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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토니)창공의 폴라리스 .03
책을 내는 걸 허락해주신 지크프리트의 오너 단테님과, 파에톤의 오너 눙님에게 감사드리며 ☆★명예지크토니러 바침★☆ Caption ※n차 창작된 지크토니와 그 등장인물들 지크프리트 사룡 파프닐을 쓰러트리고, 그의 힘을 흡수한 사검 발뭉을 손에 넣은 전설의 기사. 파프닐의 피를 뒤집어 써서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었으나, 등의 일부는 피가 묻지 않았다. 자기 희생 정신이 강하고 배려심이 깊지만 예외인 상대가 있다. 단 한 명.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나 감정을 깨닫는 일에 둔한 면이 있다. 어떤 적을 앞두고도 물러서지 않는 무모함은, 이런 자기애가 부족한 부분에서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 왕에게 충성하며 동료를 믿고 함께하는 전형적이고 고지식한 성격. 하지만 아내 크림힐트와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파에톤 별을 읽는 자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운명의 주인공. 정체는 이 우주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서 온 태양신의 아들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태양 마차를 몰았지만 말의 고삐를 놓치고 하늘과 땅을 불태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 후 최고신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맞아 죽었어야 했지만,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지크프리트의 세계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매일 지크프리트랑 투닥거리며 그를 싫어하는 듯이 굴지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남을 구하거나 지키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이 좀 더 소중한 어린 소년. 호기심이 많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이를 숨기는 일에 서툴다. 어머니가 바다의 님프로, 귀가 평범한 사람보다 뾰족한 편이다. 에스니 성별 불명, 나이 불명, 종족 불명. 목소리만 들으면 10대 중반의 중성적인 느낌이 난다. 별을 읽고 룬 마법을 구사한다. 군터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고 지크프리트나 하겐과도 안면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하겐 지크프리트의 동료 기사. 하지만 자신보다 더 뛰어난 지크프리트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다. 크림힐트 지크프리트가 모시는 왕 군터의 여동생이자 지크프리트의 아내.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브륜힐트 군터의 아내.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군터와의 혼약은 그의 기사 지크프리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본 정체는 전사의 혼을 발할라로 인도한다는 신의 사자 발키리. 03. 고집불통의 사내 토니 - 파에톤이 그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까지는 무려 사흘이나 걸렸다. 그가 일부러 엉망으로 발음하는 걸 도중에 눈치챈 지크프리트가 제대로 말할 때까지 놔주지 않겠다는 강격책(!)을 쓰기도 했지만, 그 광경을 하겐에게 들키는 바람에 오해만 샀을 뿐이었다. 하겐은 진지하게 묻기까지 했다. “크림힐트와 사이가 소원한 이유가… 역시 소년이 좋아서였나?” “분명히 말해두겠지만, 아니다. 아니라고.” “너무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하겐이 이죽거렸다. 지크프리트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스스로도 변명처럼 느껴져서였다. 분명 사랑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애초에 말도 잘 안 통하고, 고집은 더럽게 세고, 굳이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녀석을 왜 좋아한단 말인가! 어찌나 눈치가 좋은지, 한 번 이름을 불러주고 나자 그 뒤로는 ‘파에톤’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대꾸도 안 하는 주제에, 정작 그는 ‘휘리드’라든가 ‘지그’ 등등 이름 빼고 다 부르고 있으니… 하지만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건 파에톤에게 굳이 강요하거나 꼬투리를 잡는 자신의 태도였다. 하겐이나 다른 인간들이 꼬아서 말하는 건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릴 수 있었는데. 심지어 아내 크림힐트와의 거북하거나 껄끄러운 부분도 그저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소년에게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유치할 정도로 따박따박 트집을 잡고, 때로는 달려드는 대로 힘겨루기를 하고, 꼬집기는 물론이고 역으로 물려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건… 짐승과 주인 관계가 더 가깝지 않나?’ 지크프리트가 왼손을 살살 털며 텅 빈 눈으로 생각했다. 방금 전 대차게 물린 그의 손에는 잇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의 애마도 이렇게까지 애를 먹여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말이 안 통해도 이렇게까지 상성이 안 맞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비 오던 날의 순했던 모습은 환상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자, 따라해보세요. 에-스-니.” “에스니.” “잘하는군요, 파에톤. 이건 뭐라고 읽는다고 했죠?” “용, 기사. 찬미하다.” “잘했어요.” “이건 칭찬!” “맞아요. 이해가 빠르네요, 파에톤.” 에스니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소년은 제법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사람 봐가면서 하는 건 확실하군. 