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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타카)오월동주 .02
Caption 해당 소설은 「구다구다 료마 위기일발! ~사라진 놋부 헤드의 수수께끼~」이후의 상황을 가정하여 창작되었습니다. 「너와 나의 BtoB」이벤트와는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전개임을 유념 부탁드립니다. 아마노사카가미와 타카스기 커플링을 다루고 있으나, 둘이 사귀지 않으며 타카스기는 아마노사카가미를 싫어합니다. 사카모토 료마를 짝사랑하는 타카스기의 설정입니다만, 료마는 알지 못하고 오료 씨와 연애중입니다. 제목은 위기일발 공식 테마곡의 제목을 차용했습니다. 소설을 읽기 전, 혹은 읽은 후에 영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쿵, 쿵, 쿵! 기병대원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일사분란하게 이어졌다. 붉게 빛나는 렌즈가 모습을 드러낸 목표물을 찾아 조준했다. 신호와 함께 발사된 탄환이 공중에서 터지며 포획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목표물은 그들의 예상보다 재빨랐다. 가장 앞에 서 있던 기병대원이 신속히 작전 변경 신호를 내렸다. 연막탄을 장전하는 소음 속에서 딱딱한 기계음이 전파를 타고 퍼져나갔다. -목표물 발견. 목표물 발견. 기병대원들은 지금 즉시- “말하게 둘 것 같냐!!” 딱딱한 갑옷들 사이로 무언가가 눈덩이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그것이 뭔지 깨달을 새도 없이, 마저 하늘에 나부끼는 정체 모를 뭔가에 조준이 고정된 순간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우겨넣은 탄약이 굉음을 내며 그들의 발치에서 폭발했다. 종잇조각처럼 찢어진 철갑들이 폭탄이 담겨 있던 종이 봉투처럼 화려하게 흩날렸다. 급습에 움직임을 멈췄던 대원들이 다시 총을 장전했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기세 좋게 쏴갈겨진 탄환들이, 순식간에 기병대원들의 철갑에 수십 개의 구멍을 냈다. “하하하, 어떠냐! 평범한 샤미센이 아니라고!” 철갑을 두른 것이 소환체가 아닌 진짜 인간이었다면, 연발 발사가 가능한 샤미센이 평범할 리 있겠냐고 반박했을 것이다. 연기가 채 식지 않은 총구에서 갑자기 검날이 튀어나오는 일도 없을 거라고. 높게 뛰어오른 인영이 샤미센을 힘주어 내리쳤다. 콰앙!! 으스러뜨리는 게 목적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기병대원들이 찌그러진 캔처럼 볼썽사납게 주저앉았다. 만신창이가 된 기체들 사이로 신음 같은 연기만이 소리없이 피어오르다가 스러졌다. “하! 기병대원도 별거 아니구만. 이 몸의 보구로 제대로 강화했다면 달랐겠지만, 이런 모조품으로는 백 날 가도 난 못 이긴다구.” 타카스기가 샤미센을 어깨에 걸치며 의기양양하게 웃음 지었다. 키의 두 배는 될 법했던 검날은 능숙하게 집어넣은 뒤였다. 그 모조품 때문에 줄행랑을 쳤던 며칠 전의 과거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괜히 망가진 기체를 발로 툭툭 차던 타카스기가 진지하게 턱을 괴었다. “아, 역시 사람이 상대가 아니라 아쉽네. 이런 고철들은 아무리 베어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안 드니까…… 역시 난 평화로운 시대보다는 난국에 태어나 전쟁만 잔뜩 벌일 상인 거지.” 그러다 제 명에 못 살고 죽겠지만. 병으로 죽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미친 사람처럼 실실대던 타카스기가 골목 멀리서 울려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이쿠야. 너무 요란하게 했나?” 타카스기는 빠르게 남은 폭탄을 세어보았다. 방금 전의 수라면 어떻게든 처리한다 해도, 추가 병력이 훨씬 많을 경우도 무시할 수 없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은 무의미하다. 깔끔하게 결론을 내린 타카스기가 날렵하게 도약하여 난장판이 된 장소를 벗어났다. 전보다 훨씬 가볍고 튼튼해진 발이 지면을 딛고 단숨에 지붕 위까지 날아올랐다. “이제야 좀 할 맛 나네! 처음부터 이렇게 소환됐으면 좀 좋아…… 응?” 옥상과 지붕을 번갈아 뛰어다니던 타카스기가 급하게 걸음을 멈추었다. 소형 추격기가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소리를 내거나 공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위치 추적용인 듯했다. 귀찮게 구네. 혀를 차며 방향을 틀려던 타카스기가, 돌연 생각을 바꾸어 돌아섰다. 샤미센 대신 검을 뽑아들며 그가 품에서 꺼내든 물약이 푸르게 번쩍였다. “자… 실전 테스트다!” 타이밍은 단 한 번뿐. 왼눈을 번뜩이며 타카스기가 검을 다잡았다. 추격기가 범위로 들어오기까지 셋, 둘, 하나! 