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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우울합니다.
60화 즈음의 시점입니다...........
"……ㅡ, 슌?"
슌은 조용히 눈을 떴다. 익숙한 잿빛의 눈동자가 어두운 시야에서도 선명히 빛나며 그를 비추고 있었다. 한참 찾았어. 약간의 투정이 섞인 어조에, 슌은 변명을 하는 대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건물 잔해의 틈바구니는 두 사람만으로도 답답하게 좁았다. 여기를 용케도 찾아냈군. 슌이 말없이 생각하며 옷을 툭툭 털었다.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앉은 유토가 손을 뻗었다.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내리는 온기는 그리 싫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이곳에서 잔 거야?"
"아지트엔 다친 녀석들로 꽉 찼으니까. 불편하게 자면 누가 근처에 왔을 때 깨기도 쉬우니, 일부러 이곳으로 고른 거야."
"그런 것치곤 아무리 불러도 안 깨던걸."
그건 상대가 너니까, 라는 말은 구태여 붙이지 않았다. 그저 날이 덜 서 있던 금빛의 눈매에 힘을 한 번 주었을 뿐이었다. 낮은 한숨을 내쉰 유토가 슌의 머리를 한 번 더 정돈해주었다. 사르락거리며 부드럽게 움직이던 손이 죽 미끄러지다가 슌의 볼께에서 멎었다.
"혹시 아카데미아에게 당한 건 아닐까 걱정했어."
"내가 그럴 실력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 텐데."
"그래도 걱정 되는 건 걱정되는 거야. 소중하니까."
유토의 손이 슌의 뺨을 보듬어 감쌌다. 슌이 유토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종종 그가 진중하게 내뱉는 진심에, 자신이 부끄러워하거나 두근거린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진작에 확인했음에도. 손을 가볍게 밀어낸 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토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그를 마냥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제 목에 두른 스카프만 꼼질거리던 슌이 대수롭잖은 어조로 툭 내뱉듯 물었다.
"그래도 잘도 찾아왔네. 이곳까지 비집고 들어올 녀석이 있으리라곤 생각 안 했는데."
"네가 있는 곳을 내가 못 찾을 리가 없잖아."
"그거 듣기에 따라 굉장하게 와닿는다는 걸 알고 하는 소린가?"
"그래도 사실인걸. 슌."
유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슌보다 한 뼘은 더 작은 키와 체구지만, 저 어깨와 낮은 눈빛에 한 번이라도 의지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유토가 슌의 손을 찾아 꼭 붙들었다. 전부 감싸지도 못하는 작은 손바닥이어도 전해지는 온기는 그를 온전히 데울 양 따스했다.
"네가 있는 곳은 어디라도 갈 거야. 찾아내고, 따라갈 거야. 네가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니까. 널 결코 혼자 두지 않아."
"……."
"돌아오기 귀찮으면 돌아오지 않아도 돼. 어디로 가는지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네가 먼저 출발하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서 따라갈 테니까."
단단한 손가락이 길고 흰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어 꼭 맞물렸다. 다시 바라본 유토는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쉴 수 있는 장소로 함께 돌아가는 거야."
"……."
"이만 가자. 다들 기다려. 루리도 네가 너무 늦게 오면 불안해할 거야."
슌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더는 뿌리칠 수도 없는 손이었다. 침묵도 잠시, 곧 짧게 숨을 내뱉은 슌이 잡힌 채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서 몸을 돌린 유토가 빙긋 웃었다. 같은 박자로 걷는 두 쌍의 발이 익숙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두런두런 이어지는 대화들이 언제 낯부끄러운 소리들을 했냐는 듯 평온했다.
"배고프지 않아? 오늘은 스튜를 끓인 모양이더라."
"재료를 많이 찾은 모양이지."
"응. 어젯밤에 늦게 정찰했던 애들이 찾아왔어. 덕분에……."
그리고, 슌은 다시 조용히 눈을 떴다.
차갑고 어두운 곳이었다. 빛은커녕 눅눅한 습기마저 닿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 슌에겐 익숙하면서도 답답했다. 옛날의 꿈을 꾼 것은, 일부러 구석진 자리에서 자는 것도 마다않던 이전의 습관 때문이었을까. 슌은 모포를 끌어올려 덮다가, 이내 거두곤 몸을 일으켰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며 울다가 금세 잠잠해졌다.
"……유토."
실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었다. 슌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헤어진지는 얼마나 되었던가. 얼굴을 몬 본지는?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된 것은? 유토. 그리움으로 뭉친 이름을 차마 또 부르지 못하고 삼키며, 슌은 세운 한쪽 무릎에 가만히 턱을 기대었다. 내리깐 금색의 눈에 그늘이 어려 있었다. 비단 오늘의 꿈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제, 그저께, 그리고 그 이전부터 죽 이어진 기다림이 쓰고 아려 혀가 알알했다. 무릎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다가 돌연 축 늘어졌다. 누군가가 먼저 찾아서 잡아주던 손은 텅 비어 차가웠다.
"유토."
더 또렷하고 선명한 부름이 독방을 울렸다.
"난 여기 있어."
"이곳에 있어. 유토."
대답은 없었다. 인기척은 더더욱 느껴지지 않았다. 먼저 달려가, 나중에 쫓아올 이만을 기다리던 그에게 부재의 지속은 가혹했다. 너무 많이, 빠르게 달렸나. 그래서 늦게 오는 걸까. 절대로 혼자 두지 않겠노라고 먼저 말해준 건 유토였는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던 슌이 이내 지친 듯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없는 옆자리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공허한 어둠보다 버거웠다.
이대로 영영, 네가 안 오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에서 엇갈려서. 마주칠 수 있었던 거리를 너무 벗어나서.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을까. 우린.
비관적인 생각은 품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짓밟혀도 일어날 각오만을 해왔다. 동료가 눈앞에서 스러져도 그를 배로 갚아줄 다짐만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이상하도록 선연히 뇌리를 파고드는 예감을 슌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고 싶은데. 만나고 싶은데. 분명 유토가 말했던 대로, 늘 했던 대로 자신을 찾아줄 거라 믿고 있는데도. 싸늘히 식은 이성의 자각과 이상의 기대가 공존하는 모순.
그 중에서 어떤 것이 현실인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마는 싫은 나와, 조금 미운 너.
"…거짓말쟁이."
중얼이는 찬 입술 위로 머리카락이 처연히 흘러내렸다. 누군가가 상냥히 어루만져 주었던 손길은 이제 기억나지도 않았다. 잔뜩 웅크린 등 위로 서늘한 밤이 내렸다. 남은 잠은 좀 더디 올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