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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클라)젊은 클라모르의 비극
Caption 논커플을 가정하고 썼으나 글쓴이가 커플조합을 먹고 있습니다. 편하신 방향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클라모르가 인공정령술의 결함을 깨닫게 되는 부분은 셀레스티아의 시간 속에서도 벌어졌을 거란 가정하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불현듯 눈을 떴다. 이불은 어깨까지 잘 덮여 있었으나 품이 묘하게 허전했다. 보고서 하나만 끝내고 잔다더니, 아직도 그걸 붙들고 있는 걸까. 늘상 있던 일이기에 노아는 대수롭잖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잠자리에 대강 쌓아두었던 책을 밀어내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한 권이 툭 떨어져 내렸다. “형. 너무 늦었어. 얼른 자.” 비척비척 나오며 노아가 졸린 소리를 냈다. 마법 램프를 등지고 선 클라모르의 그림자가 일순 일렁거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그것이 전부여서, 노아는 그제야 손을 내리며 제대로 앞을 응시했다. “…형?” 느리게 몸을 돌리는 클라모르의 손엔 뭔가가 구겨진 채로 들려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램프의 불빛으로 반쯤 그늘진 클라모르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식은땀이 밴 뺨이 창백했다. 노아의 안색이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형,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노아….” “응. 괜찮아. 진정하고 말해봐.” 클라모르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순간, 노아는 클라모르를 동요하게 만든 게 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멈춰버린 시간에서도 결국, 이것은 그의 과거여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거였을까.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는 듯했으나 클라모르의 목소리는 여전히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이거… 이거 봐봐.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노아. 처음 설계한 것과 너무 달라졌다구. 너무 악용하기 쉬운 구조로 흘러가버렸어.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이건…” 노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클라모르가 공황 상태에 빠진 게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떨리는 목소리와 갈 곳을 잃은 시선이 안타깝기 그지없어, 노아는 제 발치가 도리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걸 나쁜 뜻을 품고 쓰기라도 했다간… 맙소사, 사람의 생명까지도 가둬서 부릴 수 있게 될 거야! 이미 납품은 거의 다 진행되었는데 어떡하면 좋지? 뭔가 다른 수를 찾아……” 횡설수설 이어지던 말이 끊겼다. 하얗게 질린 손에서 종이가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차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시선이 발치를 맴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한 적도 분명 있었지만. 늘 현실은 계획보다 어렵고 예정된 결말은 바꿀 수 없는 법이었다. “……너……” 이처럼 무섭도록 공허한 울림이 또 있을까. 노아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알고 있었구나.” * 설명은 오래 걸렸다. 물 한 잔도 준비할 여유 없이 시작된 이야기였다. 노아가 이곳에 온 이유. 그의 과거. 로쏘네 가문에서 본 저택의 진상. 클라모르의 연구. 에고 웨폰. 그리고 그에게 접근했던 교단의 음모. 깍지낀 손만 내려다보고 있던 노아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클라모르는 말이 없었다. 축 늘어진 머리칼이 그의 눈가를 덮어 가리고 있었다. “……미리 설명하지 못한 건 미안해.” 클라모르는 말이 없었다. 차라리 그에게 실망한 거였으면 좋겠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형이 모르길 바랐어. 형이 이 연구가 모든 사람들의 도움이 되기를 바란 걸 아니까… 그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했어.” 변명이었다. 궤변이었다. 노아는 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지금 제일 괴로운 사람이 누군지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줘, 제발… 왜 지금까지 모른 척했냐고, 나한테 실망했다고 말이라도 해줘…” 클라모르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오래도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를 겨우 보았을 따름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맑게 빛나던 연녹의 눈이 거무죽죽하니 어두웠다. 노아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형……” “네 말대로면 나는,”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낯설었다. 노아는 말을 삼켰다. “아니, 이건… ‘죽은 기억’이구나. 그렇지?” “……맞아.” “지금 여기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엎지른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거야. 난…… 이미 죽었으니까.” 클라모르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떨어진 모노클이 책상을 구르다 느리게 멈췄다.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아니, 아까 설계도를 본 순간부터 직감하고 있었는데… 모르겠어… 더 웃긴 건… 그래… 우스운 게 뭔지 알아? 노아.” 클라모르가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웃고 있었다. 자기 혐오와 모멸, 후회와 비참함으로 뒤죽박죽 일그러진 형상으로. 갸름한 턱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숨이 턱 막혔다. 사랑하는 이의 슬픔이 이리도 두려울 줄이야. 차츰 고이기 시작하는 눈물에 그대로 익사할 것만 같았다. “과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포기하기 싫은 기억이 있어.” “…그게…… 뭔데……?” 클라모르가 다시 고개를 떨어트렸다. 왠지 다음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너.” 그리고 그 두려움은, 상상 이상의 충격으로 바뀌어 노아를 세차게 후려쳤다. 눈을 크게 뜬 노아가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잠긴 혀가 무거웠다. 클라모르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너와… 나랑 같은 시간을 살아주는 존재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은 죽은 게 아니잖아? 하지만 이건… 그래, 지금의 ‘내’가 사라지면 없어질 거야. 노아, 난 그게 너무 두려워. 내 가족과 이별할 때조차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이것만큼은 슬프고 괴로워서……” “…….” “내가 저지른 벌에 대한 대가인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벌인 일의 결과보다, 가족을 잃는 게 더 무서운 녀석이라서 죗값을 치르는 걸까? 이걸 부당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걸 알아. 하지만… 하지만……” 의자가 거칠게 나동그라졌다. 어느새 클라모르보다 훌쩍 커버린 품이 그를 끌어안았다. 노아도 어느샌가 울고 있었다. 못나고 이기적인 형을 위해서 울어주는 아이를 잃어버리는 건, 역시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인하다. 지독한 비극이었다. “아냐. 아니야, 형. 내가 반드시 막을 거야. 형까지 슬퍼하게 두지 않아. 형의 연구가 더 악용되지 않을 방법을 반드시 찾아낼게.” 노아의 팔이 그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눈물 젖은 목소리여도 마음만은 명백히 또렷했다. “그리고…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거야. 내가 기억할 거야. 형과 보낸 시간, 추억, 가르쳐준 것들, 함께 배워간 것들… 나랑 늘 함께할 거야. ‘현재의 형’에게도 반드시 알려줄 테니까, 제발.” 역시 못난 형이다. 노아가 또 울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위로가 필요한, 그가 해주는 모든 말들이 그저 간절해서. 클라모르는 그의 품에 숨듯이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눈물이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형을 괴롭게 만든다고…… 말하지 말아줘……” 모노클에 엉긴 눈물 자국이 느리게 말라갔다.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