허공에 먼저 던져진 약병이 빙글빙글 돌며 추격기의 위에 정확히 자리한 찰나. 지붕을 박차고 뛰어오른 타카스기의 검이 수려한 반원을 그렸다. 챙강!! 마력이 응축되어 담긴 약병의 위력은 엄청났다. 추격기가 산산조각난 순간,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벼락처럼 땅에 내리꽂히며 강한 진동을 퍼트렸다. 일대의 모든 전등이 깨지고 전깃줄이 터져나가며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던 벽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폭탄이나 기관총 샤미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성능이었다. “크헉!!” 그 당사자도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반동으로 튕겨져나가, 바닥을 한참 데굴데굴 구르고서도 전봇대에 부딪힌 뒤에야 타카스기는 멈추었다. 온몸의 뼈가 부서진 것처럼 전신이 비명을 질렀으나 죽지 않은 걸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입으로 피를 한 사발 쏟아내며 타카스기는 비틀비틀 일어났다. “이렇게, 각혈해보기는 또 오랜만이네… 크헉! 내 허리…….” 벽을 짚은 타카스기가 주저앉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 전의 파장으로 기병대원들도 바로 추적하지 못할 거라는 게 유일한 다행이었다. 이것만 어떻게 잘 쓴다면 다른 녀석들도 간단하게 쓰러트릴 수 있을 텐데.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타카스기가 미간을 구겼다. 물약 자체의 성능은 완벽했다. 반동이 커서 그렇지, 몸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하는 육체인 거겠지. “……뭐, 됐어. 어차피 한 번 실험하고 포기할 것도 아니었잖아. 방법은 찾으면 그만이야.” 타카스기가 입안에 고여 있던 피를 툭 뱉어냈다. 혼자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고, 실험하고, 실패해서 바닥까지 떨어져도 어떻게든 기어올라 삶의 재미를 찾아낸다. 죽고 나서도 고치지 못하는 천성이었다. ‘그런 점이 대단하당께, 타카스기 씨는. 아무나 흉내낼 것이 아닌지라. 그야말로 기린아여.’ “…….” 벽을 밀 듯이 짚어가던 손이 우뚝 멈췄다. 왜 지금 그 얼굴이, 그 목소리가 떠오른 것인지. ‘……이런 상황에 떠올릴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고.’ 사카모토 료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그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같은. 그와 함께였다면, 사카모토 료마가, 그 남자가 자신과 뜻을 함께했었더라면 같은. 그런 상상을 거듭할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친구 사이도 아니었다. 뭐, 생각해볼 수야 있겠지. 사카모토 료마가 괜찮아, 어떻게든 잘 될 거야, 하고 속 편한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기묘한 계책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상상 같은 거. 짜증나고, 믿을 수 없다고 경계하면서도 결국 해내는 걸 보면서 감탄하게 만들던 면상을.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구. 마지막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일심동체가 되어서 떠나버렸지만 말이지. “바―보.” 타카스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죽은 피를 한 차례 게워낸 타카스기가 아까보다 느려진 걸음을 조용히 옮겼다. 조금씩 전기가 들어오며 밝아지는 거리에 더 이상 그는 없었다. 타카스기가 머무는 거처는 이전에 숨어들었던 타카스기 중공 안쪽에 위치한 공방이었다. 다만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날 이후로 타카스기 신사쿠와 공방을 이루는 마술 회로가 완벽하게 연결되었다는 것 정도일까. 타카스기는 공방을 조작하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꾸미고 봉인했다. 간이 마력로도 만들어, 미약하게나마 육체에 마력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샤미센의 개조나 폭탄 제조, 여러 시험용 물약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거라면 단 하나,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 끼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또 무모한 짓을 하다가 온 모양이지.” “신경 끄셔. 언제부터 친했다고?” 