뚱하게 다가온 지크프리트가 파에톤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그가 다가올 즈음부터 금세 입술이 댓발 나오던 소년이 성난 고양이같이 버둥거렸다. “우씨! 놔!” “…놓으라는 말은 제대로 할 수 있게 됐군.” “바보! 얼간이 시그!” “지크-프리-트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에스니가 드물게 곤란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혼자서 책을 좀 읽어본 모양입니다. 뜻을 물어보기에 가르쳐줬더니… 나쁜 말이니 쓰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됐어. 알면서 쓰는 걸 테니까. 어쨌든 에스니는 이제 가 봐야 하니, 수업은 여기까지다.” “악당!! 켄타로우스의 꼬리털!”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기억했다.” 지크프리트가 그를 침대에 던지듯 밀어놓고는 에스니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닫힌 문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리며 파에톤이 짜증을 토해냈다. “아 진짜!! 내가 뭐 했다고 자꾸 괴롭혀요!? 진짜 싫어! 바보! 얼간이!” “…또 욕하는 것 같은데요.” “냅둬. 저러다 곧 얌전해지니까.” 꺾인 복도를 돌아가자 파에톤이 외치는 소리도 더 들리지 않았다. 흘긋 뒤를 돌아본 지크프리트가 그가 따라나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물어봤던 건 어떻게 됐지?” “아직은 흐름의 흐트러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균열이 있었다면 진작 생겼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게 아닐까 싶군요.” 지크프리트는 에스니에게 파에톤의 운명에 대해 주기적으로 살펴봐달라고 부탁했었다. 하겐과 군터에겐 비밀로 하는 조건으로. 하겐은 파에톤을 보살피는 일에서도 부정적이었으니, 그에게 말이 곧이곧대로 흘러가면 어떻게 움직일 지는 안 봐도 자명했다. 흘러흘러 군터의 귀에 들어가는 게 시간 문제라는 것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에스니는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노라고. 지크프리트가 작은 한숨과 함께 턱을 매만졌다. “아무 일도 없다니 다행이군, 안심해도 되겠어… 라고 하기엔, 마냥 마음을 놓을 수도 없나. 아직 벌어지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니까.” “달이 한 번 돌았을 뿐이니까요. 제가 눈을 떼지 않고 살피겠습니다.” “그래. 당신이라도 있으니 다행이군. 저 녀석도 잘 따르는 모양이고.” 그는 결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에 와서는 에스니가 결코 하겐이나 군터의 편에 서지도 않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낮게 한숨을 내쉬던 지크프리트는 불현듯 자조하며 웃었다. 충성을 맹세한 왕을 의심하고, 아내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전우조차 등을 온전히 맡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먼저 검을 꽂지 않고, 먼저 내버리지 못하고, 설령 그들이 미움과 실망을 드러내도 감내할 것이다. 그는 ‘영웅’이니까. 그렇게 살아오도록 정해진 운명을 걷고 있으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음?” 에스니가 고개를 숙였다. “…별의 눈부심은 곧 주변의 별을 멀게 함이니, 이를 찬양할 줄 모르는 자 마땅히 좁은 그릇에 시기를 품게 되리라. 허나 총명한 광채로 밝힌 시야는 필히 그것을 마주하게 되니, 벌하지 않음 또한 그의 미덕이오 그에 순응하는 것은 그의 운명이라.” “…….” “용의 기사여, 당신을 둘러싼 운명은 결코 당신의 행복을 바라지 않으나, 그것이 어찌 당신의 매정함을 증거하겠습니까. 도리어 경계하고, 징벌하고, 눈 먼 자의 마음을 그 피로 갚지 않음에 감사해야 할 것을…” 지크프리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영웅’의 길과 ‘패군’의 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용 이외의 피로 얼룩지고 거짓된 서약의 오점이 남은 생애다. 반역이 아니더라도, 배신이 아니더라도, 그의 뜻대로 내딛은 걸음이 화를 초래하더라도. 그는 누구나 마땅히 찬양할 용의 기사로 남을 것이다. 역사가 결코 그를 패배자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충고는 고맙군, 에스니. 하지만 괜찮아.”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선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설령….” 에스니가 말을 머뭇거렸다. 평소라면 지금의 대화도 말이 길었다며 물러갔을 터인 그의 머뭇거림은 지크프리트에게도 뜻밖이었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려던 발을 멈추고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 알고 있나? 파에톤과 관련된 일인가?” “……아니오. 지크프리트 님, 당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나와?” 지크프리트는 안심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어떤 일이 닥쳐도 물리칠 자신이 있어서, 라고 한다면 오만한가.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파에톤에게 닥치는 불운이 아님에 감사했다. 그래서 에스니가 전에 없이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용의 기사여. 사룡의 피가 당신을 비호하는 한 어떤 창도 당신을 찌르지 못하며 어떤 검도 베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꾸미는 흉계는 어떤 마법보다도 위험하고 간악하죠. 그것이 스스로가 초래한 덫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내린 뿌리라면, 내가 거두는 것이 더더욱 맞지 않겠나.”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고민하는 체도 않고 단언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난 하지 않는다.” 사방이 적이다. 영원히 고독하고, 이름이 남되 인간으로선 버틸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의 처지를 비웃고, 때론 회한에 젖더라도. 그는 결코 이어져 있는 것들을 버릴 수 없었다. 자신은 그들의 영웅이었다. 