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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기염/가서기염)고집쟁이들
Caption 기염의 나이는 17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명자가 되기 전으로, 뺨에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던 무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서림은 30대 초반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의 나이차이에 주의해주세요. 둘이 사귄지 얼마 안 된 시점입니다. 그 외 이것저것 설정 날조가 있습니다. “변명이나 들어보지.” 가서림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매서웠다. 기염은 이 고집 세고 난폭한 장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가서림은 명령 불복종과 비효율적인 변명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그의 명령을 어기고 따라간 데다가, 그 이유가 스스로도 도무지 효율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에 기염은 도저히 그를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염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가서림이 거즈를 휴지처럼 간단하게 찢어버렸다. 두 갈래 세 갈래로 무기력하게 찢어지는 천조각에서는 비명 같은 소음이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 “군의관. 이번에도 불복종인가?” “……아닙니다.” “그럼 대답해.” 기염은 여전히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삼십 분 전, 그는 가서림의 배치 명령을 어기고 홀로 전장으로 향한 장군을 정신없이 따라갔었다.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잔상 무리가 그가 홀로 향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걸 본 탓이었다. 가서림의 전투 방식은 아군마저도 휘말리게 할 만큼 거칠고도 강력했다. 그걸 알면서도 기염은 결국 대기 명령을 어기고 따라가고 말았다. 게다가 가서림의 검격에 뛰어들어 부상까지 입고 말았으니, 군칙대로라면 항명죄로 처형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 “기염.” 그의 손에서 갈가리 찢긴 거즈가 떨어져내렸다. 기염의 어깨가 느리게 움찔거렸다. “나를 얼마나 더 실망시킬 작정이지?” “…….” 기염은 다친 팔을 꽉 움켜쥐었다. 언뜻 살기마저 느껴지는 그의 냉랭한 어조가 드러난 목덜미를 마구 내려치는 것 같았다. 스물도 안 된 어린 소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압력이었다. 기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 갑자기 그의 턱을 붙든 손이 기염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기염이 도로 눈을 떴을 땐 어느새 가서림에게 입술을 먹힌 뒤였다. 하마터면 그의 혀를 깨물 뻔했던 기염이 고개를 틀었지만 가서림은 놓아주지 않았다. “읍…” 가서림의 키스는 그의 검만큼이나 거칠고 위압적이었다. 사냥감을 노리듯 집요하고, 한 순간의 도망도 허용하지 않는다. 혀를 뽑을 듯이 휘감고 빨아대는 통에 기염은 생리적인 눈물로 시야가 뿌얘지는 걸 느꼈다. 코로 숨을 쉬어야 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입술의 살갗이 벗겨져 쓰라릴 만큼 범해지면 그럴 생각도 안 나는 법이었다. 어느새 가서림을 꽉 붙든 기염의 손이 덜덜 떨렸다. 깊은 키스 중에도 그를 거칠게 당긴 가서림이 그를 무릎 위에 앉혔다. 단단한 허벅지와 팔뚝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기염의 숨도 더 거칠어졌다. “읍… 흐읏…” 산소 부족으로 의식도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찢긴 팔이 가서림에게 눌려 아파왔지만 그 고통조차도 점차 희미해졌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술 사이로 추잡하게 흘러내렸다. 기염의 손가락이 더 이상 그를 붙들지 못하게 될 때까지도, 가서림은 기염의 숨을 빼앗듯 기염의 입술을 물고 있었다. “—하, 하아……” 겨우 입술이 떨어지자 기염이 헐떡거리며 가서림에게 기대왔다. 가서림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받아내듯 두 팔로 꽉 끌어안을 따름이었다. 어깨에 기대어 간신히 호흡을 고르던 기염이 축축해진 눈을 깜빡였다. “장, 군…” “혀라도 다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군.” 그제야 가서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지만 기염의 상상처럼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래서. 이대로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건가?” “…….” “기염.” 가서림이 다시금 낮은 어조로 질책해왔다. 기염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걱정 돼서…” “……그게 끝인가?” “…예. 