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마지막에, '정성공'을 죽이지 않는 선택지를 골랐을 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Caption
굉장히 긴 플롯이 된 이유로 문장은 가볍게, 전개에 중점을 둡니다.
사무라이 렘넌트 스토리 기반이지만, 완전히 다른 별개의 if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또한, 사무라이 렘넌트의 전체 스토리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거나 해당 내용을 보지 않으신 분의 열람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정궁 메인입니다.
설정
1. 아처조가 탈락하지 않음, 떠돌이 버서커를 아처조가 처치
2. 어쌔신은 탈락, 도로테아와 세이버조가 힘을 합쳐 츠치미카도를 처치하고 영맥에 간섭하던 주박을 제거
2-1. 아처조는 라이더조를 상대, 우시고젠에게 일격을 먹이는 데에 성공함
2-2. 이후 우시고젠이 모아두었던 보구를 발동하려는 순간 랜서조의 난입으로 라이더조 탈락(우시고젠 사망), 유이는 도로테아에게 인계됨
3. 랜서조와 세이버조 격돌, 이오리가 치에몬을 먼저 처치하면서 잔다르크가 소멸(랜서조 탈락)
4. 캐스터인 히에다노 아레는 츠치미카도가 죽은 후 행방불명(소멸확인 불가능), 무사시는 이오리와 전투 후 만족스럽게 소멸(버서커조 탈락)
5. 최소 다섯 기의 서번트가 탈락한 가운데, 아처조와 세이버조는 영월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싸움을 결의
+1장. 또 다른 ‘정성공’이 등장, 영월을 탈취하여 도주
+2장. 또 다른 정성공이 서번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에 착수.
+3장. 또 다른 ‘정성공’이 몸에 아처의 영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다.
+4장. 캐스터와 도로테아가 접선하다. 또 다른 ‘정성공’이 서번트가 아닌, 다른 시간선을 넘어서 등장한 아처의 마스터=인간임이 밝혀지다.
+5장. 또다른 ‘정성공’에게 아처가 납치당하다.
+6장. 또다른 ‘정성공’의 과거가 밝혀지다. ‘정성공’, 아처와 정성공을 잇는 모든 인연을 무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하다.
+7장. 또다른 ‘정성공’이 정성공과 격돌하다. 아처, 세이버와 이오리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다.
“나는, 정성공의 서번트 아처로서,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내 앞에 나타난 ‘정성공’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충절의 마지막 이름은 당신께 바치는 안식》
도망칠 수 없는 꿈을 꾼다.
아처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를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킬 수 있었던 날의 꿈.
유일하게 그 시간대의 ‘정성공’과 손을 잡고, 아처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도망치며, 마침내 해냈다고 서로 안고 기뻐하는 둘을 보며 그들이 제 몫까지 행복해지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결국 또, 그들은 수세에 몰렸다. 요물에 홀려 천지를 어지럽힌다는 명목하에, 우습게도, 명이 그들을 치기 위해 손을 잡은 나라는 그가 제일 증오하던 청이었다. 두 나라의 연합군의 공격은 매서웠다.
결국, 그 시대의 ‘정성공’은 아처를 지키다가 죽었다. 마치 그의 아처가 그를 지키기 위해 미끼를 자처했던 것처럼.
미동이 없는 시신을 끌어안고 아처는 넋이 나가 있었다.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건, 이리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
‘너는, ‘정성공’, 당신은…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해온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감겨주고, 아처가 일어선다.
‘그 아픔을, 이 지독한 고통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뒤늦게 아처의 의도를 알아채고, 급하게 그에게 다가간다. 아처의 손에 마력으로 만들어낸 화살이 주어진다. 그 끝이 향하는 것이 차라리 자신이면 좋았을 터였다.
‘아처, 하지 마라. 제발…!’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너의 괴로움을, ‘나’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어.’
‘제발, 주유!!’
‘정성공’의 봉과 정성공의 봉이 강하게 맞부딪힌다. 아무리 마력을 잃어가고 있어도 상대는 수십의 시간선을 뛰어넘으며 싸움을 반복해온, 일찍이 대만을 정복하고 무인으로서의 경험을 다졌던 자. 아처의 기술로 만들어진 화살이 정성공을 향한다. 가까스로 몸을 틀어 급소를 피했지만 어깨에 화살이 박히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일찍이 당했던 상처에서 피가 흘러 붕대를 적시고 옷을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성공은 다시 일어섰다. 봉을 지지대 삼아, 다시 일어서서 ‘정성공’과 대치한다.
