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일이라면서? 축하해~"
발랄한 목소리와 동시에 꽃다발이 코앞까지 들이밀어졌다. 그의 발치에서 늘상 피어나던 익숙한 꽃들이었다. 함박 웃음을 머금은 리츠카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트인 시야에 들어온 멀린도 밝은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그럼! 정말 고마워, 멀린."
헤실, 전에 없이 실없는 웃음을 비죽이 흘린 리츠카가 꽃다발에 코를 박았다. 멀린에게서 풍기던 싱그러운 꽃내음이 났다. 소매, 머리카락, 제게 닿는 손, 모든 것에서 번지던 향기가 지금은 제 품에 넘치도록 가득했다. 그를 지켜보던 멀린이 짐짓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사실 안 해도 되는 짓을 한 건가 신경 쓰여서…."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리츠카가 고개를 빼꼼 들어올렸다. 시무룩하게 쳐진 눈이 그를 흘긋거리다가 다시 처연하게 바닥으로 향했다. 어라, 갑자기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반전에, 리츠카가 금세 안절부절 못하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열살배기 어린애처럼 주눅이 든 멀린이 손을 느리게 꼼질거렸다.
"내게 말해주지도 않고… 남들에게 인사도 선물도 왕창 받았고… 이미 축하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을 텐데, 내가 또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그, 그럴 리가!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해서 그랬지! 다른 서번트들한테도 겨우겨우 말했는걸!"
"그 '겨우 말할 수 있는 서번트 목록'에도 내가 안 들어간다니... 우리 첫날부터 함께한 사이인데…."
미치겠다!! 리츠카는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멀린을 일부러 소외시키거나 생일을 숨길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도 말했다시피 멀린은 그와 첫날부터 함께해온 서번트고, 그 이상으로 특별한 존재기도 했으니까. 스스로도 몇 번이고 그런 기색을 내비쳤던 주제에, 생일을 말을 안 해줬으니 멀린이 속상해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달래줘야 하지. 어쩔 줄 몰라하던 리츠카를 슬쩍 살피던 멀린이 울적한 얼굴로 후드를 당겨 썼다. 새하얀 천이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던 머리칼을 전부 눌러삼켰다.
"역시 나는 내게 그렇게 중요한 서번트가 아니었던 걸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리츠카가 멀린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급하게 쏟아지는 외침이 절박했다.
"아니야! 절대로! 내가 멀린을 얼마나 아끼는데! 멀린이 없는 칼데아는 상상조차 할 수 없ㅡ"
그리고,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키스당했다.
꽃잎처럼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말을 삼킨 리츠카가 눈을 깜빡거렸다. 멀린을 붙잡았던 손은 어느새 거꾸로 그에게 붙들려 있었다. 리츠카가 당황해 굳어 있는 사이, 입술을 거두며 후드까지 휙 젖힌 멀린이 개구지게 웃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리츠카가 원망과 경악이 어린 눈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푸핫, 맑은 웃음을 터트린 멀린이 리츠카를 와락 끌어안았다.
"매번 알면서도 속아넘어가다니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놔!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아!? 심장 떨어질 뻔했는데 진짜…!"
리츠카가 멀린에게서 벗어나려 버둥거렸다. 평소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풀렸을 장난기 어린 눈동자가 지금만큼은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멀린이 그의 뺨에 한 번 더 입맞추곤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거세던 반항이 단단한 팔힘에 못 이기고 차츰 잠잠해졌다. 어지간한 서번트들보다도 높은 근력 수치를 자랑하는 멀린이었다. 평범한 인간인 리츠카가 당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정말 아쉬웠던 건 사실이야.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거든. 마스터의 생일."
다정한 속삭임이 감미롭게 귓가에 흘러들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낸 리츠카가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 곧 포기한 듯 멀린의 등에 손을 올렸다. 폭신한 머리칼이 먼저 손가락에 닿아 장난치듯 휘감겼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뭐,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니 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생일은 내년에도 찾아오니까. 그때는 반드시 맨 처음 축하해줘야지~ 하고 벼르게 되었을 뿐이야."
다시금 소리 내어 웃은 멀린이 고개를 들었다. 리츠카도 순순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정이 좀 정돈된 것인지, 그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엔 이제 원망의 색채는 없었다. 흐뭇하게 그의 뺨을 만질거리던 멀린이, 아직도 그가 들고 있는 꽃다발에 손을 뻗었다. 포옹 때문에 가장자리에 있는 꽃은 조금 구겨졌지만, 그래도 가운데에 있는 꽃들은 여전히 이슬 맺힌 꽃잎을 자랑하며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사실 인간의 생일을 이렇게 축하해주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안 했는데."
리츠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꽃을 한 송이 뽑아든 멀린이 그의 왼쪽 귓가에 살며시 꽂아주었다. 부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내게 특별하긴 한가 봐. 네가. 이런 걸로 하루종일 생각하고, 웃는 네 얼굴을 고대했을 만큼 말이야."
"멀린…."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부른 입술이 다시 닫혔다. 여전히 말을 찾아 헤매는 눈이 조금 떨고 있었다. 그 모양이 못내 귀여워, 푸스스 웃어버리고 만 멀린이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타이밍 좋게 꾹 내리감기는 눈이 애써 긴장한 티를 지우는 것도 사랑스러웠다. 다음엔 정말로, 그 누구보다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넬 거니까. 조용히 웃음 지은 멀린이 그에게 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나지막한 속삭임은 행복한 덤이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생일 축하해. 마이 로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