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돼….’
엘소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어깨가 다 뻐근했다. 결국 핀을 내려놓은 엘소드가 팔을 가볍게 풀며 거울을 보았다. 평소 즐겨입던 캐쥬얼룩이 아닌 멀끔한 정장차림의 그가 안에 있었다. 하얀 셔츠의 카라 양끝엔 금빛 술 장식이 달려 대롱거렸고 소매는 나비 날개 모양의 문양이 수놓여 있었다. 동일한 문양이 깃에 새겨진 베스트는 깔끔한 흑색이었고 마름모꼴 핀으로 고정하는 식이었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검은 바지와 구두까지, 고른 이가 세심하게 신경 썼음은 명백했다. 사이즈도 그만을 위한 것인양 꼭 맞았다. 문제는…….
“뭐가 잘 안 돼요?”
엘소드는 못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고개를 돌렸다. 아인이 소리도 없이 등 뒤로 다가와 있었다.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침을 삼키던 엘소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절로 벌어진 입술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하. 핀 때문이었군요? 도와줄게요.”
“…….”
“가볍긴 한데 작진 않아서… 엘소드는 하기 어려울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요.”
대꾸를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는 새에 이미 아인은 핀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곱게 내려빗은 머리칼을 그러모아 쥐는 손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풍겼다. 아인을 닮은 향이었다. 멍하니 아인의 손을 쫓던 시선이 천천히 그에게로 옮겨갔다. 엘소드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는 푸른빛이 감도는 흑색 베이스에 하얀 조끼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 단정히 꽂은 핀도 검푸른 무늬가 도드라지는 나비 모양이었다.
“다 됐어요. 어때요?”
“…….”
“응? 엘소드?”
“…아인 정말 예쁘다….”
무심코 뱉어버린 진심이었다. 말해놓고도 깨닫지 못해, 눈만 꿈뻑꿈뻑하던 엘소드의 얼굴이 뒤늦게 달아올랐다.
“아, 그게, 어, 예쁘다고…… 으응, 잘 어울려, 아인! 좋은 향기도 나던데, 향수 뿌린 거야?”
엘소드가 허둥지둥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아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모처럼 꾸몄으니까요? 엘소드도 뿌려줄까요?”
“어…”
엘소드가 눈을 굴렸다. 하지만 금세 핀을 달아준 아인이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엘소드가 괜히 코를 킁킁거렸다. 푸른 박하향과 아카시아를 연상케하는 엷은 달콤함이 어우러져 주변을 맴돌았다. 아인하고 썩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저에게도 그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와 같은 향기가 나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소매 걷어봐요. 조금만요. 말하며 아인도 제 옷을 조금 당겼다. 검은 셔츠와 장갑 사이로 드러난 손목이 상아처럼 하얗고 매끄러웠다.
“향수는 보통 손목 안쪽에 뿌려요. 귀 뒤랑.”
“그냥 칙칙 뿌리는 게 아냐?”
“너다운 말이네요. 맥이 잡히는 곳에 뿌리면 향이 더 멀리 퍼져나간대요.”
두근, 두근, 하고. 덧붙이며 아인은 슬슬 웃었다. 아인의 손목에 톡 톡 떨어진 방울들이 이슬처럼 맺혔다. 그 광경이 아름다워서, 나비가 곳곳에 내려앉은 아인이 정말 꽃이 된 듯하여 엘소드는 순간 말을 잃었다. 왜 네 손목에 뿌린 거냐고 물어볼 새도 없었다. 흐르듯이 다가온 손이 그의 손목과 겹쳐졌다.
“아…”
무심코 터트린 탄성이 향처럼 퍼져갔다. 두 사람분의 박동이 살갗을 타고 전해져왔다. 고작 손목이 닿았을 뿐인데도 은밀한 곳까지 완전히 겹쳐진 느낌. 엘소드의 뺨이 느리게 붉어졌다. 아인이 천천히 손목을 움직였다. 저와 다른 연약한 부드러움이 살갗에 부벼지자 향이 진하게 번져갔다. 머리가 멍했다. 취할 것만 같았다.
“어때요?”
목소리가 가까웠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역시 너무 예뻐. 뇌를 거치지 않은 중얼거림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아인이 조그맣게 웃었다. 그것마저도 예뻤다.
“지금… 나가야겠지?”
“안 나가고 싶어요?”
엘소드는 아인의 허리를 끌어안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탈의실 문을 잠갔던가, 기억을 더듬으며 아인은 엘소드의 머리에 달아준 핀을 만지작거렸다.
“…상관없지 않을까요.”
속삭인 입술이 둥글어졌다.
“나비를 잡느라 늦은 걸로 해요.”
풀려난 나비가 아인의 손에 얹혔다. 엘소드의 머리에 다시 내려앉으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