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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화: 벤투스)살의
Caption 욕설, 폭력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벤투스 마스터로드 업데이트 이전에 쓴 글로, 벤투스 실제 설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날렵하게 공중을 가른 발이 급소에 명중했다. 동료가 비명도 못 지르고 나가떨어지자 사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친 듯이 주변을 살피며 겨눈 총구가 덜덜 떨렸다. “젠장! 죽여버려!” “상대는 한 놈이라고! 쫄지 마!!” 주변에서 동료들이 사납게 외쳤다. 검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상하도록 주변이 검었기에 존재를 인식할 방법은 청각뿐이었다. 사각사각. 사박사박. 나무들이 잎사귀를 부딪히며 매섭게 울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칼날 같았다. 겁을 지레 먹은 것인지,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더 빨라졌다. 허공을 잘라먹는 날이 짐승의 이처럼 번뜩거렸다. 보이지 않는 적은 꽤 오래도록 기척이 없었다. 이대로 도망간 것인가. 아니면. 사내는 총을 쥔 팔을 움켜쥐었다. 긴장으로 힘을 너무 준 탓에 근육이 끊어질 듯 아렸다. “크아아악!!” 갑자기 비명이 터진 건 그의 바로 옆이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뜨뜻한 액체가 얼굴을 축축하게 적셨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것의 암시는 분명했다. 날붙이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붕, 붕, 붕, 벌의 날갯짓 같은 지독한 소음에 귀마저 멀 듯했다. “이,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검을 거둬!!” “내가 아니…… 아아아악!!” “으악, 으아악!! 내 팔!! 팔이!!”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터져나온 비명이 금세 숲을 메웠다. 그제야 사내는 깨달았다. 저건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그들을 우리에 가둔 짐승처럼 도륙하는 존재가 그 너머에 있었다. 사내가 쥔 총이 수십 조각으로 잘려서 떨어졌다. 사내는 자신의 손가락도 잘린 건지 의심스러웠으나 확인할 용기도 정신도 없었다. “살려줘!! 살려……” “으아악! 자,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고통을 호소하던 비명이 자비를 구하는 애원으로 바뀌었다. 돌풍이 휘몰아치는 속도가 바뀌었다.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졌다가, 느려지고, 빨라지고, 빨리, 느리게,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제 안에 갇힌 자들을 비웃는 것처럼. 미친듯이 절규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끊겨갔다. 고의가 처절하게도 느껴지는, 그들의 머리를 하나 하나 꿰뚫는 살의가 정성스러웠다. 사내는 주저앉지도 못한 채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울부짖으며 살려달라 빌던 마지막 기도가 멎었다. 자신은 살려주는 건가? 이대로 침묵하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내의 손가락이 마지막 희망을 숨기지 못하고 꿈틀대었다. “ㅡ” 그 끝에, 건드려진 바람이 맹수처럼 그를 덮쳤다. 전신의 살점들이 찢긴 옷자락들과 나뒹굴었다. 차라리 즉사하지 않은 것이 비극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신경을 도려내는 통증에 사내는 피를 토하며 포효했다. 이렇게까지 가까운 죽음은 처음이었다. 곧 이 숲에서 나갈 수 있었는데. 챙겨온 값진 재화와 보물들을 비싸게 팔아치우고, 현상금이 걸리기 전에 항구로 빠져나간다는 계획까지 완벽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제 발은 저 멀리 나뒹굴고 있는가? 자신의 손은? 입술은 어떻게 되었지? 내 입에 들어온 건 무엇? 점점 돌아가기 시작하는 시야에 처음으로 또렷한 인영이 보였다.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은, 화사하고 유려한 녹색과 금색이 잘 어울리는 엘프가 활을 당기고 있었다. 아름답게 미소하면서. “잘 가. 도적 씨.” 푹. 화살이 꽂힌 이마에선 피도 흐르지 않았다. 꿈틀거리던 신체가 조금씩 잠잠해지는 걸 지켜보던 벤투스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 한 번은 몸을 풀어줘야 한다니까.” “그래도 심했어, 소란! 숲이 엉망이 됐잖아!” 벤투스가 움찔거리며 옆을 보았다. 린시가 작은 날개를 잔뜩 파닥이며 골을 내고 있었다. 멋쩍게 웃은 벤투스가 허리를 숙여 신발을 가볍게 털었다. “좋은 거름이 될 거야. 숲도 잘 자랄 텐데 좋지 뭐.” “어휴. 소란 너 진짜……!” “으응. 알겠어. 나의 귀엽고 믿음직한 린시. 시체는 보이지 않게 잘 숨겨놓을게. 안심해. ” 그런 말이 아니잖아! 린시가 빼액 화를 냈으나 벤투스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아무렴. 숲에 함부로 들어온 자인데 고이 주워가서 장례식까지 치르도록 둘까봐. 린시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바람은 제일 멀리 있는 시신부터 야금야금 갉아먹어가고 있었다. 벤투스가 바란 대로, 마치 그의 뜻이 자신의 뜻이라는 양 충성스럽게. “이크. 이제 슬슬 돌아가자. 어르신한테 또 혼나겠다.” “또 비밀로 할 거야?” “그래야지~ 그분은 상냥하시거든.”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 거짓임을 알아도 묵인해주시니까. 벤투스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절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숲에 고요하게 울리었다. 제가 죽인 자들의 시신이 피곤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소름끼치고 음울한 장소에서 그의 음색만이 맑고 영롱했다. 훅, 바람이 꺼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