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프는 앞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도로 끌어올렸다. 책상에 팔을 걸치고 앉은 벤투스가 발랄하게 미소지었다. 마치 그의 것처럼 달고 싱그러운 향이 주변을 맴도는 듯했다. 한숨을 작게 내쉰 데니프가 손을 뻗었다. 오십 송이는 족히 넘을 듯한 꽃다발이 묵직하게 잡혔다.
“엘프가 꽃을 꺾어도 되나?”
“어르신께 드리는 거라면 꽃만 꺾어오겠어요?”
“…….”
이런 사내였지. 데니프는 재차 한숨을 내뱉었다. 흰색과 파랑색의 꽃잎들이 별처럼 어우러져 제법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전부 꽂으려면 큰 꽃병이 필요할 듯했다. 데니프에게 선물할 거라며, 정성을 들여 고르고 또 골랐을 벤투스가 문득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이리도 쉽게 연상하는 스스로에게 데니프가 언뜻 놀랐을 때였다.
“사랑해요.”
꽃다발처럼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무심한 금안이 느리게 굴러 벤투스를 향했다. 그는 아직도 여유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랑해요, 데니프.”
“…….”
데니프는 눈을 돌렸다. 농담하지 말라며, 장난치지 말라며 꾸짖지 않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그의 진심은 늘 무겁지 않았다. 누군가는 데니프를 만만히 본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데니프는 그가 글자 그대로의 마음을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물론 그것이 거절의 어려움이나 곤란함, 거리감이나 심적 부담의 이유가 되진 않았다. 설령 벤투스가 무거운 고백으로 그를 흔들어보려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단지 선물받은 꽃다발을 만져보고, 안아보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 벤투스가 일으키는 파문의 일부이자 전부였다.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게.”
“네~ 어르신은 정말 여전하시네요.”
“자네만 하겠나.”
싱거운 대꾸였다. 벤투스는 미련없이 일어나며 무릎을 툭툭 털었다. 처음도 아니었기에 그리 섭섭하진 않았다. 마지막도 아닐 것이기에 서운하지도 않았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그땐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어르신.”
“자네 일하는 거 봐서 생각해보지.”
“너무하시다니까~!”
그래도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벤투스는 웃는 얼굴이었다. 조건도 대가도 없는, 오롯한 감정 하나로 피워내는 미소. 데니프는 그것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간들이야 종종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지만, 그는 엘프가 아닌가. 데니프는 꽃을 들여다보았다. 꽃에게 물이 필요한 까닭은 언젠가 시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바람이 물을 갈망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을 해도 금방 사라질 조그마한 파문, 그 이상을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데니프는 꽃 한 송이를 뽑아내려다 멈추었다. 무정한 금색의 눈동자가 오래도록 그를 향해 있었다.
“…….”
꽃다발이 도로 책상에 내려앉았다. 이대로 하루가 지나면 향기도 생기도 사그라들겠지만, 데니프는 그날 내내 꿋꿋하게 꽃다발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잠시나마 길어졌던 고민도 이젠 남일이었다.
끝내 꽃은 꽃병에 꽂히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