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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졸려서 캡션만 빠르게 달기... 대충 나소드 전쟁이 일어나고 헤니르교단이 설치고 해서 엘프와 정령의 연결이 차차 약해져서 클라모르같은 정령친화력이 거의 없는 엘프들의 탄생율이 높아졌고 소란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망상입니다...
커플링 요소없습니다 ㄹㅇ 망상뿐
“역시 그 아이는 안 되겠어.”
누군가가 탄식했다. 이어 누군가는 이마를 짚었으며, 누군가는 고개를 떨구었고 누군가는 덤덤히 홀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표현은 제각각이었으나 그들은 흡사 한 덩어리처럼 닮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 로브를 입고, 뾰족한 귀를 갖고 있었으며, 주변엔 녹음의 바람이 이따금 일다가 가라앉곤 했다. 얼굴에 가장 많은 주름이 진 엘프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네. 정확히는, 이미 닥친 일이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장로님, 저희 가문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불합리합니다! 방도를 알아내든가, 다른 가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이미 몇 백 년 전에도 저희를 도와주지 않았잖습니까! 그때 그 아이의 생사조차 확인이 불가능한 걸 잊으셨습니까?”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중년 여성이 자리에서 벌컥 일어나며 언성을 높였다.
“조용히 하세요. 클라모르를 인간들 곁으로 내쫓다시피한 건 결국 우리가 아니었나요? 그들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게 왜 우리 잘못입니까!! 우리도 최선을……”
“그만들 하시오.”
청년이 입을 다물었다. 장로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며칠 전 한 자리에 모였던 다른 가문의 장로들의 모습이 어두운 눈커풀 위를 스쳐갔다. 무거운 시선, 침통하고 낮은 속삭임. 그들의 입에서도 소년들이 슬픈 울림으로 오고내렸던 것을 장로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몇백 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소년의 얼굴도.
‘장로님. 저는 세븐 타워에 남겠습니다. 그 편이 제 가족들에게도, 다른 엘프들에게도 도움이 될 걸 알고 있습니다.’
‘…정말 괜찮겠느냐.’
한참 말이 없던 소년이 지어 보였던 지친 미소는 비수 같았다. 후련함 뒤에 숨겨진 체념을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을. 장로는 되살아나는 죄책감에 늙은 손을 떨었다.
‘제게 그것 외의 선택지는 없지 않습니까.’
‘……미안하다. 클라모르. ……진심으로, 미안하구나.’
“…엘드랏실의 의지가 가로되, 엘의 기운이 쇠하고 쇠붙이가 생명을 앗으며 번성할 것이나, 이는 낮밤과 같이 예정된 자연의 순리일지니. 다만 흐름에 경계하며 지혜를 닦아 후대의 땅을 수호할지어다.”
숨소리마저 묻힌 정적이 이어졌다. 어린 엘프가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장로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클라모르가 태어나던 날 받았던 예언이오. 실제로 이후 엘프들은 정령과의 연결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엘리안들에게 경고했지. 허나 인간들은 우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수 차례의 설득이 수포로 돌아가 우리는 엘리안 왕국을 떠나 이곳에 자리를 잡았소. 그 과정에서 어린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사실이오.”
클라모르 벤투스. 그들은 모두 같은 이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령친화력이 비정상적으로 미약하고 마력도 옅어, 그는 엘프들 사이에서도 ‘가짜’로 불리며 등이 떠밀리듯 세븐 타워로 보내졌다. 그의 가문인 벤투스가 이를 누구보다 수치스러워 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클라모르를 아는 이들조차도 함부로 거론하지 못했던, ‘인간’만도 못하다 여겨지던 가짜 엘프. 그러나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소란에게까지 그런 무거운 짐을 안겨줄 수는 없소. 그때는 외면했으나 이젠 받아들여야 하오. 다른 가문들의 어린 엘프들 중에서도 정령친화력이 낮은 엘프들이 태어나고 있다고 하오. 엘의 힘이 약해질수록 이런 아이들이 더 많이 생겨나겠지. 우리와 소통할 만큼 강한 정령들도 사라져갈 테고…머지 않은 시대엔 정령과 소통이 가능한 엘프가 귀해질도 모르오.”
“저희는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까? 정령과 소통하고 자연을 수호하는 것이 저희 엘프의 사명이잖습니까! 그런데 그 숙명을 받들 능력이 없다니, 그건 엘프가 아닙니다. 인간만도 못한 존재란 말입니다!”
목소리가 큰 사내가 책상을 두드렸다. 중년 여성이 사내를 노려보았다.
“아까 장로님의 말씀을 못 들으셨나요? 점차 이런 엘프들이 많이 태어나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 그들을 전부 가짜 취급하실 건가요? 살아 있는 생명을요?”
“다들 그만하시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오. 소란, 그리고 이후에 태어날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것이오.”
엘프들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정령친화력이 극도로 낮아, 정령과의 대화 혹은 접촉이 불가능하며 혹은 존재의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엘프들이 태어나게 된다면. 정령의 힘과 지혜, 마력을 빌려 살아왔던 엘프들에게는 큰 타격임은 분명했다. 당장 한 소년의 탄생으로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장로는 소란을 버릴 수 없었다. 두번째 클라모르를 만드는 것만큼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소란을 버릴 마음이 없소. 그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찬찬히 숙고해보리다.”
“하, 하지만 장로님! 들어주십시오!!”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뒤를 허둥지둥 다른 엘프들이 따랐으나 대부분은 자리에 앉아 술렁이고 있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금발의 여성이 창백한 입가를 쓸었다.
“가능성이 없이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키운다는 거야… 인간처럼…?”
“어중간한 정령친화력으로는 의미 없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느니만 못할 거야.”
“클라모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아이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
“……죽었겠지. 그 아이는…… 저주받은 수명이었잖아.”
구석 어딘가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각자의 생각에 잠긴 엘프들은 누구도 그 소리를 알아채지 못했다. 낮은 한숨과 탄식, 넋두리를 안고서 엘프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마지막 의자에서 일어난 엘프가 낮게 흐느끼며 비틀거리다 나간 뒤엔, 누구도 닫힌 문을 재차 열어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소란’은 소리내어 울었다. 고작 이름밖에 모르는, 자신과 같은 처지였을 그가 너무도 그립고 서러워서. 차라리 그라도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여서. 눈가가 짓무르고 목이 쉬도록, 아이는 홀로 숨어 오래도록 울었다. 먼 옛날,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