내는 저를 볼 때까지 기다릴 그가 진절머리나도록 싫고 또 싫어서.
자피르가 떠나고 난 뒤에야 신경질적으로 터진 어둠이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그을음을 남겼다. 애꿎은 화풀이라도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꽉 쥐었던 주먹이 부르르 떨리다가 느리게 잦아들었다. 입안이 온통 쓰고 텁텁했다. 카인 때와는 확실히 다른 증오의 맛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