타카스기가 절뚝절뚝 걸어 들어오며 툭 내뱉었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어두운 형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적어도 5년 간 손을 잡고 이 도시 사람들 전체를 속여넘겼던 동맹 관계지. 아닌가?” “와, 그런 거 직접 말하면 비위 안 상해?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입 다물고 있겠다. 그 뒤에 서로 뒤통수 때리고 썰어대기도 했었으니까 친한 척은 그만두자?” 짜증을 숨기지 않고 단숨에 쏟아낸 타카스기가 휙 고개를 돌렸다. 잔뜩 일그러뜨린 눈가엔 혐오의 기색이 가득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그 모습 어떻게 안 되는 거야? 볼 때마다 짜증이 열 배는 치밀어오르거든?” 한 번 육체가 파괴되었음에도, 아마노사카가미는 해군 제복을 입은 사카모토 료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 군데군데가 깨진 유리처럼 이질적으로 금이 가 있는 것을 빼고는, 그가 알던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외형이었다. “그거 완전히 파괴됐잖아. 왜 아직도 그게 유지되는 거야? 설마 그 녀석 행세를 하는 거에 재미라도 들렸다든가?” “흐음… 행세라.” 아마노사카가미가 턱을 쓸었다. 샛노란 눈이 느리게 한 바퀴 굴러, 제자리로 돌아 타카스기에게 향했다. “그래. 네 말대로 이 특이점의 사카모토 료마의 육체는 확실히 소멸했지. 완벽하게, 사카모토 료마에 의해서.” “…….” “그럼에도 내가 이 형태로 잔존해 있는 건 내 의지가 아니야. 타카스기 신사쿠. 네가 원인이다.” “하? 무슨 웃기는 소리야.” 타카스기가 눈을 찌푸렸다. “육체가 망가진 후에 너는 아라하바키에 흡수됐었고, 빠져나온 뒤엔 나에게 빌붙었다가 결국엔 타케치 군이 할복하면서 소멸했지. 순서를 따지면 타케치 군의 모습을 가져오는 게 맞잖아. 그쪽도 딱히 보기 좋진 않지만, 사카모토 군보다는 훨씬 낫다구. 뭐 하나하나 따지자면 몸뚱이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괴이한 구슬 대가리로 등장하는 게 맞겠지만.” “생전에 그렇게 주절주절 설명해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다른 녀석들에게는 잘도 입을 털었으면서.” “말꼬리 잡지 말고 물어본 거나 대답해.” 아마노사카가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카모토 료마에게 빙의해 있는 시간이 꽤 길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지. 가장 익숙한 육체가 유지하기도 쉽거든.” “그건 정말로 나와 상관없잖아. 왜 내가 원인이라는―” “그 이전까지는 넌 나의 본모습을 본 적도, 내가 어떤 식으로 빙의하는지도 알지 못했지. 타케치에게 빙의한 나를 네가 상상할 수 있을까? 아라하바키조차도 온전히 신체가 되기 전에 망가진 시점에서, 네가 인식할 수 있는 ‘나’는 어떻게 생겼지?” “…….” 그가 말을 거듭할수록 타카스기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아마노사카가미는 익숙함을 느끼는 주체가 본인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자기혐오와 역겨움으로 뒤죽박죽이 된 얼굴을 음미하듯 시선으로 훑던 그가 느리게 웃음 지었다. “이제 알겠나? 이 특이점은 네가 만들어내고 구축한 세계. 당연히 그 안에서 나는 네게 가장 익숙한, 그리고 가장 원하는 형태로밖에 존재할 수 없단 뜻이다.” “…….” “이 얼굴을 좋아했으면서, 이제 와서 굳이 이유를 캐묻다니 한심하군. 아니면 직접 설명해주길 바랐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아마노사카가미의 얼굴이 돌아갔다. 당연하게도 그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창백한 뺨에 좀 더 금이 갔을 뿐이었다. 타카스기가 차갑게 노려보다가 곧 손을 내렸다. “…진짜 짜증나네. 왜 안 없어지지? 아라하바키도 박살났고 이젠 빙의할 힘조차 없는 거잖아. 그럼 빨리 사라져버리라고. 악신 따위랑 한가하게 말장난할 여유 없어.” “흐음. 오히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하는 성미 아니었나?” 붉은 눈썹이 삐딱하게 꿈틀거렸다. 아마노사카가미는 불쾌할 정도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의 얼굴로. 그러나 이젠 그의 성격이라곤 일말의 틈도 남아 있지 않은 교활하고 나른한 인상으로. 한참 뒤에야 한숨을 내뱉은 타카스기가 근처에 있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뭘 알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면 그 면상이 벗겨질 때까지 벅벅 문지를 줄 알아.” “그거 참 무서운 이야기군.” 