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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화: 록티)고집
Caption 트위터 용으로 썼던 단문입니다. 티에리아와 록온이 사귀는 사이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짜고짜 키스하고 있습니다. 티에리아는 눈살부터 찡그렸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벽에 몇 분 째 눌려 방치된 등은 슬슬 뻐근해지고 잡힌 손목은 미미하게 저려왔다. 건담을 타기 위해 무수한 훈련을 거쳤을지언정 이런 상황에서 오래도록 (고작 십 분도 안 되었지만 체감상 열 시간은 족히 지났으리라 느껴졌으므로) 붙들려 있는 게 티에리아에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결국 파고드는 혀를 힘주어 깨물어버린 티에리아가 그가 물러난 틈을 타 손목을 잡은 손을 뿌리쳐 털어냈다. 록온이 그제야 허리를 펴며 인상을 쓰고 제 혀를 굴렸다. "이번 건 좀 아팠는데." "집요하게 달려든 당신 잘못이다." 짜증스럽게 대꾸한 티에리아가 손등으로 입술을 마구 문질렀다. "평소엔 유들유들한 주제에 왜 이럴 때만 집요하지?" "그거 칭찬이야, 아니면 험담이야?" "후자인게 당연하잖아." "너무하네." 혀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닌지 한 번 더 확인한 록온이 다시 상체를 굽혀 몸을 가까이 했다. 다가오지 말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한숨으로 변해 허물어졌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티에리아를 가만히 응시하던 록온이 고개를 좀 더 숙였다. 낮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귓바퀴 근처를 나직하게 맴돌았다. "이런 키스는 싫어?" 하마터면 누가 싫다고 했느냐고 대답할 뻔해, 티에리아는 그런 자신에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필사적으로 삼켜야 했다. 티에리아가 진심으로 싫다고 대답하면 근 한 달은 곁에 얼씬도 안 할 사내였다. 차라리 능구렁이처럼 노련하기라도 하면 매몰차게 대할 텐데, 사람의 기분을 먼저 읽고 배려하는 상냥함에 날선 대응이 오히려 힘을 잃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록온은 티에리아에게 정말 대하기 힘든 남자였다. 티에리아가 복잡한 사고에 빠져 있는 걸 벌써 알아챈 건지 록온이 재차 그를 불러왔다. 장갑도 끼지 않은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그보다 하얀 뺨을 조심스레 감쌌다. "티에리아?" 낮게 한숨을 내쉰 티에리아가 그 손을 툭 쳐서 밀어냈다. 하지만 차마 아프게 쳐내진 못하는 손짓이었다. 빙긋 웃은 록온이 손을 거두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와의 거리는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간격에서 멈춰 있었다. "아무튼 좀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군. 난 당신처럼 키스에 집착하는 취미는 없어." "집착 같아? 뭐, 기분 상했다면 앞으론 조심할게. 미안해." 록온의 사과에 화가 난 기색은 없었다. 그 사실에 안심한 티에리아가 무심코 시선을 그에게 준 순간, 비로소 저를 보는 눈에 싱긋 웃어보인 록온이 다시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번엔 손목이 아니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완전히 겹쳐지는 온기에 티에리아의 눈빛이 일순 극명하게 떨렸다. "그래도 딱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 "…록온… 당신이란 사람은," "키스하게 해줘. 티에리아." 달콤한 부탁이 나직이 울려퍼졌다. 거절도 수락도 못한 채 괜히 부은 입술만 잘근거리던 티에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집요한 거야. 고작 키스 따위에." "고작이라니. 무슨 그런 섭한 말을." 록온이 티에리아의 턱을 살며시 감싸 당겼다. 바닥을 향하고 있던 초점이 겨우 그를 향했다. 자신을 똑바로 비추는 눈을 사랑스럽게 마주보며, 잠시 웃고 있던 록온이 장난치듯 입을 맞췄다. 쪽, 귀여운 효과음을 남기고 떨어지는 입술이 부드러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야. 어떻게 매달리지 않을 수 있겠어?" "……." "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키스하고 싶은 마음 뿐인데." 그리고 지금도. 속삭이듯 덧붙인 록온이 다시 입을 맞춰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진하고 깊은 입맞춤이었다. 흠칫 어깨를 떤 티에리아에게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어설프게 들려 있던 손가락도 미모사 잎처럼 오므라들며 록온의 손등에 조심스레 내려앉았다. 짜증나. 매번 이렇게 당해낼 수 없는 말만 하는 당신이. 그리고 매번 그런 당신에게 당해버리는 나도. 조금의 울분을 담아서 그의 입술을 깨물어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어쩐지 즐거워보이는 록온의 웃음 소리였다. 결국 완전히 포기한 티에리아가 눈을 감았다. 사랑해, 티에리아. 열기와 숨이 뒤엉키는 입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언뜻 들린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