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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발x복면대장입니다.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 관계로 바룬가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몽골어로 '오른팔'이라는 뜻입니다.
슈토헬 완결 이후의 시점입니다.
어제 동물을 많이 잡아둬서 다행이었다. 하루쯤 애쓰지 않아도, 이틀을 내리 쉬어도 배를 곯지는 않을 만큼의 고기들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래도 하라발은 세눈박이를 타지 않으니 좀이 쑤시는 모양이었으나, 그녀석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바룬가의 충고에 얌전해졌다. 뾰족하게 솟은 지붕이 악기라도 된 양 무수한 음을 울렸다. 떨어진 물방울, 흘러내리는 줄기, 부서지는 파음, 가장자리에 힘겹게 걸려 있다가 기어이 낙하하는 무게. 쉽게는 그칠 것 같지 않은 하늘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바룬가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닦다 만 화살촉이 아직 잡혀 있었다.
"사실 휴식이 필요한 건 너 아닌가."
"음?"
하라발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한쪽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문가의 기둥에 기댄 그의 무릎에 놓인 하얀 토끼 가죽 위로 돌칼이 슬슬 움직였다. 빗물이 튀어 가죽이 상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머리를 스쳐갔으나, 말해도 듣지 않을 그를 알기에 바룬가는 그냥 두었다. 가죽을 들어 털의 상태를 살피던 하라발이 마저 말을 열었다. 늘 그의 목소리는 다듬지 않은 수염처럼 듬성듬성 거칠었으나 무수한 빗줄기 속에선 그 어조도 제법 너그러웠다.
"손이 자꾸 멈추고 있다."
"그런가. 미안하군. 게으름을 피울 생각은…"
"아까 난 휴식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바룬가는 말을 삼켰다. 하라발은 남에게 무심한 듯하면서도 종종 이렇게 예리하게 내심을 꿰뚫고는 했다. 괜히 먼지 한 톨 없는 화살촉을 내려다보며 꾹꾹 문질러 닦던 바룬가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집요하게 저를 향하는 시선에 뺨이 따끔거렸다. 그의 앞에서 복면을 둘렀던 시절에도 종종 느꼈던 눈빛이었다.
"이유가 없는 피로다. 평소처럼 움직이다 보면 나아지겠지."
"벌써 비가 오면 삭신이 쑤시는 몸이 되었나."
"머리가 하얗게 샌 당신에게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만."
어딜 봐도 토라진 어투였다. 하라발이 낮게 웃었다. 하라발이 적게 웃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렇듯 돌연 불쑥 튀어나오는 웃음은 늘 바룬가의 가슴을 철렁 흔들어놓곤 했다. 괜히 붉어지는 뺨을 감추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바룬가가 화살촉을 대에 꾹 끼워넣었다. 꼭 맞게 물려들어간 쇳날이 예리하게 반짝거렸다. 하라발이 웃음기를 거두고 가죽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몸이 좀 쑤시는군. 나도 나이 많이 먹었지."
"당신은 세월이 아니라 상념을 먹어버린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오랜만에 낮잠이나 잘까. 할 일도 없고."
하라발이 내려두었던 다리를 접으며 바룬가에게 손짓했다.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던 바룬가는, 잠시 뒤에야 그게 화살을 치우라는 뜻임을 깨달았다. 바룬가가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다. 곧 저녁 준비도 해야 하니,"
"넌 이런 말은 정말 안 듣는군. 명령도 말도 안 들을 거면 부탁을 해야 하나?"
"그러게 난 괜찮다니까,"
"내가 쉬고 싶으니까, 좀 자자."
기어이 바룬가에게서 화살을 뺏어든 하라발이 그를 끌어당기며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덩달아 품으로 넘어진 바룬가가 당황하여 하라발을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이미 보란 듯이 눈을 감은 뒤였다. 저보다 굵고 억센 팔에 갇혀, 고개만 겨우 들어 빼꼼 움직이던 바룬가가 입을 열었다.
"하라발. 문도 안 내렸다."
"어차피 근처엔 우리 밖에 없는데 무슨 상관인가."
"그걸 말이라고 하나!"
"……."
"안 자는 거 다 안다. 하라발 당신은…"
뭔가 더 말하려던 바룬가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하라발은 그를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품에 안겨 있노라니 금세 잠이 몰려왔다. 새벽부터 그를 괴롭혔던 서늘한 한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포근함이었다. 아직 덜 만든 화살, 손질하다 만 가죽들을 억지로 떠올리던 바룬가가 재차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이마를 기댔다. 자신에게 말을 안 듣는다고 면박을 주었지만 그도 똑같지 않은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린애보다 더 제멋대로 굴면서. 내지 못하는 투정을 삼키며 바룬가는 눈을 감았다. 편하게 자리를 잡는 그의 어깨를 감싸는 손이 고집스레 든든했다.
"…못 당하겠어. 정말."
빗소리가 점차 멀어져갔다. 밤잠보다 깊고 조용한 오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