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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니라 썰로 이어집니다. 주의해주세요.
리랴님(@ryria_HQ)의 허락을 받고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관계 묘사가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와 성인의 관계를 다루는 트리거 요소를 기반으로 합니다.
썰의 특성상 이하는 반말로 진행되므로 양해바랍니다.
"...뭔가 불길한데."
커티와 헤어진지 얼마나 됐을까. 성 너머를 보던 닐이 미간을 구기며 다친 눈을 문질렀음. 멀리 보이는 성 근처가 반쪽뿐인 시야로 봐도 시끄러워보였음. 설마 싸움이 일어난 건 아닐까. 커티가 할렐루야는 다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닐은 마음처럼 쉽게 발길을 재촉할 순 없었음. 조금 주저하며 닐이 뒤를 돌아봤다. 세츠나가 주저앉아서 입을 가리고 있었음.
"세츠나. 괜찮겠어?"
"......괜찮다."
세츠나가 고개를 끄덕이곤 일어나다 휘청거렸음. 힘겹게 이마를 짚은 세츠나가 천천히 숨을 골랐음. 완전히 금색으로 물든 눈이 번쩍거리고 있었음. 인간의 피를 강화시킨다더니, 저건 누가 봐도 뱀파이어 같잖아. 혀를 찬 닐이 가까이 다가갔음.
"무리하지 마."
"무리하는 거 아냐."
"멀쩡하지 않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해봤자 신빙성이 없는데."
세츠나가 입을 다물었음. 사실 결코 멀쩡하진 않았음. 뼈마디 전부가 욱씬거렸고 자꾸만 구역질이 올라왔음. 그 고통을 겨우 억누를라치면 밀려오는, 심장의 강한 박동과 그를 쥐어 터트리려는 듯한 압박감. 약을 먹은 이후 그의 상태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음. 조금 더 늦게 먹는 게 좋았을까. 세츠나는 느리게 숨을 골랐음. 이미 몇 번이고 기절할 뻔했던 통증이 가시질 않았음. 세츠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알리의 피로 고통스러워했을 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면 지금이 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네가 그를 생각하는 건 충분히 알겠어. 하지만 세츠나 네가 그렇게 무리하는 걸 그가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그의 목숨이 달린 일이야."
세츠나는 중얼거리며 이마에서 손을 뗐음. 어서. 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그가 더 아파하기 전에 되돌려놓지 않으면. 세츠나가 말해도 듣지 않을 걸 깨달은 닐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음.
"너를 누가 말리냐. 하여간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
쾅!!
갑작스럽게 들린 굉음. 분명히 멀리 보이는 그라함의 성에서 들린 소리였음. 동시에 세츠나와 닐이 고개를 돌렸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세츠나는 밀려오는 불안감에 저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었음. 그라함. 그라함.
"빨리 가자. 그라함이 위험해!"
"...쳇...! 타이밍도 더럽게 못 맞춘다니까!"
투덜거린 닐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음. 세츠나도 마찬가지로. 이미 다리는 걷기도 힘들 정도인데, 땅을 달려나가는 세츠나의 걸음은 닐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음. 세츠나가 입술을 깨물며 엑시아의 손잡이를 꽉 잡아쥐었다. 붉게 일렁이는 칼날이 한 번 더 번쩍이는 녹빛으로 휩싸였다가 가라앉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야... 젠장..."
할렐루야가 끔찍하단 투로 중얼거렸음. 티에리아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었음. 아까까지 그들의 앞에 서 있던 뱀파이어들. 그를 죽여야 한다고 하던 뱀파이어들. 그의 사지를 뜯어버린 그라함이 짐승처럼 팔을 물고 피를 빨고 있었음. 흡혈을 할 때면 금색으로 빛나던 눈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팔을 뱉어내고 그르렁거리는 입에선 짐승의 울음이 들렸음. 광기가 너무 진행된 나머지 구속을 스스로 풀고 뛰쳐나온 거였음. 성이 터질 때 폭발에 휘말린 빌리가 겨우 몸을 빼서 나왔지만, 그에게 붙잡힌 뱀파이어들은 대개 사지가 찢겨 죽어 있었다. 뱀파이어 한 명이 부들부들 떨다가 그에게 뛰어들었음.
"죽어라!! 괴물!!"
"멈춰!!"
