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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화: 그라세츠)신과 소년 .03
Caption 소설이 아니라 썰로 이어집니다. 주의해주세요. 리랴님(@ryria_HQ)의 허락을 받고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관계 묘사가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와 성인의 관계를 다루는 트리거 요소를 기반으로 합니다. 썰의 특성상 이하는 반말로 진행되므로 양해바랍니다. 세츠나의 부상은 금방 나았음. 세츠나는 뱀파이어가 되었어도 육신은 인간에 가까웠고 은으로 입은 상처도 일반 상처처럼 금방 나았음. 뱀파이어가 은에 상처를 입는 건 인간과 세포 구조가 달라서라는... 그런 것이 통용되는 세계관이다 그래서 세츠나는 그 뒤로 말끔하게 나았지만 그라함이 성 밖으로 나가는 걸 금지시킴. 이번엔 감금 맞음. 그 뒤로 그라함이 세츠나 엄청 엄하게(...) 괴롭혀서 못나간 것도 있음. 아무튼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어느날 누가 성에 찾아와서 나가봤더니 전에 세츠나가 닐에게서 구해준 뱀파이어들이었음. 어린 자매들이었다. 세츠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성까지 찾아온 거였음. 귀여운 아가들은 세츠나에게 꽃을 주고 돌아가고 세츠나는 간만에 웃는데 그라함도 오랜만에 부드럽게 세츠나 머리 쓰다듬어주고 이마에 입맞춰줌. 세츠나가 가만히 그라함 품에 안겨 있다가 문득 말을 꺼냄 "앞으로도 더 많이 구해주고 싶어." "왜지?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는데." "하지만..." "하지만?" "...당신처럼 되고 싶으니까." 그라함은 금방 세츠나의 말뜻을 알아채고 옅게 웃어버림 "신이 되고 싶은 건가? 뱀파이어들은 그렇게까진 생각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말이다." "상관없어. 누군가를 구원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 내가 당신에게 구원받았던 것처럼." 그라함은 순진하다고 말하려다가 세츠나가 진심이라는 걸 깨닫고 그만둠. 세츠나는 사실 그라함에게 구해졌을 때부터 쭉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자신이 구원받았던 것처럼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그라함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말을 들었으니 앞으로 더 혼내기도 어렵겠다고, 속으로 쓰게 웃은 그라함이 세츠나의 입에 한 번 더 입맞추곤 장난스럽게 물음. "그럼 언젠가 나도 위기에 빠지면 구원해주는 건가?" 세츠나가 망설이지도 않고 진지하게 대답함. "그래. 반드시." 그 대답이 사랑스러워서, 너무 예뻐서 그라함은 고맙다고 말도 않고 세츠나에게 연달아 입맞추다가 번쩍 안아들고 침대로 감. 이하는 생략한다< 처음엔 당황해서 그라함을 부르다가 뭐에 또 불이 붙었구나 싶어서, 그리고 저번처럼 화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세츠나는 조용히 그라함에게 안겨서 새색시처럼 방으로 감^^ 그라함이랑 세츠나가 오붓하게 지내는 동안 닐은 꽤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 닐은 부모님과 동생이 전부 뱀파이어에게 살해된 과거가 있어서 뱀파이어들을 증오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헌터 일을 하면서 자기랑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뱀파이어를 더 싫어하게 된 사람이었음. 그러다 보니 뱀파이어의 편을 드는 세츠나의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는데, 닐의 보고를 듣게 된 동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음. 바체 보유자인 티에리아는 닐이 마지막으로 봤다는 뱀파이어(그라함)에게 조종이라도 당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말이 안 통한다면 죽여버리자 파였음. 