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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화: 센츄페팬)이해 불가
Caption 유혈 묘사가 있습니다. 키스 묘사가 있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네요.” 피가 말라붙은 속눈썹이 겨우 뜨였다. 눈꺼풀이 뜨끈뜨끈하고 시야가 여즉 흐렸다. 하얗고 파랗고 노란 무언가가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 겨우 알 따름이었다. 눈에 힘을 주던 팬텀이 문득 괴롭게 콜록거렸다. 입 안이 뜨겁고 비릿했다. “살아 있죠?” 팬텀은 말없이 눈썹만 구겼다. 제게 굳이 다가와서 저런 말을 할 상대는 그 뿐이었다. 비로소 또렷해진 윤곽이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늘 오만에 가까운 웃음을 머금고 있던 입술이 지금은 차게 식어 있었다. 딱히 그의 기분을 신경 써 본 적은 없었다만. 팬텀은 일어서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옆구리가 비명을 지르듯 욱씬거렸고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센츄리온이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었다. 같은 듯 다른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제가 하면 이것보단 잘했을 텐데. 안타깝네요.” “…….” “변명이라도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팬텀. 목소리도 못 내실 정도로 망가지신 건가요?” 표현하고는. 팬텀은 죽은 피를 탁 뱉어냈다. 대충 대답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센츄리온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경멸인가. 혹은 비난인가. 어느쪽이든 팬텀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이었으나.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갈라진 목소리 끝에 피가 맺혔다. “시비 걸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죽어가는 꼴을 구경하러, 온 건가요.” “아직 안 죽었잖아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말을 잘라끊은 센츄리온은 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 평소의 그라면 비웃고 넘겼을 법도 한데. 생각해보니 그의 화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종종 능글맞게 느껴질 만큼 천연덕스럽고 자신만만한 웃음이 없는 얼굴이 지독히 낯설었다. 하지만 어째서. 짧게 고민한 팬텀은 지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눈을 감았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시야가 흐릿했고 그의 저의를 유추할 여력도 없었다. 돌연 강한 악력이 팬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눈이 뜨인 팬텀이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뭐죠?” “…….” 센츄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손짓으로 주머니에서 포션 하나를 꺼냈을 뿐이었다. 검지와 엄지만으로 능숙하게 마개를 따낸 센츄리온이 붉고 영롱한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때까지도 팬텀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한 채였다. “……!!” 차갑고 딱딱한 입술이 피에 젖은 살갗을 문질러 벌렸다. 말캉한 혀를 타고 흘러내린 액체가 입을 금세 가득 채웠다. 삼키기에 버거운 양이었다. 팬텀이 괴로운듯 눈을 찡그리며 그를 밀어냈지만 센츄리온은 허락하지 않았다. 되레 팬텀을 가두듯 끌어안으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에게 밀어넣고 있었다. 억센 팔이 무기를 찾는 듯 허공을 더듬다가 느리게 떨어졌다. “읍……” 손가락 하나 까닥할 기력마저 사그라들었다. 부상의 통증이나 의식의 몽롱함은 해결되었지만 피로감은 두 배였다. 입술에 묻은 피까지 남기지 않고 핥으며, 센츄리온은 그가 약을 다 삼키고도 오래도록 입을 맞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풀려나 호흡을 고르던 팬텀은, 자신이 그의 품에 자연스럽게 안겨 있다는 걸 깨닫고 어이없어졌다. “왜 당신이 나를,”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봐요. 똑똑하잖아요.” 센츄리온이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팬텀을 안아든 팔은 여전히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기가 막히단 시선으로 센츄리온을 올려다보던 팬텀이 그를 꾹 눌러 밀었다. “됐습니다. 이제 걸을 수 있어요.” “환자면 환자답게 가만히 있어요.” “대체 저한테 왜 이러는 거죠? 동정?”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죠?”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팬텀은 눈을 찡그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구태여 실랑이를 할 체력은 없었다. 센츄리온이 흘끔 그를 내려다보았다. 언제 날이 서 있었냐는 듯 낮게 가라앉은 시선이 미묘하게도 침울해보였다. “…방금 키스도 했잖아요.” “그건 당신이 억지로 약을……” “내버려두지도 못하고 함께 돌아가는 중이고.” “…….”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는 게 겁이 나서… 필사적으로 찾고, 찾아서 구해내기까지 했는데.” 팬텀의 눈이 느리게 커다래졌다. 센츄리온은 얼굴을 숙이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뭔가 말하려는 듯 벌어졌던 입술이 도로 닫혔다. 한 사람의 발 소리만이 공허하게 길을 울렸다. “……어린애 같은 거 알아요. 그래도.” 그 위로 떨리는 고백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오늘 제가 당신에게 했던 것들을, 기억해줘요.” “…….” “또 이렇게 다치지도 말고요. ……절대로.” 그를 안은 팔이 떨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이런 애틋한 말이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동시에 그야말로 센츄리온다운 방식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기습이라니. 정말 화력이 만만치 않네요. 당신은. 소리없이 입술만 달싹이며 팬텀은 고개를 툭 기대었다. 싫지는 않았으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해하기 싫은 걸지도 몰랐다. 차라리 전처럼, 서로를 거슬려하고 불편해하고, 언젠가는 등을 돌려 갈라질 것처럼 굴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당신과 나는…… 그리고 그리하지 못한 당신과, 나는. 팬텀이 몸을 웅크렸다. 이 품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다는, 우스운 망상이 반짝이다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