빈정거리듯 말한 사내가 맞은편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너도 알겠지만 이 특이점은 현상 유지를 위해서 타카스기 신사쿠, 너를 핵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네가 아라하바키의 핵으로 날 이용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계획이지.” “네에, 네에.” “하지만 이상하지 않나? 이 특이점을 구축한 여섯 개의 마력로도 몇 번이나 부숴지거나 마력을 강탈당했다.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이 놀라울 정도지. 그렇다면 널 소환할 마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왜 소환에 성공하자마자 너를 바로 붙잡지 못했을까?” 타카스기는 곧장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자신도 어느 정도 의문을 품은 부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스템은 시스템일 뿐. 무수한 에러 끝에 답을 도출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창의적인 발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 타카스기 신사쿠가 필요하다’라는 결론에, ‘타카스기 신사쿠를 서번트로서 소환한다’는 대안을 도출하려면 그와 관련된 정보값을 더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정보값의 출처는? “타카스기. 너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래, 그때 나를 성배와 노부나가의 목과 합쳐 아라하바키와 완벽하게 통합시켰지. 그들의 방해가 없었다면 빠져나오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상태에서, 단 한 기의 서번트에게만 접촉했다. 빙의가 아니더라도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을 정도로.” “…….” “타케치는 예외인 것 정도는 바로 알겠지? 내가 신체에서 튕겨나온 뒤에 달라붙은 녀석이었으니까. 자, 그럼 타카스기 군.” 아마노사카가미가 눈을 둥글게 휘었다. 화를 냈어야 했을 타카스기는 기절한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소환되었을까?” 갈고리처럼 날아든 손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늘어진 머리카락 너머로 살기를 띤 붉은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낮아지다 못해 갈라진 목소리는 흡사 짐승처럼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네놈이냐?” 다른 손이 검 손잡이를 찾아 움켜쥐었다. 무어라 대답하느냐에 따라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베어버릴 기세였다. “이 도시가 날 소환하도록 수작질을 벌인 게 너야? 대답해, 아마노사카가미.” “…….” “대답하라고 했어.” 웃음기가 지워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아마노사카가미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 도시의 시스템 자체엔 간섭할 수 없어. 그래서 막을 수도 없었지. 아라하바키에 잔존한 마력, 그에게 연결된 나의 잔해. 그것들이 촉매가 되어 너를 불러들이는 걸.” 도시의 여섯 개의 마력로는 아라하바키의 동력원으로 쓰였으므로, 당연히 기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타자의 개입으로 마력 공급이 끊어졌을지라도 개체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그걸 움직일 심핵으로 쓰였던 아마노사카가미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체(神體)를 움직여 포획했던 타카스기 신사쿠도 분명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아무리 깔끔하게 잘라냈다 해도 붙여보면 조각은 맞춰지는 것을, 하물며 강제로 뜯어내었다면 그 흉터는 얼마나 또렷하고 선명할까. “……역겹네.” 지금까지 그가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 심핵으로 쓰일 용도로 소환되었으면서, ‘마지막에 소멸했었던 자리’에 덩그러니 뚝 떨어져 있어야 했었던 까닭. 이 모든 게 아라하바키 1호기와 아마노사카가미 때문이었다니. “그건 좀 너무한걸. 생명의 은인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어? 덕분에 눈을 뜨기도 전에 도시 중추부에 처박혀 부품으로 소모되는 꼴은 면했으니까.” “그럼 감사하다고 이마를 땅에 찧기라도 할까? 바꿔서 말하면 네가 제대로 소멸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라면, 이런 일은 안 생겼을 거란 뜻이잖아. 