티에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뱀파이어 헌터로 훈련받으면서 자라온 인물이어서 상대가 뱀파이어든 인간이든 가차없이 죽일 수 있는 성격이었음. 다른 동료인 알렐루야는 큐리오스의 소유자였는데, 뱀파이어 헌터들 중에서는 특이하게 세츠나처럼 뱀파이어의 피를 먹고 혼혈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뱀파이어에게도 인간에게도 배척당하다가 뱀파이어 헌터가 된 쪽이었음. 뱀파이어 헌터가 된 이유는 자기와 같은 인간들이 더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라함 같은 순혈의 피를 받은 게 아니라 피를 보면 반쯤 미치는 불완전한 폭주 상태에 빠지는데 동료들은 그때의 알렐루야는 할렐루야라고 불렀음. 아예 다른 인격으로 간주함. 아무튼 그래서 알렐루야는 그도 자신처럼 강제로 뱀파이어가 되서 따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면 데려오고 싶다고 주장함. 물론 닐도 같은 입장이었으므로, 티에리아는 못마땅해 했지만 결국 그를 설득해보기로 결정함. 티에리아는 더 반대하지 못하는 대신 만약에 설득이 안 통한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못박음. "거물급의 뱀파이어는 절대로 놓칠 수 없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찾고 있던 '그 뱀파이어'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누구든 망설이지 마라. 닐 디란디."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 그 일이 있고 나서 세츠나는 그라함하고 검술 수련을 더 하게 됨. 목표가 있어서인지 세츠나는 이전보다 점점 강해졌고 그라함하고 대련해도 다치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음. 그리고 싸울 때면 뱀파이어들이 힘을 끌어올릴 때나 그 본능을 드러낼 때처럼 눈동자가 종종 금빛으로 빛나곤 했는데 그라함은 매우 뿌듯해함. 사실상 세츠나가 뱀파이어만큼 강해지면 은의 검 엑시아를 갖고 있으니 어지간한 뱀파이어도 못 건드릴 테고, 은의 무기들도 안 먹힐 테니 뱀파이어 헌터들도 손 쓸 수 없을 지경이 될 터인데도 그랬음. 그러던 중에 빌리가 와서 그라함이 세츠나에게 엑시아를 준 걸 보고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그라함은 신경도 안 씀. 그라함에게 세츠나는 자신이 거둔 사랑스러운 소년이었고 자신이 꽃피운 가장 아름다운 존재였음. 만약 세츠나가 정말로 자기를 죽이게 된다고 해도 기쁠 거라고 그라함은 종종 생각함. 물론 세츠나도 그라함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세츠나는 오히려 그런 건 상상도 해본 적 없었음. 그런데 강해지는 건 세츠나뿐만이 아니었음. 세츠나가 그라함과의 동화가 강해지고 뱀파이어에 가까울 만큼 성장해갈 때도 그라함은 계속 세츠나의 피를 마시고 관계를 맺었는데, 이게 그라함에게도 작용을 해서 이미 강한 뱀파이어였던 그라함도 능력치가 상승함. 정말로 서로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단단하게 연결된 동반자가 된 것임. 덩달아 세츠나의 색기도 읍읍 이 모든 성장이 닐 디란디와 만난 후 고작 한 달 정도만 지났을 무렵이었음. 세츠나가 그 뒤로 다시 성 밖의 외출을 허락 받았을 때였음. 그라함은 다른 귀족들 간의 소집이 있어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데, 그라함은 자기가 없다 보니 세츠나에게 예전처럼 또 위험한 일이 닥치거든 반드시 성으로 대피하라고 신신당부함. 뱀파이어의 성에는 마법 결계가 쳐 있었는데 이건 뱀파이어가 아닌 자는 접근할 수 없는 마법이고 해제하려면 성으로 들어와야만 했음. 물론 세츠나는 그라함의 피를 마셨기 때문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음. 세츠나는 성의 위치를 들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번에 그런 일도 있고 하니 그라함이 또 걱정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싸움은 피하겠다고 약속함. 그런데 저번과 같은 장소에서 인간의 기척이 느껴져서 세츠나는 긴장함. 