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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남연)분칠
“연아. 여기 와 보거라.” “네.” 한치의 의심도,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한 남연이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왔다. 처음 만났을 적보다 부쩍 키가 큰 아이는 이제 앉아서 올려다봐야 할 만큼 자라 있었다. 자영이 빙긋 웃으며 제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눈을 감아보렴.” “선물인가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도 남연은 순순히 말에 따랐다. 애티가 슬슬 옅어지는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자영이 소매 안을 뒤적거렸다. 동그란 병의 뚜껑을 연 손가락이 그 안에 담긴 빨간 분을 조심스레 묻혔다. 새벽에 마실 삼아 나갔던 시장에서 사온 것이었다. “…….” 눈가 아래에 닿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남연의 닫힌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그것이 못내 귀여워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자영은 느긋하게 손을 움직였다. 갸름한 곡선을 따라 눈 아래를 검지 끝으로 쓸어내리자 붉고 화려한 색이 짙게 남았다. “…다 되었다.” 남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커다란 유리 거울을 그가 보이도록 들어주며 자영이 다정하게 웃음 지었다. “마음에 드니?”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기엔 잘 어울리는걸.” 남연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뺨도 덩달아 분의 색깔로 물든 듯했다. 자영은 더 말을 얹지 않았다. 분을 탁상에 내려놓고서, 지팡이를 찾아 쥔 자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둥지둥 따라 일어선 남연이 가까이 다가섰다. “그럼 서재로 갈까. 전에 숙제로 준 책은 다 읽었니?” “네, 네! 내용도 암기했어요!” 느릿한 걸음으로 이동하며, 둘은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탁상에 놓인, 주인을 알 수 없게 된 작은 병만이 동그라니 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