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지는 그림자 위에서 타닥타닥 불씨가 날아올랐다. 로쏘의 영향으로 여전히 땅은 뜨겁고 공기는 후덥지근했으나, 밤을 나려면 여전히 온기와 장작이 필요했다. 장작 두어 개를 더 던져넣은 엘소드가 언뜻 주변을 살폈다. 다들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곤히 자고 있었다. 야영에 익숙해지기도 했거니와 긴 전투와 긴장감으로 몰려온 피로가 컸을 터였다. 혹은, 이제 서로가 있으면 안심하고 잠들 만큼 경계가 풀렸다거나.
엘소드는 옆을 보았다. 아인이 그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자세가 불편할 테니 편히 누워서 자라고 해도 아인은 끝끝내 그의 옆을 벗어나지 않았다. 네가 불편하면 갈게요. 하지만 내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라면 안 갈 거예요. 안 아프게 엘소드의 손등을 꼬집으며 아인은 조금 짓궂게 웃었다. 같이 있고 싶다고, 함께 쉬는 게 좋다고 전해오는 시선을 엘소드는 차마 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진즉 벗어 덮어주었던 망토가 그의 어깨 언저리에서 미끄러졌다. 아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망토자락을 잡아당기던 엘소드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레이븐과 등을 맞대고 잠들어 있는 시엘이 시야에 들어왔다. 쭉 뻗은 단단한 팔을 따라가보니, 그는 맞은편의 루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엘소드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장작에서 불씨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부러워요? 우리도 손잡을까요.”
잠긴 목소리가 끝나기 전에 하얀 손이 그를 잡아당겼다. 사이사이로 파고든 손가락이 꼭 깍지를 끼자 괜히 호흡이 불편해진 기분이었다. 엘소드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 졸린 눈을 한 아인이 빙긋 웃었다.
“미안. 깨웠어?”
“아뇨. 잠깐 눈 붙인 것 뿐이니까요.”
고개를 가볍게 흔든 아인이 시선을 옮겼다. 루와 시엘은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잠든 채였다. 보기 좋네요. 담담히 말하며 아인이 엘소드의 어깨에 툭 기울어졌다. 눈을 깜빡거리던 엘소드가 애매하게 뺨을 긁적였다.
“……아인이 그런 말하니까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는 건, 싫단 뜻인가요?”
“아니, 그건 당연히 아니지. 오히려 기뻐. 아인은 루랑 시엘 형을 싫어했었잖아. 그게 서로 누그러든 것 같기도 하고, 네 쪽에서 먼저 충고도 해줬다고 하고…”
머뭇거리던 엘소드가 덧붙였다.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아. 네가.”
바람이 불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불길이 점차 가라앉았다. 아인이 손을 뻗었다. 하얗고 단단한 손가락 사이로 불길이 번질 듯이 일렁거렸다.
“변하긴 했죠. 널 처음 만났을 때보다.”
“응. 맞아.”
“그 시절의 내겐 주어진 사명과 엘소드, 그 둘 뿐이었어요. 다른 것은 생명체건 아니건 관심조차 없었고,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경멸하곤 했죠.”
아인이 손을 내렸다. 꺼져가는 장작에 불씨가 도로 내려앉았다. 바람이 살랑이며 일었다.
“그러다가도 너의 말 몇 마디에 설득당해서, 진득하게 끓던 증오가 녹은 듯이 사그라들고.”
“…….”
“그걸 반복하면서 나도 많이 물러졌죠. 이런 내가 싫진 않아요. 엘소드가 알려준 걸 받아들이면서 변화한 것이니까요. 성장이란 거겠죠. 아직도 난 마족을 포용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 둘만큼은… ‘동료’로 느끼고, 그에 맞는 예의를 차릴 거예요.”
불이 다시 피어올랐다. 아늑하게 데워진 공기가 둘을 감싸안았다. 맞잡은 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갔다.
“전부 네가 알려준 거예요, 엘소드.”
“에이 뭘. 아인이 알아서……”
“그러니까 내 세계에선 언제나 네가 먼저에요.”
엘소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이 수색대원들을 전부 좋아하게 되고, 더 많은 것들에게 마음을 열더라도 엘소드는 엘소드에요. 좋아하는 사람, 그 이상으로 특별하고 가치 있는 존재란 뜻이에요. 앞으로 더 많은 동료가 생긴다고 해도 내 마음은 변함없어요.”
아인이 고개를 들며 환히 웃었다. 거짓말처럼, 구원처럼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미소였다.
“엘소드는 내 세계의 근원이니까요.”
“…….”
“그러니까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네가 함께 봐줬으면 해요. 가끔은 질투해줘도 좋고, 어리광 부려도 좋아요. 내 마음은 결국 네 곁에 있고, 누구에게 잘해주든 네게 해주는 것처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법을 모르니까요.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엘소드의 얼굴이 뒤늦게 달아올랐다. 질, 질투 같은 거 안 했어… 나는… 어물어물 변명을 늘어놓는 그가 귀여워,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인이 그를 안고 와락 누웠다. 풀썩 일어난 바람에 재가 하늘에 별처럼 솟구쳐올랐다.
“이제 우리도 잘까요?”
“으응… 그럴까.”
“손 꼭 잡고.”
이번엔 놀리는 게 명백했다. 아이인… 비통하게까지 들리는 어조에 아인이 푸스스 웃으며 엘소드를 꼭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내일은 어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요.”
대답은 없었지만 얇은 허리를 얄밉게 꾹 안아오는 팔은 있었다. 웃으며 풍성한 적발을 헝클이듯 쓰다듬은 아인이 눈을 감았다. 꼭 닿은 몸 너머로 사랑스러운 고동이 차분히 울리고 있었다.
장작이 고요히 타오르며 어둠을 몰아내는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