아직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대로 피할까 했던 순간이었음. 닐이 불쑥 수풀 너머에서 등장함. 세츠나가 올 때까지 한달 내내 잠입(...)했으면 넘 불쌍하니 가끔 동태 살피러 왔었다고 하자. 아무튼 세츠나가 반사적으로 검을 빼들고 뒤로 훌쩍 피하니까 닐이 양손을 들어보임. 오늘 그의 손엔 듀나메스가 없었음. 허리춤에 달린 검 두어 자루만 보일 뿐. "싸우러 온 거 아니야. 널 만나러 온 거야." "......" "약속할게.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돌아갈 거니까. 대화만 하고 싶을 뿐이야. 그것도 싫다면 그냥 갈게." 사실 닐로서는 거의 도박이었음. 주 무기를 두고 왔으니 세츠나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츠나는 좀 고민하다가 엑시아를 도로 집어넣음. 전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싸웠지만 상대를 먼저 베어버릴 만큼 세츠나는 잔인하진 못했음. "고마워. 그나저나 이름이 뭐야? 전에 안 가르쳐줬는데." "......세츠나." "좋아, 세츠나. 나랑 대화 좀 하자.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 말이야." 세츠나는 시큰둥했음.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기도 했고. 그래도 닐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음. 무턱대고 자신에게 덤비지 않는 걸 봐서 인간이라고 무조건 공격할 것 같지도 않았고. "왜 뱀파이어의 곁에 있는 거야? 설마 뱀파이어가 되기라도 한 거야?" "......" "...좋아. 말은 들어주겠지만 다 대답할 생각은 없다 이거지. 하지만 대충은 알겠어. 네 실력만 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게 분명하니까." 세츠나를 가만히 보던 닐이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음. "세뇌를 당하거나 조종당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는 그런 치졸한 짓은 안 한다." 세츠나가 불쑥 대꾸했음. 그라함이 나쁜 평가를 받는 게 견딜 수 없다는 것처럼. 닐은 침착하게 그의 반응과 찡그려진 얼굴을 보다가 말을 이어갔음. "그럼 정말로 네 의지로 그의 곁에 머물고 있단 거지? 어째서?" "......"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학살해. 가축 취급하지. 나만 해도 가족들이 그들의 손에 죽었어. 흡혈이 목적이 아니었지. 그냥 잔인한 도륙이었을 뿐이야." "......" "인간과 뱀파이어의 공생은 불가능해. 당하지 않으려면 벗어나서 싸워야 해." "그라함과 난 달라." "널 데려갔던 그 뱀파이어인가? 당장은 다를지 모르지. 하지만," "그 이상 그를 모욕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베어버리겠어." 어느샌가 다시 빼어든 엑시아의 날이 그를 향해 겨누어졌음. 닐이 한숨을 내쉬곤 뒤로 한 걸음 물러섰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에게 맹목적이지? 이해할 수 없어."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라함을 공격한다면, 나도 널 적으로 간주하겠다." "네가 진짜 뱀파이어가 되었다고 생각해? 넌 인간이야. 이미 너 같은 케이스를 봤어. 뱀파이어들은 혼혈을 싫어해.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배척받고 버려질 거야. 그 날이 오면 후회해도 늦어. 세츠나." 강하게 내뱉은 닐이 세츠나에게 손을 뻗었음. "지금 선택해. 네가 인간을 선택한다면 난 너를 도울 거야." 날이 서 있던 세츠나의 눈이 점차 누그러졌음. 그리곤 뽑았던 검도 집어넣었음. 하지만 다가가서 닐의 손을 잡는 일은 없었다. "...그 제안을 좀 더 일찍 받았으면 달라졌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날, 내가 믿었던 사람들에게 버려져서 죽어갈 때 날 잡아준 건 그라함이었어. 그러니 몇 번을 말해도 내가 할 말은 똑같아." 세츠나가 돌아섰음. "난 나의 신을 택할 거다. 내 유일한 구원자, 그라함 에이커를." "......신?"