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가시방석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만큼 아인의 눈빛은 매서웠고 손목을 움켜쥔 손엔 악력이 잔뜩 들어 있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바닥만 내려다보던 엘소드가 흘긋 그의 눈치를 살폈다. 늘 웃음기가 어려 있던 눈동자며 입가가 서리가 내린 양 차가웠다. 엘소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반성했나요?”
“응. 했어. 진짜야.”
“그럼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해요.”
시선이 도로 땅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인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쏘아보는 눈빛이 더 싸늘해진 건 당연지사였다. 엘소드가 꾸물꾸물 잡힌 팔을 당겼으나 아인은 놓아주지 않았다. 힘 주지 마요. 도망도 가지 마요. 나 정말 화났으니까.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하는 어조가 평온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엘소드는 주사를 맞는 아이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팔이 욱씬거렸으나 지금은 아인이 더 무서워 통증도 무뎠다.
변명하라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전투 중에 휘말린 민간인들이 있었고, 피난시키던 중 무너지던 건물벽이 그들을 덮쳤다. 근처에 엘소드와 레나가 있어 민간인들은 무사 구조되었으나, 문제는 엘소드였다. 떨어지는 파편을 보고도 몸으로 막으려 달려들다가 왼팔에 부상을 입었다. 갑주가 보호해주긴 했으나 팔뚝에 든 퍼렇고 붉은 멍까진 막아줄 수 없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대피시키느라 제 팔을 신경쓸 새가 없었던 엘소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도 잊었다. 아인과 방에 들어가 옷을 벗을 때까지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인이 오싹하게 굳은 얼굴로 그의 손목을 잡아오기 전까진.
“엘소드. 이거 뭐예요?”
“어? ……아, 이거. 별거 아냐.”
대수롭잖다는 듯 대꾸했던 엘소드는, 이어 그에게서 밀려오는 서슬퍼런 기운에 말을 삼켰다. 별게 아니에요? 이게? 그래요. 뼈가 안 부러졌으니 다행이긴 하죠? 아니면 팔이 안 잘리는 정도는 되어야 별것인가요? 이게 그냥 멍이에요? 아픈 건 어떻게 참았어요? 내가 발견 못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건가요? 네가 괜찮으니까? 별 것 아니니까? 차라리 말로 해줬으면 싶은 잔소리들이 살기에 가까운 분노로 전해져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침묵에 실린 따가운 비난이 여전히 엘소드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너는.”
아인이 침대 옆 서랍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비상용 연고와 붕대, 밴드가 알뜰하게 채워져 있었다. 보지도 않고 연고 하나를 집어든 아인이 엘소드의 팔뚝에 쭈욱 짜냈다.
“정말, 어떻게 해야, 들어줄 건가요?”
“으, 잠깐, 아인, 이거 아픈…”
“약이니까 아프죠. 대답이나 해요.”
“아악, 악!! 아인! 진짜 아파! 누르면 아프다고!!”
붉고 푸른 멍 위로 하얀 약이 치덕치덕 물감처럼 발라졌다. 살짝만 닿아도 아픈데 이걸 꾹꾹 눌러 발라주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눈꼬리에 눈물까지 달고 끙끙대던 엘소드가 고개를 들었다.
“뭘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뭘 말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린 입이 애매하게 뻐끔거렸다. 엘소드의 팔을 잡은 아인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이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인…?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며 엘소드가 그의 손을 천천히 찾아쥐었다. 아인은 뿌리치지 않았다.
“…알고 있어요. 네가 충분히 강하다는 것. 이런 부상으로 쉽게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네가 수련하며 실력을 쌓는 모습도 봐왔고, 아무리 다쳐도 끝까지 버티며 나아가는 모습도 봤어요. 그런 네가 좋아서 죽 지켜봐왔으니까. 모를 리가 없어요.”
갑자기 시작된 고백에 당황한 건 엘소드였다. 그러나 아인이 너무나 우울해보여, 차마 말리지 못하고 그의 손만 꼭 쥐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난 속상해요.”
아인의 머리가 숙여졌다.
“분명 강해진 네 실력은, 남을 지키는 데에 쓰이고 있는데… 너 자신을 지키는 데에는, 쓰이지 않는 것 같아서.”
“아인, 그건…”
“네가 다치는 걸 보기 싫어요.”
날선 음색이 아닌, 기운 없이 쳐진 읊조림이 더 가슴 아팠다.
“내가… 엘소드가 몸을 더 아껴줬음 좋겠다고, 몇 번이고 말했던 것 같은데.”
“…….”
“내 마음이 잘 안 닿았나요? 하다못해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말도 안 나올 만큼 자신이 없나요? 내 걱정만으로는……”
아인은 우울해하고 있었다. 엘소드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싸쥐었다. 울컥, 눈물이 어릴 듯한 벽안이 찌푸려지다가 겨우 서글픈 곡선으로 휘었다.
“…내 마음만으로는 너를 지킬 수 없나요?”
“…아니, 아니야.”
엘소드가 아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인도 한숨을 내쉬며 그의 등을 더듬어 안았다.
“머리로는 알아요. 내가 정말로 엘소드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려면, 싸워서라도 막으면 돼요. 반나소드 씨가 그랬던 것처럼 못가게 붙잡아두는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엘소드. 난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아인의 손이 느리게 멍이 든 팔뚝을 쓸었다.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욱씬거렸으나 엘소드는 뿌리치지 않았다.
“…엘소드가 하고 싶어하는 의지와 마음이, 나의 사명보다 숭고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존중해왔던 거예요. 그런데.”
아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가 추구하는 가치가 너를 이렇게 계속 다치게 하면,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인…….”
부상의 경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인은 그가 모두를 지키려 할수록 다쳐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여행 초기였으면 냉담했을지 모른다. 어리석다고 비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이미 오랜 길을 함께 걸었고,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한 사이가 되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상황이 아인에겐 견디기 어려웠다. 애정이 없었으면 흘려보냈을 것들이, 지금은 모두 애달프고 가슴 아파서.
고작 팔에 남은 멍 하나로도, 눈물이 왈칵 흐를 만큼 속상해서.
“…아인. 미안해.”
엘소드가 팔을 뻗었다. 저보다 작은 품에 안긴 아인이 고개를 어깨에 파묻었다. 미안해. 반복되는 사과도 낮고 느렸다.
“…누군가 다치면, 그를 사랑하는 이가 슬퍼할 거라고 생각했어. 언제든 같은 마음이었어. 그래서 어떻게든 구하려고 했었어.”
“…….”
“근데 정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다치면 슬퍼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바보네요.”
“응. 바보야.”
“…정말 바보에요.”
“응. 미안해.”
아인은 눈을 꾹 감았다. 제 옷자락을 쥔 손이 떨리는 줄은 알았지만 엘소드는 내버려두었다. 아인이 간간히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지만, 엘소드는 가만히 애를 어르듯 등을 토닥이는 걸로 대신했다. 위로는 길었다. 두 사람이 전부 위안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눈이 조금 붉어진 아인이 부루퉁하게 엘소드를 바라보았다. 엘소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각방 쓸까?”
“같이 자요.”
“아, 어, 응.”
“그래야 아침에도 약 발라줄 수 있으니까. 혹시 또 아파지면 바로 얘기하고요. 알겠어요?”
양손으로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린 아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웃었다. 살갗이 뜨끈하니 얼얼했지만 아인의 손이 닿아 있으니 그것도 금방 가시는 기분이었다. 엘소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고마워, 아인. 미안하고, 사랑해. 마지막 말이 끝나기 전 아인이 엘소드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화를 나누었으니 이제 정을 나눌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