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성투사의 영혼은 코큐토스에 떨어진다. 명계를 지배하는 이가 아테나의 숙적인 하데스인 만큼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번 성전이 끝난 후, 판관 미노스(정확하게는, 그 대리를 맡은 르네)는 '모든 성투사의 영혼은 코큐토스에 떨어진다'는 부분에 예외를 덧붙이느라 크게 고심해야 했다. 라다만티스는 물론이고, 아이아코스마저 3분을 넘게 고민한 사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명계에 얽힌 신화의 한 페이지가 갱신되는 역사적인 시간 뒤에야, 미노스는 르네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그 아래에 메모를 추가했다. 바로 오늘, 하쿠레이와 세이지가 듣고서 어이없어 혀를 찬 문구였다.
'단, 성전을 두 번 이상 겪어야 하며 휴프노스님과 타나토스님께서 연모하시는 자일 경우엔 엘리시온으로 보낸다.'
"...실로 기발한 것을 생각해내느라 삼거두도 고생이 많았겠군요."
"죽음과 잠이 변덕스럽다고는 하나, 설마 이렇게까지 제멋대로일 줄은 몰랐습니다."
"네놈들의 입이야말로 제멋대로 노는 것 같은데. 한 번 죽었다고 기고만장해진 거냐?"
하쿠레이와 세이지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한참 만에 다시 본 형제의 영혼은, 죽을 당시의 나이가 아닌 가장 젊고 강했던 시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생과 시간을 묶어두는 '죽음'과 '잠'의 은총을 받은 덕이었다. 마냥 덤덤한 둘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타나토스는 팔짱을 끼고서 눈썹을 쉼없이 꿈틀거렸다. 그 옆에서 태연하게 웃고 있던 휴프노스가 앞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기껏 좋은 곳까지 불려왔는데 좀 더 기뻐하는 건 어떤가? 신의 가호까지 내려주었는데 말이지."
무어라 더 말하려던 하쿠레이는, 곧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말릴 새도 없이 거리를 좁힌 휴프노스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은 까닭이었다. 저를 감싼 두 팔에 살의나 악의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뭔가 간지러운 기분에 하쿠레이는 그를 꾹 눌러 밀어냈다.
"그렇군요. 신경 써주신 것에는 감사드리죠."
"넌 왜 말이 없지?"
"어린애처럼 일일이 들어야 속이 풀리십니까?"
세이지가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선으로 타나토스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타나토스는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다. 전투 중에 일일이 발끈하며 분노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세이지는 짧게 한숨을 쉬며 제 형에게 붙어 있는 휴프노스를 흘끔 살폈다. 성가셔하는 기색이 역력한 하쿠레이를 두고, 휴프노스는 아쉽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 두 손을 얌전히 내리고 있었다. 쌍둥이 형제인데 이렇게 다르다니. 자신과 하쿠레이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은 세이지가 다시 타나토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새카만 별을 사이에 둔 두 눈썹이 삐뚜름하게 올라가 있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척 기쁘니 화 푸시죠, 타나토스."
"흥. 말로만?"
"머리라도 쓰다듬어드릴까요."
"애 취급하지 마라!"
정말 다루기 힘든 사람, 아니 신이다. 마니골드를 키울 때만도 이렇게까진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세이지는 생각했다. 옆에서 휴프노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쓰다듬 정돈 받지 그러나, 타나토스여. 인간이 네가 준 생일 선물이 마음에 든다는데."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휴프노스? 생일 선물?"
반문하던 하쿠레이는 곧 다시 표정을 굳혔다. 빈틈을 노린 휴프노스가 하쿠레이를 또 끌어안은 탓이었다. 밀어내봤자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리라는 걸 깨달은 하쿠레이는 그에게서 벗어나는 걸 포기했다. 그 사이 세이지에게 결국 쓰다듬을 받은 타나토스는, 그제야 불만이 좀 가신 얼굴이었다.
"그래. 너희 쌍둥이들이 죽음과 잠을 선고받은 날이지 않나. 특별히 힘을 썼지. 감사하도록."
"...힘을 쓴 건 판관인 것 같지만 말입니다."
하쿠레이가 세이지와 같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타나토스와 휴프노스가 적지 않은 압력을 그들에게 넣었으리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제 아무리 명왕을 보좌하는 신이라고 해도, 그들의 수하도 아닌 자들의 법을 고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운 형제의 얼굴을, 그리고 보고 싶었던 이의 얼굴을 오래도록 보게 된 건 축복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쿠레이는 눈을 돌려 제 동생을 찾았다. 어느새 그와 마찬가지로 타나토스에게 꼭 붙들려 있는 세이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하쿠레이는 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 오늘만큼은 변덕을 받아주어도 되지 않겠는가. 그들이 먼저 신경을 써준 날이라면.
"생일 축하한다, 하쿠레이."
"생보다는, 죽음과 잠뿐인 날이겠지만. 기왕 주는 선물이니 기쁘게 받아들여라. 세이지."
콧대 높고 오만한 자들에게서 들려오는 축하 인사가 제법 달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픽 웃음을 머금은 세이지와 하쿠레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제 연인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이백하고도 수 년만에 받아보는 선물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방에 가득한 꽃들이 답하는 목소리에 제 향기를 묻히며 온갖 색을 터트렸다. 행복에 진정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마음에 듭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당신께서 주신 것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