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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트(@ GC_058)님의 그레이엄 설정을 모티브로 작성하였습니다.
등장하는 하이랜더들의 이름이나 설정은 창작으로 그랜드체이스 오리지널 스토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때 밴지가 덫에 걸려서 넉 달을 앓아누워서 질질 짰는데~ 그게 벌써 삼백 년 전 얘기네~"
"벨리아나! 지난 얘기를 왜 또 꺼내?!"
"네 반응이 재밌어서잖아. 아직도 몰라?"
"앤서니 네가 제일 나빠!"
빽 소리를 지른 금발의 청년이 부루퉁하게 팔짱을 꼈다. 앤서니라 불린 사내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저마다 컵을 하나씩 쥐고 웃고 떠드는 그들의 복장은 조금씩 다르면서도 비슷했고, 젊은이의 용모를 하였으나 느껴지는 연륜은 제각각이었다. 아직도 지크하트가 익숙해지지 않은 '이종족'의 모습이었다.
"일어났군. 몸은 좀 어떤가?"
"......!!"
지크하트가 휙 고개를 돌렸다. 다가오는 자의 기척도 눈치 못 챈 것은 열 살이 넘은 이후 처음이었다. 지크하트의 경계심을 눈치챈 남자가 보란 듯이 두 빈 손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렸다. 왼쪽 눈에 낀 모노클을 덮듯이 내린 두 가지 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움직일 만하다."
지크하트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대꾸했다. 그레이엄이라고 했던가. 죽어가던 자신에게 신혈을 주어 살려내고 간호까지 해주었다는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대가 없는 호의는 바로 믿을 만큼 어리지도 순진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전설로만 여겨져왔던 불사의 전사들이 아닌가.
"팔에 다른 흉터가 생긴 것 같은데."
지크하트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그레이엄은 그의 팔뚝까지 고개를 들이밀고 흉터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다 나은 것처럼 보였는데 어떻게 알아챘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크하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나도 하이랜더가 되었다기에 시험해보았을 뿐이야."
"무모하긴. 재생력이 좋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닐세."
"그렇더군."
아픔도, 붉게 흘러나오는 피도, 칼에 베여 갈라진 살갗의 모양도 인간일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달라진 것은 아픔에 눈을 찡그리기도 전에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뿐. 그레이엄은 한 번 더 그의 팔을 살펴보곤 고개를 들었다. 치기 넘치는 어린 동생을 보는 것마냥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성격의 녀석들을 좋아하지. 저기의 앤소니도, 벨리아나도. 벤자민은 잔소리가 심한 편이니까 기억해두게."
그레이엄이 지크하트가 보고 있던 곳을 가리켰다. 나란히 모여 앉은 셋은 아직도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말없이 그들을 보던 지크하트가 흘끔 그레이엄을 살폈다.
"왜 그러나?"
"너희가 옛날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흠.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쓰이는 게 있나?"
"너희 같이 불멸의 삶을 사는 자들도 기억을 더듬어보나 싶어서..."
지크하트가 말끝을 흐렸다. 뒤늦게 무례한 표현이었다는 게 떠오른 탓이었다. 눈을 깜빡이던 그레이엄이 소리없이 웃음지었다.
"그럼. 우리도 살아 있는 존재니까. 우리뿐 아니라 엘프나 마족, 신족... 모두가 비슷하지 않겠나?"
그레이엄이 동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모노클에 달린 기다란 금줄이 흔들리는 것을 눈으로 쫓으며, 지크하트는 이어지는 그레이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히려 죽지 않기에 더 떠올리고 되새기려 하지. 함께 싸운 그 날의 하늘은 어떠했는지, 그 날은 어떤 위기를 넘겼는지... 우습지만, 우리도 가끔은 '죽을 뻔했다'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네."
"......"
"그리고 다함께 얘기하지. '역시 살아 있는 게 좋아. 내일은 뭐할까?'하고. 인간들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레이엄이 작게 웃었다.
"자네를 구한 것도 나중에 추억이 될 걸세. 그땐 자네도 우리의 추억담에 함께 어울려주면 좋겠군."
"...나도?"
"그럼. 이제 우린 동족이니까."
투명한 은색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가 느리게 잔잔해졌다. 한 번도 평범했던 적이 없는 그로서는 제법 낯선 이야기였다. 검술로서는 비할 자가 없고, 그를 동경하거나 시기한 자들 누구도 그와 동등히 서지 못했다. 인간을 벗어나고 난 뒤에야 동류라 부를 자들을 찾게 된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침묵하는 지크하트를 향해 그레이엄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지 않겠나? 다들 자네의 이야기도 궁금해할 테니까."
이번의 망설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크하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같은 피가 흐르는 두 손이 악수를 나누듯 서로를 꼭 마주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