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교수님일세.”
데니프는 고개도 들지 않고 정정했다. 아차. 죄송해요. 전혀 죄송하지 않은 투로 사과한 벤투스가 시험지를 우수수 쌓아올렸다.
“채점 끝냈어요. 다들 중간 때보다 힘냈던데요?”
“그런가… 수고 많았네.”
데니프가 모노클을 매만지다 말고 눈꺼풀 위를 꾹 눌렀다. 며칠 밤을 샌 사람처럼 얼굴에 피로가 겹겹이 드리워져 있었다. 농을 던지려던 입을 다문 벤투스가 허리를 숙여 그의 안색을 살폈다. 세상을 백 년도 넘게 산 듯한 초연한 말투와 달리 십대 소년 같은 앳된 외모로 유명한 그였지만, 지금은 백 살 먹은 노인보다도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험 기간에야 늘 이랬다지만, 그렇다고 속이 안 상하는 건 아니다. 벤투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제도 밤새셨죠? 눈 좀 붙이고 오시는 건 어때요?”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그럴 순 없지. 자네나 좀 쉬고 오게.”
“에이, 조교 뒀다 국 끓여드시려고요? 이 정도는 제가 처리할 수 있으니까. 어서요.”
벤투스는 아예 데니프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가 일어나기 전까진 안 움직일 기세였다. 데니프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데니프는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을 향한 걱정이나 충고일지라도. 벤투스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눈치가 빠르고 기민하며, 무엇보다 데니프의 곁에 가장 오래 머무는 이였으니까. 그럼에도 벤투스가 능청맞은 체하며 오기를 부리는 까닭도, 역시 데니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벤투스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역으로 데니프가 스스로를 혹사하도록 내버려두는 결과를 낳는다. 벤투스는 그게 싫었다.
“그러다 어르신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저 웁니다. 진짜라구요?”
데니프가 이마를 짚으며 흘긋 눈을 돌렸다. 색이 각기 다른 두 눈동자가 시무룩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넨 정말 영악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데니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데니프는 자신이 벤투스에게 약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장된 슬픔으로 가려진 시선을, 저를 향해 곧게 날아오는 진심을 데니프는 받아치는 법을 몰랐다. 결국 끼고 있던 모노클을 정리한 데니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응? 어딜ㅡ”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몸을 벤투스가 가뿐히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날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소파에 도착해, 데니프를 사뿐히 내려놓음과 동시에 팔걸이에 걸려 있던 담요를 당겨 그에게 덮어주기까지. 마치 고급 호텔의 서비스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비록 누워 있는 곳은 조금 딱딱한 소파고, 이불은 낡고 얊으며 베개도 없었지만. 벤투스가 옆에 털썩 앉아서 데니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럼 푹 쉬세요, 어르신.”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데.”
데니프가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나른하게 누워 있자니 벌써 졸음이 오는 것도 같았다. 졸린 금안을 느릿느릿 깜빡이던 데니프가 고개를 들었다. 벤투스가 그의 시선을 마주치고 빙긋 웃었다.
“왜요?”
“…자네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르신께서 일어나실 쯤엔 다 끝나 있을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네. 자네는 안 쉬어도 되나 묻는 거지.”
“제 실력을 믿어주시는 건가요? 기쁜데요~”
뒷말은 자연스럽게 무시되었다. 낮은 한숨과 함께 데니프가 눈을 감았다. 잔소리를 더 해주고 싶었지만 피로가 잠으로 바뀌어 그를 물들이고 있었다. 토닥, 토닥, 애를 재우듯 가슴을 가볍게 토닥이는 손이 느려졌다. 이마에 닿은 따뜻한 감촉도 지금은 나쁘지 않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데니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