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결심은 바뀌지 않아. 당장 이곳을 떠나, 닐 디란디. 다음에 또 마주친다면 그때는 진심으로 베어버릴 거다." 세츠나가 뒤로 몇 걸음 걷더니 휙 모습을 감춰버림. 정말로 자신이 할 말을 다했단 것처럼. 허탈히 서 있던 닐이 쓰게 웃으며 머리칼을 넘겼음. 설득은 완전히 실패네. 하고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그런 말이 오갈 즈음, 그라함은 뱀파이어 귀족들에게 둘러싸여서 세상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 그런데 세츠나에게 그가 엑시아를 줬고 그가 강하다는 빌리의 보고가 나오자 귀족 회의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함. 빨리 돌아가서 세츠나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던 그라함도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심각해짐. 그리고, "그가 정말로 엑시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자라면," "'그 자'의 처벌을 인계하는 것도..." "재밌군." 전혀 재밌지 않은 목소리가 살기를 품자 회의실이 단박에 조용해졌음. 그라함이 화가 난 걸 눈치챈 빌리가 급히 그라함의 팔을 툭툭 쳤지만 그라함에게 들릴 리 없었음. "감히 누가 내 소년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단 말이지? 나 말고 누가?" 그라함이 이제 정말로 화가 난 걸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었음. 구석에 앉아 있던 누가 힘겹게 입을 열었음. "하지만 그가 이 회의에서 인정받으려면 어떻게든 공을 세워야..." "인정? 그에게 왜 인정이 필요하지? 누가 그를 인정할 자격을 갖는단 걸까? 나 말고 누가?" 두 번 되풀이된 말의 뜻을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었음. 사실상 그라함은 이곳에서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위치였고, 그런 그가 선택해서 뱀파이어로 만들고 거두기까지 한 세츠나에게 누가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었음. 비록 반대를 하거나 불편해서 빌리를 파견하는 쓸데없는 짓을 벌이긴 했어도 그라함에게 세츠나를 내쫓으라고 강요하거나 세츠나를 그들 마음대로 다치게 할 수는 없단 이야기임. 그래도 꿋꿋이 꼴통 귀족들은 말을 이어갔음. "인간에게 눈이 멀어 소중히 지키던 보물을 내어주지 않았나. 자넨 너무 위험한 것을 키웠어. 그가 복종의 의사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뱀파이어의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네." "그가 뭘했는데? 검을 갖고서 자네들을 위협이라도 했나? 그 머리를 잘라내겠다고 했나? 그가 하는 일이라곤 내 침대에서 예쁘게 숨쉬고 자는 일밖에 없는데 과장들이 심하시군." 싸늘하게 웃은 그라함이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음. 살기에 밀린 것처럼 쾅 거칠게 넘어진 의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짐. 주변이 얼어붙은 걸 확인한 그라함이 비꼬듯이 웃음. "적이라고 했지. 어디 한 번 해보든가. 내 소년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한다면 나도 모두를 적으로 간주할 거다." "뱀파이어 모두를 적대하고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 뱀파이어가 아니라 온 세계를, 우주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소년만 내게 있어준다면." 그라함이 의자다리를 밟음. 와작,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짐.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네들이 각오를 해야 할 거야. 편히 죽지 못할 각오 말이야." "그라함!!" "더러운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군. 