그냥, 장군이 너무 걱정되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멀쩡히 인사하며 나간 동료가 밤에 시체로 돌아오는 전장이다. 위험할 걸 알면서 어떻게 가만 있겠는가. 가서림의 강함은 기염이 잘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는 가서림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염은. 군인이기 이전에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어린 아이여서. 이제 겨우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 앳된 소년이라서. “…하아.” 한숨을 푹 내쉰 가서림이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팔로는 기염을 꽉 안고 있는 채였다. 조금 시무룩하게 품에 안겨 있던 기염은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아까는 내가 구조 신호를 보내서 따라온 거다. 내가 너를 지목해서 부른 바람에 너는 다른 녀석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급하게 올 수밖에 없었던 거야. 알겠나?” “……” “대답.” “예.” 기염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림이 그의 항명죄를 덮어준 것이었다. 그의 군복을 벗겨내던 가서림이 부루퉁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엔 두 번 다시는 지금 같은 행동을 하지 말도록. 그땐 지금처럼 간단하게 넘어가지 않을 거다.” “…예. 장군.” “잔상의 공격을 몸으로 막으려 하지도 말고. 이 참에 검이든 총이든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이렇게 무모해서야, 몸을 지킬 무기 하나 정도는 쥐어줘야 나도 안심이 되겠어.” “그건 곤란합니다. 전 군의… 읏…!!” 기염이 눈을 찡그렸다. 피가 흐르는 상처에 무자비하게 소독약을 부은 가서림이 눈을 시퍼렇게 떴다. “이렇게 다쳐놓고 그런 말이 나와? 또 항명하겠단 건가?” “그런 게, 아니… 흡……!!” “너를 전선에서 빼서 시골 정찰대로 보내버리기 전에 순순히 입 다물어.” 연고를 마구 짜서 덕지덕지 바른 가서림이 엉망이 된 거즈를 꽉 눌러덮었다. 섬세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동작에 기염은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다시금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눈을 흘긋 본 가서림이 특유의 사나운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다칠 땐 울지도 않더니 이럴 땐 잘도 우는군?” “장군, 때문이잖습니까…….” “그래. 입 다물라고 해도 꼭 한 마디씩 더하지. 이제 너 같군.” 기염보다 더 울퉁불퉁하고 굵은 손가락이 거즈를 덧댄 부위를 붕대로 감았다. 아직도 욱씬거리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기염이 가서림을 바라보았다. 점차 냉소가 가시는 그의 샛노란 눈동자엔 기염만이 읽어낼 수 있는 다정한 걱정이 어려 있었다. 난폭하고, 무자비하고, 전장에서는 동료들조차 겁먹게 하지만 자신의 연인에게는 다정한 사람. 기염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오랜 흉터가 남은 입술에 손 끝이 닿자 가서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뭐지?” “…장군도 약속해주십시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기염도 몰랐다. 가서림과 얘기할 때는 늘 그랬으니까. “위험한 일이 있거든 반드시 절 부르시겠다고. 절대로… 혼자 싸우시지 않겠다고요.” “네가 또 휘말려서 이 꼴이 되는 걸 보라고?” “장군께서 약속하시면, 저도 제대로 전투술을 배우겠습니다.” 어린 군의관의 목소리는 유독 필사적이었다.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삐딱하게 올렸던 가서림이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약속하신 겁니다.” “고집부리긴.” “……장군도 종종 그러시면서… 아,” 퉁명스럽게 말하는 기염의 입술이 재차 가서림에게 잡아먹혔다. 벌어진 입술을 이를 세워 깨문 가서림이 그를 번쩍 안아들었다. 놀란 기염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가서림이 놓아줄 리 만무했다. 침대에 풀썩 내던져진 기염이 당황하여 일어서려 했지만, 그 잠깐 사이에 가서림은 의무실의 문고리까지 걸어잠그는 중이었다. “잠깐, 장군! 설마 여기서…!?” “그럼 간단히 넘어가줄 줄 알았나? 아직 화 안 풀렸어. 죄송하다고 빌 때까지 안 놓아줄 거다.” “그, 그런 파렴치한…!” 이마까지 새빨개진 기염이 버둥거렸지만 가서림에게는 위협도 무엇도 되지 못했다. 손쉽게 그를 제압한 가서림이 삐딱하게 미소 지었다. 기염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전장 외에도 가서림이 폭군이 될 때가 있다면, 그것은 마음 먹고 기염을 안기로 했을 때의 침대 위뿐이다. 곧 기염이 경험하게 될 그의 모습이기도 했다. “각오 단단히 하도록. 기염 군의관.” “………명심… 하겠습니다…” 다음날, 기염의 항명 소식 대신 의무실의 침대가 두동강이 났다는 비보가 여기저기 퍼졌다. 둘만의 비밀로 숨겨진, 제법 완벽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