그것이 타인을 끌어들이지 않고, 인간의 세계에 사악을 몰고 오지 않는다면. 지크프리트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에스니가 허리를 숙여 보이곤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예언자를 눈으로 배웅하던 지크프리트가 돌아서다가 멈칫했다. 파에톤이 어느샌가 문을 열고 나와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뭐야, 언제부터…… 아니, 어차피 못 알아들었을 테니 괜찮나.” 한숨을 내쉰 지크프리트가 그에게 다가갔다. 평소 같으면 바로 꽁무니를 뺐을 소년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까워지는 그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지크, 프리트.” 걸음이 멈추었다. 파에톤이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자신이 아는 내에서 단어를 짜내려고 최대한 애쓰는 것 같았다. “이거 어떻게 말해야 하지? 에스니한테 말 좀 더 배워둘걸.” “…….” “아, 그러니까요… 둘이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나 반절도 못 알아들었긴 하거든요. 그러게 내가 모르는 말로 떠들래? 그치만 내버려둘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요…”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지크프리트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마음은 훨씬 가벼웠다. 눈을 동그랗게 뜬 파에톤이 이내 심술궂게 한마디 내뱉었다. “바보.” “그런가보군.” “멍청이.” “그래.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얼간이 시크.” “그건 아냐. 최소한 지크라고 불러라.” 지크프리트가 정색했다. 파에톤은 정말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에스니는 걱정하고 있었고, 그는 거절했다. 오고 간 이야기들을 전부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르리란 건 어린애에게도 통하지 않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들었을 그는 태연하기 짝이 없고, 그럼에도 조금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험담 몇 마디에 거짓말처럼 웃고 있어서. “……당신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누구인가요?” 소리 내어 묻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만큼. “…….” 지크프리트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를 이루는 것들은 그만큼 많으나 적었고, 커다란 만큼 공허했다. 무엇보다, 이 소년에게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고를 수가 없었다. 무수한 영웅담을 지닌 기사? 마검 발뭉을 손에 넣은 영웅?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소년의 질문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곱씹고 나서야 지크프리트는 깨달았다. ‘말하고 싶기에 고민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소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 꾸밈 없는, 자신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들여다보는 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어렵게 뜨인 입술이 천천히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기사가 말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지크프리트다.” 바보. 금세 김이 빠진 눈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지크프리트는 소리 없는 비난에 답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소년은 곧 웃음을 터트렸다. 침묵을 깨트리는 선명하고 맑은 소리였다. “어린애 같아요.” “그래. 그런가보군.” “못 알아들었으면서 아는 척했어. 그거 무지 뻔뻔해보이는 거 알아요?” “그래, 또 욕하는 거겠지. 잠깐, 생각해보니 이건 불공평하지 않나. 너는 점점 내가 하는 말을 알아가는데 나는 못 알아들으니… 그렇다고 네가 말을 잘 가르쳐줄 것 같진 않은데… 흠…” “잠깐, 그 눈빛은 뭐에요! 지금 엄청 한심하단 얼굴로 봤어!! 바보! 얼간이! 세이렌 깃털만도 못한 남자!” “욕하는 건 왜 점점 느는 거지? 네 천직이냐?” 지크프리트가 파에톤의 뺨을 꼬집었다. 파에톤도 지지 않고 그의 뺨을 잡아당겼다. 아까의 진지한 분위기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 헝클어뜨리기, 걷어차기, 안 잡히려고 버티기 등등 언제나와 같이 유치한 몸싸움을 벌이던 둘의 결말은 파에톤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는 걸로 끝났다. 황당해하는 지크프리트의 머리칼을 그보다 훨씬 작은 손이 쓰다듬었다. 그건 나름의 위로인지, 혹은 단순한 장난인지 지크프리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손이, 머리칼을 정돈하듯 매만져주는 손길이 그저 좋아서. “알려줄게요. 나에 대한 거.” “…….” “그러니까, 알려줘요. 지크프리트에 대해서.” 그 누가, 이런 질문을 그에게 던진 적이 있었던가. 지크프리트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스르르 주저앉은 채, 소년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파에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구해줬잖아. 돕고 싶어요.” “…….” “그러니까 말해줘요. 약속. 안 지키면 바보!” 이제 막 몸을 회복했을 뿐인 어린 아이. 어쩌면 자신의 세상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지도, 자신의 약점이 될지도 모르는 생명. 지크프리트는 그제야 그가 끼어든 궤도가 어디인지 알았다. 전혀 괜찮지 않은, 그야말로 벼락 같은 침범이었다. “이거야 원…”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숙였다. 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후련함이었다. “반드시 지켜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