빌리, 난 먼저 실례하겠어." 친우가 부르든 말든 성큼성큼 방을 나선 그라함이 문을 부서져라 닫았음. 맴도는 한기, 정적. 뱀파이어들의 회의는 더 이어지지 못했음. 회의를 그렇게 개판내고서 그라함은 훌쩍 성으로 돌아옴. 사실 회의는 이틀 더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그라함은 더 그쪽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음. 그라함이 침실에 들어간 순간, 혼자서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던 세츠나가 놀라서 뒤를 돌아봄. 그라함이 빠르게 세츠나에게 다가갔음. "그라함? 돌아오기로 한 날짜는ㅡ" 그리고 세츠나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그에게 키스함. 세츠나는 좀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받아냄. 세츠나도 그라함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던 참이었으므로. 타액을 흥건히 섞고 부비어진 입술이 쓰라려올 즘에야 키스를 멈춘 그라함이 성급히 세츠나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그의 옷을 벗겨내림. 세츠나는 밀어내지도 않고 순순히 그라함의 목에 팔을 감았음. 날카로운 이가 박힐 때에만 아, 하고 낮게 탄성 비슷한 신음을 흘리며 떨었을 뿐. 피를 흠뻑 빨아댄 그라함이 피가 맺힌 살갗을 핥고는 금세 나신이 된 세츠나의 몸 곳곳에 키스하며 아름답다고 속삭임. 한 차례 피를 빨리고 밀려오는 욕정에 할딱거리던 세츠나가 어린애처럼 나도, 나도 줘, 하고 보채면서 그라함의 입술을 깨뭄. 피가 배어나는 입술을 젖먹이 아이처럼 빨아대는 세츠나를 쓰다듬으며 웃은 그라함이 다시 잡아먹을듯한 키스를 퍼부음. 포만감과 갈증이 미묘하게 얽힌 눈으로 그라함을 응시하던 세츠나가 중얼거렸다. "사랑해." "나도 마찬가지다. 소년." "세상 전부를 버려도 내 신만 있어주면 돼..." "그것도 똑같군." 웃으면서 그라함이 다시 입을 맞추곤 세츠나의 전신을 상냥하게 어루만짐. 달아오른 몸이 그의 손에서 자꾸만 움찔거리며 떨었음. 오늘은 쉽게 놔주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라함은 세츠나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음. 달콤하게 울려펴지는 야한 신음. 긴 밤의 시작이었다. (2018.05.02 추가) 그라함이 그렇게 회의를 파토내놓고 돌아온지 며칠 뒤의 일임. 여담으로 그라함은 딱히 인간들을 습격하거나 그들을 증오로 해친 적이 한 번도 없었음. 자신의 영지에 있는 뱀파이어들이 인간들을 너무 해치면 오히려 그들을 단속할 정도였는데, '귀찮아서'였음. 뱀파이어들이 인간을 너무 해치면 뱀파이어 헌터들이 응징을 운운하며 영지로 쳐들어오기 일쑤였는데 그들을 상대하기가 귀찮았던 거임. 그라함은 그런 헌터들을 잡아다가 피를 빠는 정도로 자기 배를 채웠는데, 세츠나를 주운 뒤로는 그럴 일도 없어졌으니 인간들과의 접촉이 더 줄어든 건 당연한 일임. 세츠나가 이곳에 온 뒤로 뱀파이어 헌터들이 한 번도 영지에 안 왔던 건 아니었지만 그라함은 피를 안 빨고 그냥 반 죽여서 영지 내 뱀파이어들에게 주곤 했음. 물론 세츠나는 몰랐다. 그라함은 언제나 세츠나가 모르게 움직였으니까. 그라함이 자주 애용하는 것도 검이었는데 세츠나에게 준 엑시아보다 더 투박하고 긴 쌍검이었음. 여담으로 세츠나와 처음 대련할 때는 목검으로 상대했지만 이후론 가끔 이 쌍검으로 상대해줄 때도 있어서 세츠나는 그 검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 그날도 세츠나가 자는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온 그라함이 여유롭게 성문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봄. 보이지는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음. 닐, 티에리아, 알렐루야. 뱀파이어 헌터들 중에서도 그 실력이 특출나 '뱀파이어 살상 무기'의 소유를 허락받은 자들. 하지만 그 무기를 든 자들을 셋이나 마주하고서도 그라함은 여유로웠음. "불청객은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특히나 이렇게 집 앞까지 쳐들어오는 무례한 손님은 더더욱." 