칼데아 녀석들은 여기 두 번이나 왔었으면서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아마노사카가미를 내던지듯 놓은 타카스기가 요란하게 걸어갔다. 스크린 키보드 좌측에 자리한 실험용 테이블에는, 그가 방금 전투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약병이 거치대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어쨌든, 이제 확실히 알겠군.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라하바키를 찾아서 제거한다. 그럼 나는 자연히 소멸할 거고, 특이점도 더 유지될 수 없겠지. 덤으로 네놈도 깔끔하게 처리될 거고.” “덤 취급인가.” “떠들어대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찌꺼기 신을 뭐라고 불러? 쓰레기? 폐기물?” “…여전히 신에 대한 공경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사내군.” 들으라는 듯 한숨을 쉰 아마노사카가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에게 등을 돌리고 선 타카스기였지만 그가 다가오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의 기척이다. 속이 오물 같은 덩어리로 가득차 넘실거려도 감춰지지 않는 뚜렷한 근원. 몇 번이고 그가 아니라고,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고 속으로 수십 수백 번을 되뇌어도 늘 타카스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 타카스기는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 불쾌했다. 사카모토 료마가 끊임없이 이용되는 현실을, 가루가 되도록 밟고 또 밟아서 가루 한 점도 남지 않을 만큼 으깨어버리고 싶었다. “아주 조금만 성의를 보인다면…” 뱀처럼 사근사근 귓가를 파고드는 속삭임까지도, 전부. “자멸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타카스기가 눈만 굴려 그를 보았다. 익숙한 금안이 그를 담으며 무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응? 타카스기 군.” “……그 역겨운 흉내 집어치우라고 얘기 안 했던가?” 첫 반응은 싸늘했다. 아마노사카가미조차 표정이 얼어붙었을 만큼. 그러나 다음 순간, 타카스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공격적이고 냉담했던 태도는 간데없이, 눈을 빛내며 말을 붙여오는 모양새가 그야말로 신난 놀이를 찾은 장난꾸러기 같았다. “너도 정체 숨기는 건 이제 질렸을 거 아냐? 기왕이면 호칭 정리나 태도는 제대로 하자구. 아마노사카가미 군, 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음, 좀 길긴 하네. 줄여서 아마노 군은 어때?” “……신의 이름을 줄여 부른다는 그 발상은 대체─” “사카가미 군은 뒤집힌 신(逆神) 같으니까, 딱히 좋은 어감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카미사마라 부르기엔 너무 거리감 느껴지고. 어때, 어때? 이 타카스기의 작명 센스가. 너도 계속 듣다 보면 익숙해질걸.” 어울리지 않게 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마노사카가미가 이내 낮은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내라며,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서. 타카스기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그래서, 좋은 방법이 어떤 건데?” “아아. 간단해. 아라하바키를 이용하는 거다.” 타카스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에, 그거 불가능한 거 아니었어?” “꽤 단정적이군?” “그거야, 그걸 사용할 수 있었으면 네가 이렇게 회유책을 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타카스기의 개구진 미소가 조소로 물들었다. 아마노사카가미가 말없이 그를 빤히 응시했다. “그렇잖아? 설명이 맞다면 너는 아라하바키의 일부나 다름없는 상태인데, 그렇다면 굳이 내가 소환될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그걸 움직여 마력로를 탈취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럼 네가 바라던 신체도 자유도 얻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고, 신체에 깃들기는커녕 어영부영한 허상을 빌려서 존재하고 있을 뿐. 내 말이 틀려?” “…부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군.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남자야.” 