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ion
센츄리온 x 둠 브링어입니다. 청과 애드로 표시합니다.
사실 애드 합류 시점이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아틀라스 정거장이었던가요... 쩜쩜... 하멜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틀렸으면... 이 글에서는 하멜 이후에 합류한 걸로 받아주십사<
파랫님의 쾌차를 기원하는 선물입니다. 쓰다보니 초큼 우울한 내용이 된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청, 위험해! 뒤로 빠져!’
‘이 정도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 먼저 대피시켜주세요!’
‘이 바보가! 돌아와!! 휘말리면 끝장이라고!!’
어지럽게 맴돌던 목소리가 금세 피곤한 시야를 무너뜨리며 신기루로 떠돌아다녔다. 애드가 발을 멈추었다. 진작 끝났을 땅의 진동. 천지를 흔들던 무시무시한 굉음. 사방에 흩어져서 싸우던 동료들의 외침과 민간인의 비명. 먼지와 쇠와 짐승의 냄새가 엉망으로 뒤섞인 바람. 애드는 저답지 않게, 이것이 자신이 겪은 기억과 혼란이 가져온 착시임을 알면서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청!!!’
흰 망토가 지나치게 어지럽게 펄럭거렸다. 금이 간 디스트로이어에서 기어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스파크가 멀리서도 보였다. 우습게도, 이젠 뒤에서 한 방이면 충분하다며 으스대었던 그는 모두를 구하겠다고 성난 포탄처럼 튀어나가 있었다. 에너지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리는 철포에서 박살난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하얀 빛이, 고막을 찢는 듯한 포효가 사방의 적들을 가리고 그의 잔상마저 집어삼켰다.
“윽ㅡ”
애드가 무심코 머리를 감싸쥐었다. 고꾸라질 듯 휘청거리던 몸은 간신히 멈췄으나 다리는 볼썽사납게 떨렸다. 무리는 아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벌어진지 고작 스물네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다 끝났다고, 지난 감정에 묶여서 판단이 흐려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다잡아도 결국 그도 인간이어서. 퇴색되지 않은 긴장감과 절박함, 일순 호흡이 멎을 뻔했던 공포도 쉬이 지워질 리 없었다.
애드는 낮게 심호흡을 했다. 엉망이 된 코트가 땅에 끝릴 듯하다가 바로세워졌다.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다이너모에게서 무의미한 스캐닝을 반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물 확인. 생명 지장 없음. 목표물 확인. 생명 지장 없음. 호흡 정상. 목표물 확인. 맥박 정상. 생명 지장 없음. 애드가 걸음을 옮겼다. 멀리 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괜찮냐.”
청은 말이 없었다. 치열했던 전투가 끝나고 모두 치료를 받았지만 정신적 후유증 만큼은 직접 극복하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애드가 고개를 들었다. 규모가 작지 않았던, 꽤 번창한 건물과 활기로 가득했던 마을은 이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가라앉은 보랏빛 눈이 그에게 돌아왔다. 청의 갑주와 철포는 어느 정도 수복되어 손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다른 부분이겠지. 애드가 그의 옆에 털썩 걸터앉았다.
“부상자들 응급 처치는 끝났어. 생존자들 구조도 일단락되었고.”
“…….”
“사람들을 어디로 피난시킬지는 아직 논의중이지만… 레이븐이랑 엘리시스가 의논중이니 금방 결정나겠지. 부족한 물자는 아틀라스 정거장을 통해서 끌어올 모양이야.”
“…….”
“…그래서 다시 묻는데. 넌 괜찮냐.”
청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나 곧 헛웃음을 흘리며 제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그는 걱정했던 것만큼 죽상은 아니었다. 전에 없이 풀죽은 눈이긴 했지만. 애드는 내심 안도했다.
“나참, 평소엔 뒤에서 잘만 쏴갈기던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가고 난리야. 오랜만에 옛날 버릇이라도 나온 거냐? 아이샤가 말하길 이거보다 더 거칠었다더만. 두 번 거칠었다간 아주 주먹으로 두들겨패겠더라.”
“무기 있는데 뭐하러 그래요.”
“쏘라고 있는 철포를 대차게 휘둘러대던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청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고마워요. 걱정해준 거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냐?”
“한가하지 않은데 없는 시간 쪼개서 데리러 와준 거잖아요.”
그게 고맙다고요. 청이 덧붙이며 일어섰다. 애드는 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짧은 금발을 흩날리며 먼 곳을 응시하는 청은, 애드의 기억과는 조금 낯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향이 생각났어요.”
애드도 곧잘 들은 바가 있다. 마족 부대의 습격으로 그의 고향인 하멜이 쑥대밭이 된 뒤, 남은 병사들을 모아 싸우던 청을 엘 수색대가 구해줬다던 이야기. 청이 직접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도, 무용담이나 자랑거리처럼 화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으니.
누군가에겐 지금을 잊게 만드는 아픈 기억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마을이 불타고, 가라앉고, 무너져내리고… 지금도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해요. 그래서 옛날 버릇이 나왔나 봐요. 디스트로이어 개조한 뒤로는 잘 안 그랬는데.”
실없는 웃음이 섞여 나왔다. 그 입이 무겁게 닫히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쯧. 짧게 혀를 찬 애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뻔하구만. 그때처럼 지금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지?”
“…역시 형 눈은 못 속이겠네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무기를 개조하고 강해지려고 그렇게 발버둥쳤는데, 왜 이런 결과냐고도 생각했겠지.”
“너무 꿰뚫어보시면 부끄러운데요……”
불쑥 애드가 청에게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입을 다문 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참 그를 바라보던 애드가 툭 내뱉었다.
“내가 뭐라고 할 것 같냐?”
“어… 한심하다고?”
“틀렸어.”
“그럼 멍청하다고?”
“그렇긴 하지만 정답은 아냐.”
“뭐에요, 그게.”
픽 웃은 애드가 청의 이마를 톡 밀었다. 딱히 아플 일도 없는, 힘도 전혀 실리지 않은 가벼운 손길이었다.
“넌 오늘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난 네 과거의 그 자리에 없었지만, 아마 그때도 그렇게 싸웠겠지. 고집 세고, 우직하고, 몸 아끼란 말은 죽어도 안 듣는 녀석이니까. 나이 좀 먹었다고 성질 어디 가겠냔 말이야.”
청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이어지는 말은 더없이 차분하고, 냉정하고, 분석적이고, 그럼에도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후회는 하지 마라. 다음에 또 튀어나가지 않도록, 네 몸과 마음 잘 건사해두라고. 트라우마는 한 번이면 됐어.”
“…….”
“이 몸이 네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단 걱정을 할 일은 없게 하란 거야. 알겠어?”
우스운 일이다. 누가 누구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가. 그래도 애드는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스스로를 내던져서라도 적을 부수고야 말 것 같았던 청을 두 번 보느니 차라리 답지 않은 짓을 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판단하고 움직일 만큼, 애드는 그를…
“……하하.”
청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연스럽게 기운 몸이 애드에게 닿아왔다. 어깨에 닿은 이마가, 기대오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애드는 말없이 청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역시 난 형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말들이 섞여서 들려왔지만 지금만큼은 눈감아주기로 했다. 그가 무사하다. 온전히 자신의 품에 있다. 청이 최선을 다해 지켜낸 것들이, 과거의 아픔이 되지만 않는다면.
“……네. 명심할게요.”
애드는 그걸로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