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이었다. 벤투스는 데니프가 그어주는 선을 알았고, 그에 닿을 듯 말 듯 살랑살랑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습관은 경계를 무디게 만든다. 벤투스는 방심하고 있었다. 입버릇처럼 사랑한다 말하고, 미동 하나 없는 눈을 바라보다가 찡긋 눈웃음도 지어주고. 그러다 그의 머리카락도 매만져보고, 은근슬쩍 귓바퀴도 건드려보고. 전혀 반응이 없어도 벤투스는 그 침묵을 아슬아슬하게 즐겼다. 화내지 않을 선에서. 그의 영롱하고 서늘한 금안이 분노로 이지러지기 직전에서.
그 줄타기를 누구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자네는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걸세.”
벤투스가 뿔에 닿으려던 손을 뒤로 샥 숨겼다. 사탕을 숨긴 어린애마냥 뻔뻔한 얼굴이었다.
“뭐가 말입니까?”
“방심하고 있잖나.”
벤투스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데니프가 로쏘마냥 불 같이 화내며 달려들 것도 아니고, 곧장 공격부터 퍼부을 이도 아닌데 제가 경계할 게 무엇 있으랴. 더군다나 선도 잘 지키며 한껏 재미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설마 화나신 거예요, 어르신? 오늘은 많이 안 했잖아요?”
“그간 자네가 한 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게나. 삼 초 주겠네.”
그 때도 데니프는 기이하도록 담담한 어조였다. 데니프는 끓는 점이 높을 뿐 감정은 분명하게 드러내는 편이었으므로, 벤투스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잔소리를 할 얼굴도 아닌데. 대체 무슨 일이시람. 늘 허공에 떠 있던 발이 대리석 바닥을 내딛었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훅 당겨져, 벤투스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똑같아진 눈높이의 데니프는, 어딘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자네보다 나이가 많아.”
“…뭐. 그렇죠?”
“사람을 다루는 건 내가 더 익숙하네. 의도나 음심 정도야, 너무 잘 보여서 따분할 지경이야.”
“아하… 그건 몰랐네요? 저도 그랬나요?”
벤투스는 웃었다. 앞으로 뭐가 닥칠지 몰라서 부릴 수 있던 여유였다. 데니프가 그를 좀 더 끌어당겼다. 작은 발뒤꿈치가 살짝 들렸다.
“아직도 겁쟁이인 줄은 몰랐는데, 소란.”
나직한 마지막 부름이 화살처럼 꽂혔다. 말을 잃은 입술에 서늘한 체온이 닿았다 떨어졌다. 두 색의 눈동자가 느리게 커다래졌다. 늘 멀게만 보았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우도록 가까웠다.
“놀아나는 건 사양이야.”
“…….”
“내가 언제까지나 봐줄 거라고 생각하진 말게.”
그가 다시 멀어졌다. 무심코 뻗었던 손이 결국 그를 잡지 못하고 허공만 휘저었다. 탐스럽게 긴 청발이 폭포처럼 출렁거렸다. 그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본 뒤에야, 벤투스는 그가 저를 두고 가버리고 있음을 알았다. 이건 경고였을까. 아니면… 입술을 더듬거리던 손이 느리게 떨어졌다. 다음에 정말로 선을 넘어버리면, 그때는 당신은, 어떤 얼굴로 나를 대하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오산일 터였다. 결국 벤투스는 끝까지, 그를 잘 아는 듯 모를 것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