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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화: 가엘아인가엘)당해낼 수 없는
Caption 이것은 몇 달 뒤 이런 캐붕이 있나! 하면서 이불하이킥을 하게 될 장르 첫 연성입니다. 가벼운 키스 묘사가 있습니다. 가엘리오와 아인에 딱히 공수를 생각하지 않고 적었습니다. 리버시블 소설이니 편하신 쪽으로 읽어주세요. "전에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었지?" 가엘리오의 질문은 종종 짓궂었다. 그의 경쾌함과 장난기가 딱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섞여 있는 어조였다. 아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준비해두라고 했을 때나 대뜸 연애사를 물어봤을 적부터 반쯤 예상하곤 있었지만, 가엘리오는 유독 그런 쪽으로만 집요했다. 바람기가 많아 주변에 여자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얼굴이나 출신이 부족해서 어울릴 이가 부족하지도 않았는데. 아인은 피로함을 꼭꼭 여며 숨기며 입을 열었다. 동요를 일부러 내비치거나 무심결에 흘릴 정도로 아인은 허술한 성격은 아니었다. "네. 그렇습니다." "흐응. 그래도 접근하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잘생겼잖아? 걀라르호른의 사람을 마다할 사람도 없었을 텐데." "…몇 번 만나본 사람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사이는 없었습니다." 가엘리오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화성의 피가 섞였다며 멸시하는 이들보다 훨씬 나았다. 그를 존중해주었던 크랭크 중위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와 확연히 다른 면모가 오히려 아인을 편안하게 했다. 한구석의 응어리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주는 청량함이 종종 놀랍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좋은 사람이고, 존경할 만한 상사다. 그럼에도 아인은 가엘리오에게 괜스레 벽을 세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지금과 같은 피로감을, 이유를 알 수 없는 감각을 접할 때면 더 그랬다. 헤에. 목을 재차 굴린 가엘리오의 눈이 아인을 향했다. 소년처럼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에 고스란히 아인이 담겼다. "기회는 있었는데 관심은 없었다는 건가? 보통 기회가 여러 번 오면 한 번쯤은 관심이 생기지 않아?" "……전 모르겠습니다. 일에 몰두해 있기도 했으니까요." "꽤 따분한 인생을 살았구나, 아인." 가엘리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문득 뭔가가 울컥 치밀어, 아인은 전에 없이 눈썹을 조금 움직였다. 가엘리오는 아직도 말을 잇고 있었다. 대화가 시작될 적부터 느긋함을 유지하던 발걸음이 느리게 멈춰 섰다.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고 했지? 그럼." 이번엔 또 뭘 물으려는 걸까. 반감보다 먼저 든 체념에 아인이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곱게 굴곡진 제비꽃색의 머리칼이 너울거렸다. 순식간에 시야에 찬 가엘리오의 두 눈은 이미 감겨 있었다. 아인은 눈을 깜빡였다. 그의 턱 아래에 조심스레 와닿은 손가락이 옅은 간지러움을 남기고 멀어졌다. 포개어진 입술보다도 더 선명한 감촉이었다. 입맞춤은 짧았다. 뜨겁거나 아찔하지도 않은, 그저 닿았을 뿐인 키스였다. 금방 고개를 든 가엘리오가 악동처럼 웃었다. 아인의 얼굴이 빨개진 건 그 다음이었다. "키스해본 적은?" "……." "아인. 대답은?" "…죄, 죄송합니다. 그, 지금, 보드윈 특무소령님과 처음……" 정신없이 더듬던 아인은 기어이 혀를 씹고 말았다. 기어이 웃음을 터트린 가엘리오가 그의 등을 팡 두드렸다. 단단한 손바닥보다 실수로 깨문 혀가 훨씬 더 아렸다. "이 정도로 키스는 무슨! 더 정진해야겠어, 아인 달튼 소위?"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럼. 앞으로 나랑 같이 다닐 거면 말이야." 앞으로, 같이? 뒤죽박죽 혼란스럽던 사고가 뚝 멈췄다. 아, 설마 이 사람. 새빨개진 아인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던 가엘리오가 몸을 돌리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얄미울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인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어! 푹 쉬고 내일 보자고." "아, 네, 그, 들어가십시오……" 아인이 말끝을 흐리는 동안, 가엘리오는 벌써 물만난 물고기처럼 저 먼 복도로 유연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아인이 겨우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새하얀 장갑이 달뜬 뺨을 아프도록 문지르다 멈추었다. 아직 간지러운 뜨거움이 남아 있었다. 한참 바닥을 헤매던 눈동자가 질끈 감겼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좋아하는데, 사람은 참 좋아하는데. 어느 것 하나 트집 잡을 것도 싫어할 것도 없는 사람인데. 이리도 정신없이 흔들어놓으니 더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아." 입술을 매만지던 손끝이 멎었다. 잔뜩 휘저어진 마음이 아직도 일렁이고 있었다. 하아. 다시금 터져 나온 한숨이 입을 덮은 손바닥에 도로 삼켜졌다. 새빨갛게 물든 열기는 아직도 가라앉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세우기도 전에 무너져버린 벽들이 부끄럽게도 엉망이었다. "보드윈 특무소령님…… 당신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