그라함이 손을 뿌렸음. 그라함은 마법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이 세계관의 마법에 대한 건 나중에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본인이 검이 좋아서 더 안 익혔을 뿐이지 실력은 일류에 가까웠음. 마력 덩어리가 날아가서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을 치자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셋은 당연히 피하면서 밖으로 나왔음. 마침 마력을 충전해뒀던 티에리아가 곧장 반격을 날렸지만 그라함이 검을 뽑아들고 마력을 실어서 베어버림. "빨리 끝낼까? 소년이 깨기 전에 돌아가야 하거든. 혼자 남겨두는 건 미안해서 말이야." "뱀파이어 주제에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 닐이 먼저 눈을 찡그리며 대꾸했음. 그라함은 화내지도 않고 웃음. "뱀파이어라도 사랑을 하거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그러시냐!! 닭살 돋아서 못 들어주겠구만!!" 천박한 말이 그라함의 말을 끊고 달려들음. 전투만 시작되면 튀어나오는 할렐루야였음. 다른 손으로 마저 검을 뽑아들은 그라함이 큐리오스의 날과 한 차례 부딪히곤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남. 삼 대 일. 더군다나 상대의 무기는 뱀파이어에게 치명적인 은. 하지만 그라함은 자신만만했음. 여기서 잠깐 셋의 이야기를 하자면 알렐루야는 큐리오스 하나만 들고 싸우는 방식. 큐리오스는 거대한 가위지만 날을 분리해서 쌍검처럼 쓸 수도 있고 합쳐서 쓸 수도 있음. 알렐루야는 분리해서 쓰는 걸 좋아하지만 할렐루야는 뱀파이어의 목을 따는 걸 좋아함. 뱀파이어의 피가 튀니까 알렐루야는 질겁을 하지만. 티에리아가 가진 바체는 마력을 응축시켜서 쏘는 무기여서 티에리아는 원거리에서 알렐을 원조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데, 그것말고도 티에리아는 방어 마법에 특화되어 있었는데, 공격 시간이 오래 걸리는 티에리아가 지금까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는 건 그 덕분이었음. 어지간한 마법은 뚫지도 못하는 강력한 결계 마법. 할렐/알렐과 닐은 그 결계로 보호 받고 있어서 닐도 주력 무기가 원거리인 총이지만 티에리아의 원조가 있으면 마음놓고 싸울 수 있었음. 닐 디란디는 은 탄환을 쏘는 듀나메스를 갖고 있어서 티에리아처럼 뒤에서 날뛰는 할렐을 원조할 때가 많았지만 은의 검 두 자루도 갖고 있어서 근접과 원거리 둘 다 전투가 가능한 유능한 헌터. 상대들이 그렇다 보니 그라함도 다른 헌터들을 상대할 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음. 그라함의 검은 튼튼했지만 티에리아의 결계를 완전히 깨진 못했고, 닐이 근접과 원거리 공격을 동시에 퍼부으니 방어에 치중한 것도 있었음. 할렐과 닐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그라함의 주의가 빼앗겼을 때였음. 티에리아가 작정하고 마탄을 날림. 그라함이 성에 가까워진 타이밍을 노린 거였음. 피하면 성이 맞는다. 성이 박살나면 그가 아끼는 소년 세츠나도 당연히 부상을 피하지 못한다. 셋 다 승리를 예감한 순간이었음. "우습게 보지 마라!!" 그라함이 양 검을 땅에 박아넣었음. 너무나 쉽게 깊게 박힌 검날에서 퍼진 마력이 삽시간에 그라함을 둘러싸며 티에리아의 마탄을 막아서 튕겨냄. 숙였던 몸을 일으켠 그라함이 쌍검을 휘둘러서 검기를 날려보냄. 가까스로 피한 닐이 겨우 서서 그라함을 노려보았음. 지지 않고 쌍검을 돌려 잡은 그라함이 살기 등등하게 외침. "지금까지 총을 가지고 온 헌터들이 자네들 뿐이라고 생각하나? 여럿이서 덤빈 것이 처음 같나? 살상 무기를 들고 덤빈 것도? 뱀파이어를 얕보지 마라! 상대는 나, 그라함 에이커다!!" 엄청난 박력에 티에리아가 뒤로 물러서며 이를 악물었음. 하지만 할렐루야는 기죽지도 않고 뛰어들어서 그의 목을 노림. "알게 뭐냐! 금방 죽을 뱀파이어의 이름 따위 안 궁금하거든!!" "실망이군!! 그래도 너희 헌터들 사이에서는 유명할 거라고 생각했다만?" 챙, 챙, 챙, 은과 쇠가 부딪히는 사나운 소리가 잠시 끊겼을 때였음. 그라함이 즐거운 듯이 웃음을 터트렸음. 