빌리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소용없었음. 알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라함은 세츠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강해졌고, 지금은 피 때문에 이성마저 잃은 상태였으니까. 검도 없이 그를 잡아챈 그라함의 손에서 우두득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났음. 울려퍼지는 끔찍한 비명. 그들이 보는 앞에서 뱀파이어는 종잇장처럼 관절이 꺾인 채 버려졌다. 저 자를 이길 수 있을까. 알리도 이긴 그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그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용기조차 낼 수 없었음. 괴물이라고 했던가. '저것'은 확실히, 괴물이었다.
크르르르르
목을 울린 그를 보며 살아남았던 뱀파이어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음. 하지만 등을 돌린 것이 방아쇠가 된 것처럼 그라함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그들을 덮쳤음. 솟구치는 피. 울리다 끊긴 절규. 살려달라고 애원하려고 했던 듯한, 하지만 이젠 더 들리지 않는 애원. 보다못한 빌리가 외쳐버렸음.
"그라함, 그만둬!!"
"이 멍청이가...!"
그라함이 그를 돌아보았음. 그러나 오랜 친구를 보는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의 눈빛이었다. 크게 포효한 그가 들고 있던 시체를 내팽개치고 빌리에게 달려들었음. 가까스로 뛰어든 할렐루야가 그를 막았음. 큐리오스의 날이 맨손을 막자 둔기에 부딪힌 듯한 소리가 났음. 은의 날이 치직거리며 그의 살을 태웠지만 그라함은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음.
"할렐루야, 물러서라!!"
티에리아가 마탄을 충전해서 바체를 발포했음. 할렐루야가 빌리를 데리고 가까스로 도망친 순간 바체의 마탄이 그에게 적중했음. 보통의 뱀파이어라면 치명상을 입었을 힘. 드러난 그라함의 얼굴의 반이 흉칙하게 벗겨졌음. 하지만 그라함이 울부짖으며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언제 다쳤냐는 듯이 치유되고 있었다. 큐리오스에 베여서 타들어가는 팔을 팔꿈치 째 뜯어낸 그라함이 제 팔을 내던지고 티에리아에게 달려들었음. 이번엔 할렐루야가 잡을 틈도 없었음.
"젠장, 저게 말이 되는 속도냐고!!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위험해,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우뚝 멈춰섰음. 머릿속에 울려퍼진 목소리. 분명히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자의 것이었음. 드디어 깨어난 건가? 당황과 혼란에 빠진 할렐루야가 주저했던 찰나, 그라함의 손톱이 티에리아의 결계를 찢을 듯이 파고들었음. 티에리아도 아직 알리와 싸웠던 전투의 영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충격이 왔지만 이를 악물었음. 이미 그에게 한 번 결계가 베였었던 티에리아다. 당연히 같은 수법에 당할 리 없었음.
"내가... 그 날 이후로 아무 대비도 안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티에리아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보라색의 마력이 점점 짙어졌음. 불쾌한 듯 으르렁거리던 그라함이 힘을 주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타격이었는지 결국 한 번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화를 돋군 것인지, 그라함이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름. 다음 공격은 막지 못한다. 할렐루야가 이를 갈면서 급히 뛰어가려고 했음.
"일어났으면 얼른 나오라고...!! 알렐루야!!"
그리고 다음 순간, 그라함의 앞에 은탄환이 날아와 박혔음. 그라함이 뒤로 빠르게 물러서며 그르렁거렸지만, 아까처럼 적을 향해 달려들 순 없었음. 반쯤 자라가던 팔이 다시 은의 날에 부딪혀 타들어갔음. 포효하면서 뒤로 물러선 그라함. 아픈 부분을 참지 못하는 아이처럼, 미친듯이 살을 뜯어내는 그의 핏발 선 눈이 앞을 노려보았음.
"모두 미안하다. 이제부턴 내가 상대할 테니까."
붉게 일렁이는 엑시아의 날. 그의 앞을 막아선 건 세츠나였다.
"뒤로 물러서줘. 부탁한다."
"......"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도착한 닐이 안도하지도 못하고 눈을 찡그렸음. 세츠나의 몸은 당연히 아직 낫지 않은 상태였다. 앞으로 나아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태.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싸우겠다고 했음.
'나 말고 누군가가 그라함을 상처 입히는 건 참을 수 없어.'
'하지만...!'