“왜, 부질없는 짓을 반복하는 거냐.”
질문하는 ‘정성공’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렸다.
“이미 실력의 차이가 확연한 싸움이다. 몇 번을 덤벼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아아... 확실하게 느끼고 말고. 그동안 아처에게 꽤나 어리광부리고 있었구나 싶어서 웃음까지 나올 지경이다.”
“...알면서도 싸우겠다는 거냐? 이 얼마나 고집 세고 어리석은 사내인가.”
‘정성공’의 몸에서 새카만 불꽃이 치솟았다. 도로테아가 급히 캐스터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마법진은 정상 작동하고 있잖아!”
캐스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이미 그의 몸에는 영월로 비축해두었던 마력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저 정도의 힘을...!”
“...생명.”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도로테아의 곁에서 쇼세츠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스스로를 불사르고 있는 사내를 보는 눈동자엔 동정의 빛이 가득했다.
“어차피, 죽지 못하니까...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는 고통을 반복해도, ‘죽을 수 없으니까’. 스스로의 생명력을 태우며 힘을 끌어내고 있는 거다.”
“그건 이미 ‘자해’나 ‘자살’의 영역조차 아니야!! 저런... 저런 걸 어떻게 그냥 두고 보란 말이야!”
어쌔신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났을 때보다도 패닉에 빠져, 도로테아는 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붙들었다. 생을 불태우는 불꽃이 정성공의 불꽃마저 집어삼키고, 그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이를 악문 정성공 역시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래, 난 고집불퉁에 어리석기까지 한 사내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
“어떤 세계를 지났든, 더는 ‘정성공’조차 아니게 되었든!! 네가 ‘정성공’이라면, 비틀어진 너를 잡는 건 나의 역할이다. 이기기를 바라는 싸움이 아니야. 반드시, 막아야 하는 싸움이다!! 그의 주군으로서, 연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정성공’이 이를 갈았다.
“그렇게 소중한 연인을 지키지 못했다. 섬기던 나라에도 배신 당했다!! 그게 너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사내여!!”
불꽃이 포효한다. 전신을 불태우는 불꽃이, ‘정성공’의 머리에 한 비녀마저 녹이고 있었다. 마치 눈물처럼, 동그랗게 녹아 맺힌 금이 눈물처럼 검게 타들어가는 머리카락에 떨어진다.
“죽어라, ‘정명엄’!!!”
거리를 삽시간에 벌린 ‘정성공’이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버티는 것이 고작인 정성공으로서는 피할 수 없다.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가 분노가 담긴 화살을 쏘았다. 심장을 관통할 기세로 날아가는 화살이 빠르고 매서웠다.
그러나 화살의 앞을,
정성공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찰나의 시간. 두 명의 정성공이 얼어붙은 시간의 간극에서,
“안 돼!!!!!!!!!!!!!!”
화살이 아처를 관통했다.
벗어나지 못한 꿈에 갇혀 있었다.
아처의 손짓에 ‘정성공’ 사이에 불길이 솟아오른다. 자신의 정성공을 곁에 두고서, 아처는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두손을 모아 정중히 절을 올린다.
‘나의 주인. 위대한 연평왕이시여. 오래도록 방황하면서도 저를 찾아주심에 감읍하며 인사올립니다.’
왜......
‘감히 당신의 발목을 붙든, 불초한 신하를 용서하소서. 당신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충절을 바칩니다.’
환하게, 눈물을 흘리며 웃음 짓는 그의 웃음은 어쩐지 ‘정성공’이 놓쳤던 ‘아처’와 닮아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비녀를 꽂고, 마치 꽃처럼 떨어지며 아름답게 멀어져가던......
‘당신이 잃어버린 길에 이정표를, 빛을 잃은 그 눈에 광명을.’
‘안 돼!!!!!!!!!’
‘부디, 감히 바라건대─’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스스로 화살로 꿰뚫은 목에서, 채 흘러나오지 못했던 말은.
“......쿨럭,”
피를 뱉어낸 ‘정성공’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틈에 날린 것이었을까. 아처가 날린 화살이 명치에 꽂혀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바로 죽었어야 했을 공격이었지만, 정성공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 데에 그쳤을 뿐이었다.
피로 얼룩져가는 시야로 ‘정성공’이 앞을 보았다. 불화살을 몸으로 받아내고서도 아처는 쓰러지지 않는다. 정성공이 그를 안아 받쳐주고 있었으니까. 그에게서 흘러들어가는 마법이 불길을 잠재워주고 있었다.
