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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화: 둠브코크)헤어핀
애드는 꽤 오래도록 청을 관찰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자면 그는 똑같은 시도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중이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만지작거리고, 다른 방향으로 해보는 등 발상의 전환은 좋았다. 허나 결과는 모조리 실패였다. “……쯧.” 팔짱을 낀 팔을 풀며 애드가 혀를 찼다. 혼자서 열중하고 있는 게 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더 내버려두기엔 인내심이 바닥이었다. 미끄러지듯 빠르게 다가간 애드가 청의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리 끙끙대?” “아, 애드 형……” 애드는 흠칫 놀랐다. 시무룩하게 내려간 팔자눈썹이 손 놓고 구경하던 제 탓 같았다. 물론 청은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었겠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드가 시선을 내렸다. 왕관 모양의 헤어핀이 고스란히 손에 얹혀 있었다. 제법 귀여운 디자인을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처럼 입에서 나온 건 퉁명스러운 어투였다. “니 머리 길이로 이게 고정이 되겠냐? 어쩐지 계속 풀리더라니.” “으으… 하지만 이게 제일 마음에 들었는걸요! 어울리지 않나요? 이렇게 하면……” 청이 다시 머리칼을 모아쥐었다. 발목 언저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찰랑이던 금발이 높게 틀어올려졌다. 핀을 고정시키려 집중한 얼굴이 더없이 진지해서 역으로 귀여웠지만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보람도 없이 핀이 풀려나갔다. 눈썹 끝이 도로 팔자로 기울었다. “…안 되네요….” “……어울리고 자시고는 일단 제대로 해봐야 알겠는데. 이리 줘봐.” 청은 순순히 핀을 건네주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조를 살피던 애드가 흘긋 그를 보았다. “꽉 조이는 거 싫어하냐?” “네. 계속 풀고 다녀서 그런가봐요. 시간이 지나면 아프기도 하고요. 그래서 좀 느슨하게 바꿔봤는데, 설마 그것 때문에 고정이 안 되는 걸까요? 여기, 여기를 좀 고쳤거든요.” 청이 이음새를 톡톡 두드렸다. 어느샌가 바짝 가까워진 그는 애드와 이마가 닿을 정도로 밀착해 있었다. 하마터면 핀을 떨어트릴 뻔했던 애드가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귀가 따끈따끈해진 듯했지만 그에게 들키고 싶진 않았다. “뭐, 발상은 좋았어. 하지만 이러면 네 머리를 감당을 못한다고. 힘이 안 들어가니까 고정을 못 시키잖아.” “아, 그런 건가요?” “흠. 이거 내부 부품은 좀 교체해도 괜찮겠지? 다이너모. 고정용 나소드 칩이랑 초소형 기어 가져와.” 여러 번 들어도 생소한 단어에 청은 눈만 깜빡거렸다. 애드가 이내 부품을 받아들더니, 빠르고 정확하게 이것저것 끼우고 빼며 핀 일부를 교체했다. 일반인의 눈이라면 따라가지도 못할 속도였다. 저 작업이 끝나면 왠지 자신의 헤어핀이 미니 나소드가 되어 있을 듯한 착각도 들었다. 자신의 상상에 웃어버리고 만 청이 제 머리칼을 한 번 길게 쓸어내렸다. 치장엔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묘한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 됐다. 이리 와봐…… 아니다. 거기 있어.” “네, 어? 어… 네!!” 엉거주춤 헤매던 청이 겨우 몸을 바로했다. 부드럽게 그의 뒤로 돌아온 애드가 금발을 길게 올려쥐었다. 윤기와 함께 금빛으로 흐르는 머리칼이 내내 감추고 있던 흰 목덜미가 사르르 드러났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일순 그에 가 멈추었다. 말 대신 입술만이 소리도 없이 달싹이다가 잦아들었다. 청은 알아차리지 못할 공백이었다. 애드가 솜씨 좋게 핀을 꽂아 고정하고는 모양까지 바로잡고서야 손을 떼었다. 청의 안색이 환해졌다. “와, 이제 안 풀려요! 고마워요, 형!” “이 몸이 해준 건데 당연하지. 엄청 날뛰어도 안 풀릴 거라고?” 애드가 피식 웃음지었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청의 길다란 머리칼을 머금고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눈이 부셨다. 청을 따라 빙그르르 도는 머리칼도, 그의 머리에 자리한 핀도, 청의 하얀 갑주도, 말간 얼굴 가득 피워낸 행복한 웃음도 전부 찬란해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고마워요, 형! 이거, 잘 어울리나요? 형이 해줘서 훨씬 잘 된 것 같아요!” 드물게 신난 어조로 말하는 청은 여전히 미소하고 있었다. 저렇게 천진하게 순진하게 기뻐해놓고, 전투가 시작되면, 왕관에 어울리는 책임을 짊어지고, 삶을 버티고 아군을 밀어받치며. 너는 그렇게 나아가겠지. 애드는 청의 그 모순이 싫지 않았다.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수식들은 질색이었을 턴데도. 그럼에도 지금은. “……응. 잘 어울리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만큼, 자신은 그에게 젖어가고 있었다. “프린스에게, 무척.” 다음엔 곧장 그의 곁으로 와야겠다. 괜한 참견인지 아닌지는 보고 판단하면 그만이다. 뭔가에 홀린 듯 갑자기 떠오른 다짐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를 도울 수 있었고, 청이 웃어주었고, 그 웃음이 너무 예뻤다. 제 삶의 수식을 새로 짜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얄미운 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