'분명...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겠지. 내가 그를 끝내지 못했을 때. 그땐 당신들을 믿겠어. 내가 그를 막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때 그를 막아줘.'
"...세츠나."
닐이 이름을 중얼거리곤 입술을 깨물었음. 티에리아도, 할렐루야도 끼어들 수 없는 상황. 그라함조차도 바로 덤벼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세츠나는 한 발짝 그에게 걸어나갔음.
"그라함. 날 봐."
크르르르르
"나야. 당신의 소년이야. 당신이 살렸고 사랑해준 아이야."
세츠나가 겨우 웃었음. 지금의 말 만큼은 울면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신을 더없이 사랑하는 소년이, 지금 여기 서 있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했어. 당신에게 내 피를 먹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서서, 당신이 내 몸을 찢어내더라도 피를 마시게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라함의 목에서 사나운 울음 소리가 들렸음. 그를 가만히 보던 세츠나가 조용히 말을 이었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으르르르르르
"그렇게 되면, 분명 당신이 정신을 차렸을 때 슬퍼할 테니까. 나를 상처 입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건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결말은 아니야. 당신에게 죄책감과 삶을 함께 안겨주고 싶지 않아."
엑시아의 검이 서서히 녹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음. 에메랄드를 연상케하는, 약간의 푸른빛이 섞여 맴도는 영롱하고 맑은 초록색.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든 몸으로, 세츠나는 그에게 검을 겨누었음.
"그러니까 결심한 거야. 당신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에게 피를 먹이고 같이 살아남아야겠다고."
크르르르...!!
그라함이 기어이 검을 뽑아들었음. 세츠나는 한 번도 그와의 대련에서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핏빛으로 물든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세츠나의 눈빛이 강한 금빛으로 바뀌었음. 결연한 마지막 말이 떨어졌다.
"함께 살아남자, 그라함."
크오오오오오!!
그라함이 뛰어들었음. 챙!! 엑시아의 검과 그의 검이 맞부딪혔음. 그 사이에서 폭발하는 지독한 마력의 충돌.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사투. 뒤로 한참 밀려난 할렐루야가 지끈거리는 몸에 무릎을 꿇었음. 닐이 급히 그에게 다가옴.
"할렐루야!! 괜찮은 거야!?"
"...큭... 윽...."
"젠장, 다친 건 아니겠지? 안전한 곳으로 어서 대피를..."
그를 부축해서 일으키려던 닐이 할렐루야의 눈을 보곤 말을 멈춤. 알렐루야의 은색 눈동자. 할렐루야의 금색 눈동자. 두 가지 색이 뒤섞이다가 바뀌어 가고 있었음. 벌써 늦은 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순간, 할렐루야가 중얼거렸음.
"...돌아왔나? 도대체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거냐, 멍청이가..."
"너를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웃기지 마!! 다음에 또 그러면 죽여버린다!!"
할렐루야가 빽 성을 냈지만 닐은 어쩐지 상황이 긴박한 줄을 알면서도 웃고 싶었음. 중간에 들린 건 분명 알렐루야의 목소리였음. 하지만 어째서 지금 상황에? 할렐루야의 표정과 번갈아가며 나타나던 알렐루야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비틀거리며 일어섰음.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마력이 돌아왔어..."
"뭐?"
"마력이... 분명히, 알리가 죽으면서 사라졌을 마력이 돌아왔어... 죽은 자가 살아돌아왔을 리는 없는데, 어째서..."
알렐루야는 그 사실에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음. 어느새 곁에 다가온 티에리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음. 닐은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티에리아의 중얼거림에 뭔가를 깨닫곤 자신도 얼굴을 딱딱히 굳혔음.
"......알리의 체액을 받은 자가... 한 명 더 있었지. 알렐루야 말고..."
"......설마......"
경악으로 굳어진 눈이 서서히 돌아갔음. 알리의 피로 혼혈이 된 알렐루야. 그리고 알리의 타액으로 고통스러워했던 세츠나. 그는 지금 그라함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음. 하지만 커티의 약을 먹고 힘들어하던 기색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엑시아의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도 눈이 아플 만큼 강렬해져 가고 있었다. 닐은 한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음. 그의 눈이 변화를 멈추고 완전히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걸. 분명 커티는, 그 약이 그의 인간의 피를 강화시킨다고 했는데.