그에겐 전혀 밀리거나 지친 기색이 없었음. "아리오스를 뺏어온 자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때는 할렐루야도, 닐도 전부 동요했음. 바체, 듀나메스, 큐리오스와 함께 인간들의 손에 있었던 아리오스가 결국 뱀파이어의 손에 넘어간 게 십 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닐이 은탄환을 마구 쏴대자 그라함이 뒤로 물러섬. 닐이 이를 갈면서 그를 노려봄. "역시 네놈이었나?" "흐음. 한 명쯤은 알고 있을 거라-" "크루지스 살육전의 범인이 정말 네놈이냐!!" 닐이 포효하듯 외침. 뱀파이어 헌터였던 디란디의 부모가 죽은 사건. 그의 딸이자 닐의 여동생이었던 어린 아이까지 휘말려 죽고,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알렐루야가 억지로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가 되었던 사건.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뱀파이어와 인간의 가장 큰 전쟁이자 비극으로 회자되는 사건. 일순 표정이 굳었던 그라함이 눈을 찌푸리며 웃음을 띠움. "그런가. 그 날의 생존자인가, 인간?" "그렇다면 어쩔 거냐!! 이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할렐루야도 드물게 웃음을 지우고 사납게 외치며 다시 큐리오스를 휘두름. 티에리아의 반격도 다시 날아왔음. 할렐루야의 일격을 막아내던 그라함이 손목을 세워 달려드는 닐의 검을 막음. 챙!! 유달리 크게 부딪힌 검날 너머로 닐이 그라함을 노려봤음. "드디어 찾았다, 원수!!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인다, 그라함!!" 그라함이 세 명의 헌터들을 상대로 한창 싸우고 있을 무렵이었음. 세츠나가 잠에서 깸. 하지만 그라함의 부재에 의아해할 정신이 없었음.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운 몸. 타들어가는 목을 긁으며 힘겨워하다가 겨우 의식을 차린 세츠나가 옷을 쥐어뜯었음. 헉,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눈동자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가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함.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고통. 결국 침대에서 떨어진 세츠나가 바닥을 마구 긁었음. 뭉툭한 손톱이 땅을 긁다가 기어이 바닥에 피를 그림. 그라함은 세츠나의 이상을 깨달음. 둘은 서로가 마신 피로 깊게 이어진 사이였고, 세츠나가 닐과 싸울 때 상황을 눈치챈 것도 그 덕분이었음. 그때까지 여유롭던 그라함은 갑자기 다급해짐. 딱히 그들에게 친절히 설명해줄 마음도 없었던 그라함은 전투를 빨리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음. 뒤로 휙 물러선 그라함이 검에 강한 마력을 불어넣어서는 갑자기 티에리아에게 날림. 티에리아는 자신의 결계를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기가 날아와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결계에 막힌 검이 결계를 일그러뜨리며 뚫고 들어오는 걸 보고선 처음으로 흠칫함. 동시에 알렐루야와 닐의 결계도 같이 흐트러졌음. 닐이 다급히 티에리아를 부름. "티에리아!!" "멍청이, 어딜 한 눈파는 거야!!" 닐이 휙 고개를 돌렸음. 닐을 노리는 척하며 달려들던 그라함이 할렐루야의 빈틈을 파고들어선 결계의 틈을 따라 그를 베어버림. 어깨가 깊게 베인 할렐루야가 그대로 주저앉은 순간 그라함이 닐도 노리고 파고들었음. 티에리아가 다급히 결계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그라함의 마법은 만만치 않았음. 칼날이 결계를 기어이 찢어낸 순간 티에리아의 몸에서도 피가 솟구침. 티에리아의 비명에 닐이 그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그라함이 닐에게도 일격을 날림. 위기의 찰나, 닐은 이를 악물고 제가 들고 있던 검을 휘두름. 인간의 순발력과 뱀파이어의 순발력, 당연히 승리는 후자의 것이겠지만. "!!" 닐의 검이 그라함의 팔뚝에 박힘. 도리어 놀란 건 닐 쪽이었음. 