아마노사카가미가 입 꼬리를 삐뚤게 밀어올렸다. “맞아. 네가 소환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형체조차도 갖추지 못했을 잔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너와 아라하바키를 이어주는 마지막 고리이기도 하지. 결국 이 특이점도 아라하바키도 네가 만들어낸 것. 마력과 내 도움만 있다면 아라하바키를 재가동시키는 것뿐 아니라 완전히 손에 넣을 수도 있다.” “흐응. 달달해서 이가 썩어버릴 것 같은 제안이라 좀 많이 의심스러운걸. 네가 원래 이렇게 상냥한 신이었나?” 사실 타카스기도 그 방안을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얘기에 따르면 특이점의 마력로도 아라하바키와 불완전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그것을 직접적으로 제어할 능력은 없는 듯했으니. 문제는 지금의 타카스기도 아라하바키의 제어권을 가져올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것만 해결된다면 서번트의 불완전한 힘도 회복될지 모르고, 어쩌면 이 특이점을 부수거나 다시 도시의 제어권을 탈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듣기엔 타카스기는 아마노사카가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바라는 건 뭐지? 아마노 군.” “…….” “내가 아는 너는 남 좋은 일만 해줄 만큼 자비로운 신이 아니야. 원하는 게 뭐지? 대가로 무엇을 갖고 싶은 거야?” 묘한 침묵이 흘렀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잘게 금이 간 턱을 느리게 쓸었다. 딱히 답을 꾸며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 같지도, 그를 어떻게 속여먹을까 궁리하는 것 같지도 않은 표정. ‘웃기네. 저래서야 마치……’ 고백이라도 하려는 것 같잖아. “……자유로워지고 싶다.” “…하?” 고작 그걸 말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고 그런 표정을 지었다고? 타카스기의 얼빠진 반응에 아마노사카가미가 거북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례한 반응이군. 먼저 물어본 건 너였다만?” “아니, 상상 이상으로 소박하고 뭐랄까, 인간다운 거라서 진심으로 충격받은 거니까. 상처받았다면 미안하게 됐어.”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어투로 내뱉은 타카스기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닥였다. “…하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얘기도 아니네. 네가 신체를 얻고 싶어했던 이유도 그거였던가? 인간들의 몸을 갈아타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 “…….”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위에 서서 군림하기가 목표겠지만, 거기까지 눈치 못챌 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돌리진 않았을 거고… 와, 새삼 순진한 부분이 있네, 아마노 군은. 딱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미운 놈 떡 하나 던져주는 마음으로 미니 아라하바키 정도는 만들어줬을 텐데 말이야.” “그것 참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건 말했다. 네가 만든 그 고철 덩어리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타카스기, 네가 그걸 가져가줘야겠어. 서로의 이해는 이걸로 일치한다고 보는데, 더 할 말 있나?” 타카스기가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았다. 아마노사카가미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 거래인가. 숨겨진 저의는 무엇인가. 겉으로 오간 대화만이 전부가 아님을, 공교롭게도 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간 보이지 않는 동맹을 유지하며 사람들을 속여왔던 사이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말로 꼬드기거나 몰아세우는 것 정도로는 본심을 드러낼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결국 둘 뿐. 여기서 관계를 끝내거나, 혹은 모르는 척 손을 잡거나. “―좋아.” 그리고 타카스기는 후자를 택했다. “거래 성립이야, 아마노 군. 다시 한 번 잘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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