"세츠나... 네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엑시아를 그에게 넘겨주면서 그라함은 말했었다.
이 정도의 아름다움이면 내 마지막이 되어도 나쁘지 않다고.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엑시아를 든 세츠나가 그와 싸우게 되리라는 걸. 어쩌면 그가 엑시아를 들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
'당신은 바보였어.'
챙!!
다시 부딪혔다가 떨어지는 칼날. 그를 향해 날아드는 검기. 닿지 않아도 살갗을 베어내는 마력에도 밀리지 않고 선 세츠나가 웃었다. 이상하게도 몸이 가뿐했다. 커티의 약에 완전히 몸이 적응한 걸까.
'지금 와서 떠올려도 의미없는 말을 했잖아.'
엑시아의 손잡이를 다잡은 세츠나가 그를 휘둘렀음. 그라함의 공격은 그냥 대련을 할 때보다 훨씬 강력했고, 싸우는 동안 세츠나는 여기저기 다치고 낫고를 반복하고 있었음. 그것은 그라함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평생을 반복될 것 같은 전투. 그라함이 내지른 두 개의 검기를 막으며 뒤로 밀려난 세츠나가 엑시아를 치켜들었음.
'내가, 당신을ㅡ'
크아아아아아!!
돌진해오는 그라함. 검을 다시 휘두르는 찰나의 빈틈. 그를 놓치지 않고 세츠나는 엑시아를 크게 휘둘렀음.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녹색의 검기. 크게 베인 그라함의 왼쪽 얼굴에서 피가 튀었음. 울부짖는 그라함이 검 하나를 떨어트린 순간, 땅을 박차며 뛰어든 세츠나가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음. 짐승처럼 길게 드러난 송곳니에 살점이 박히는 살벌한 소리가 났다. 밀려서 뒤로 쓰러진 그라함이 그를 밀어내려 발버둥쳤음. 아까 뱀파이어의 피를 빨아댈 때와는 다른 분위기.
"...윽..."
세츠나가 눈을 찡그렸음. 뼈를 씹어댈 것처럼 그를 물어뜯는 이에 피가 줄줄 새었음. 아무리 빨리 낫는다고 해도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세츠나는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주었음. 흐르는 피가 그라함의 턱을 적시고 목까지 흠뻑 흘러내릴 때까지도. 그를 밀어내던 그라함의 힘이 줄어들었음.
"해낸 건가...!?"
마법사인 자들의 눈에는 점점 안정되는 그라함의 마력이 확실히 보였다. 마침내 끝난 건가. 아주 잠깐,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찰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세츠나를 향해 다가갔음. 그리고.
쾅!!
세츠나의 멱살을 낚아챈 그라함이 그를 그대로 바닥에 찍어누르며 위에 올라탔음. 땅에 내동댕이쳐진 세츠나가 눈을 크게 뜨며 쿨럭거리자 입에서 피가 쏟아졌음. 머리가 완전히 으스러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의 충격. 하지만 그의 다른 손엔 엑시아가 아직 들려 있었음. 반격할 수 있는 거리. 세츠나가 눈을 겨우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음. 피에 젖은 입술로 으르렁거리는 그라함이 그를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음. 벗어나지 못하면 분명 죽일 것이다. 피를 빨지도 않고 수십 조각으로 찢어죽일 것이다. 세츠나가 엑시아를 쥔 팔에 힘을 주었음.
하지만 다음 순간, 세츠나는 힘없는 웃음과 함께 엑시아를 놓아버렸다.
".......역시 못하겠어."
그의 목을 짓누르던 손이 떨렸음.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어."
신을 죽이는 방법 따위, 알지 못하니까.
여전히 그라함의 입 너머에서는 짐승의 울음 소리가 났음. 핏발이 선 붉은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렸음. 마지막 남은 이성의 흔적일까. 손을 겨우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아내던 세츠나가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어 그에게 키스했다. 입에 가득 고여 있던 피 한 모금. 지금의 그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죽음이 아닌 모든 것.
"사랑해, 그라함."
울지 마.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다시 그의 몸을 내리찍는 강한 손. 축 늘어지는 세츠나의 몸. 그 어느 때보다 비통한 절규가 울려퍼졌다. 지켜보는 자들이 경악했지만, 뛰어나갔지만,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상황. 그라함의 검이 기어이 휘둘러졌다. 사방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