그라함은 세츠나의 위기를 깨달은 순간부터 과감해진 만큼 허술해져 있었음. 하지만 놀라지도 않고 자신의 팔을 들어서, "큭...!?" 닐과 함께 팔꿈치째 베어버림. 인간으로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회복력이 남다른 뱀파이어에겐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음. 은에 베인 상처는 회복되지 않지만 다른 무기로 베인 육신이라면 그 고통은 어마어마할지언정 수복되니까. 저만치 날아간 닐이 나무에 부딪히고 쓰러짐. 떨어진 자신의 팔이 은에 타들어가는 걸 싸늘히 보고 있던 그라함이 그대로 발을 돌림. 할렐루야/알렐루야, 티에리아, 닐, 전부 전투 불능. 명백한 그라함의 승리였음. "상황이 상황이니 살려주지." "윽..." "하지만 딱 한 번, 자비를 베풀어주겠다. 잘 들어라. 그자를 쫓는 건 그만두는게 좋아." "뭐...?" "크루지스 살육전의 범인 말이다." 피를 토하며 일어서던 닐이 눈을 찌푸렸음. 그건 네가 범인이 아니란 말이냐, 하고 닐은 되묻지 않았음. 하지만 그래도 그의 말을 그대로 곧이듣기 싫은 게 사람의 심리. "설교하는 거냐!" "충고다. 지금보다 더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라함이 돌아섰음. "그건... 우리 뱀파이어도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다." "괴물이라고..." "그러니까 포기해라. 인간들." 그라함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음. 그가 에이커 가문의 가주가 되기 직전의 일. 그리고 자신은 결코 원치 않았던 처참한 살육과 죽어간 동족들, 널브러진 인간들의 시신 따위를. 그라함은 착잡해진 얼굴로 그곳을 떠남. 마지막 순간 떠오른 건 그자의 처벌을 세츠나에게 맡기네 마네 했던 역겨운 귀족 회의였음. 닐이 등 뒤에서 기다리라고 외쳤지만, 그라함은 성 안으로 모습을 감춤. 그라함이 들어왔을 때 세츠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신음하고 있었음. 눈은 이제 금색도 그의 적갈색도 아닌 완연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음. 그라함이 황급히 세츠나를 일으켜 안았음. 흐릿하던 눈동자가 겨우 그를 바라봄. "...그라...함...?" "그래. 나다, 소년.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어디가 아픈 건가?" 그라함이 걱정스럽게 세츠나의 뺨을 쓸었을 때였음, 세츠나가 일순 파르르 떨다가 그를 밀쳐냄.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니 당연히 그는 바닥에 쓰러졌음. 그 힘보다 세츠나가 자신을 밀쳐냈다는 거에 놀란 그라함이 그를 바라봄. "세츠나?" "안, 돼... 만지지 마..." 세츠나가 자신의 몸을 양팔로 꽉 끌어안음. 뭔가를 억지로 참는 것처럼 보였음. "지금의, 나한테... 닿지 마...!!" "소년!" "위험, 해... 다가, 오면... 안 돼..." 세츠나가 고개를 억지로 흔들었음. 새빨갛게 물든 눈이 번뜩거렸음.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물러설 그라함이 아니었음. 눈을 찡그리고 그를 보다가, 없어진 팔뚝에서 흐르는 피를 입가에 댐. 그때까지도 그가 팔을 잃었단 것도 자각하지 못하던 세츠나였음. 다시금 한 팔로 그를 당긴 그라함이 그에게 입을 맞춤. 도망가지 못하게 뒤통수를 꾹 누르고서. 세츠나가 품에서 발버둥쳤지만 곧 잠잠해졌음. 그라함의 피는 세츠나에게 늘 거부하기 어렵게 달았으니까. 습관처럼 그라함의 입술을 물려던 세츠나가 덜덜 떨며 드러난 송곳니를 뒤로 뺐음. 마치 그에게 상처를 절대로 낼 수 없다는 것처럼. 잠시 후, 세츠나가 그의 품에 쓰러짐. 그라함이 그를 끌어안고 안색을 살폈지만 세츠나는 기절해 있었음. 하얗게 질려 있던 낯빛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깨달은 그라함이 한숨을 쉬며 한 팔로 그를 꼭 안음. 거칠고 가쁘던 숨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물론 답을 알 방도는 없었음. 자신의 잘린 팔에서 서서히 밀려드는, 회복의 고통은 완전히 무시한 채로 그라함은 이를 악물고 세츠나의 곁을 지켰음. 밤이 완전히 지나 아침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