‘나’는 왜, 그에게 그래주지 못했을까.
저렇게 ‘그’를 살릴 수 있었다면.
곁에 있었더라면...
줄곧 품고 있었던 후회와 미련이 넘쳐흐른다. 애타게 앞으로 손을 뻗는 ‘정성공’의 뒤로 세이버가 달려들며 검을 뽑았다. 물의 검집을 두르지 않은 평범한, 그러나 날카롭고 곧게 뻗은 검이 그의 심장을 향했다. ‘정성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세이버는 아처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네가 날 꺼내주기 위해 사용한 검. 그것은 필히, 중요한 의식에 쓰이는 사악을 정화하는 검이다. 그렇지?’
‘...맞아. 신에게 뜻을 고하고 안녕을 비는 주술의 검이다.’
‘그거라면, 분명 ‘정성공’에게도 통할 것이다. 부디 그것으로 끝을 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괜찮겠나? 네 손으로 그를 끝내지 못해도.’
‘......내가 한다면, 분명 그를 단숨에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정화의 힘을 품은 검이 그의 심장에 박힌 영핵을 관통한다. 집념을 잃은 혼에서 마력과 생명력이 밑 빠진 독의 물처럼 흘러나가기 시작한다. ‘정성공’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진흙과 피로 더럽혀져 있던 손은 이제 가루가 되어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원해도 얻을 수 없었던 죽음이, 이제야.
익숙한 발이 다가와 그의 앞에 멈추어섰다.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이미 화살을 맞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아처가 있었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아처가 가만히 손을 뻗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이 그의 비녀에 닿았다. ‘아처’가 그에게 주었던 마지막 선물에.
“이것이 그동안 줄곧, 너를 지켜주었을까.”
“......!”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 그런 마음으로, 네게 주었을 테니까. ‘나’라면.”
품에 안겨 사라져가던 ‘아처’의 목소리가 문득 겹쳐 들린다. 이미 오래 전에 잊은 줄 알았던 그리운 목소리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부디... 명엄, 네가 살아갈 남은 길이, 외롭지 않기를...’
‘정성공’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진작에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져가는 육신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아아... 아처... 아처... 미안하다... 미안해......!!”
“......”
“너를 너무나, 너무나 보고 싶었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아윽, 윽...!! 어떤, 세계에서도 너를 구할 수가 없었어!! 몇 번이고 괴롭게 만들었다. 울게 만들었다...!!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네겐 닿지 않았어. 그 무엇도......!! 아아, 아아아..........!!”
어린애처럼 오열하며 울부짖는 ‘정성공’의 목소리가 피를 토하듯 갈라졌다.
“너를 사랑하니까, 너무나 소중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윽... 욱... 용서해다오, 아처... 흑, 흐윽,,,!! 너를,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이렇게 사랑하는데...!! 지금도 이렇게나, 단 한 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그저 너를... 아아... 용서해줘, 아처... 주유...!! 용서해줘.........”
“......명엄.”
가만히 이름을 부르며, 아처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떤 세계에서도 나는 너를 죽이지 못했다고 했지. 지금도 그렇다. 너라면 분명... 몇 번을 방황해도, 다시 내가 아는 ‘정성공’으로 돌아와줄 거라고 믿었을 테니까.“
그러니,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어. 덧붙이며 아처는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알고 있던 ‘나’도, 분명 말했을 테지.”
“......!”
‘정성공’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살아갈 삶이 외롭지 않기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담긴 바람을. 조금 더 일찍 떠올렸더라면.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니 이건, 길을 잃은 나의 주군을 향한 나의 마지막 불충이다.”
그가 가슴에 품은 아처의 영핵이 다시금 눈부시게 빛난다. 영월의 힘이 사라지고 ‘이 세계’에 머물지 못하게 된 그가 돌아갈 곳은 정해져 있다. 그와, 그가 사랑했던 ‘아처’가 있던 시간. 아처는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부디 바라건대, 잃어버린 길을 찾아 다시 나아가실 수 있기를.”
“......”
“명엄, 당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런 사람이어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웃는 얼굴에 ‘아처’의 얼굴이 겹쳤다가 사라진다. 분명 그것은, 마지막에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전언.
“......하, 하하......”
눈물에 젖은 얼굴로, ‘정성공’이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이지... 말을 안 듣는 신하를 두었어, 나는......”
“......”
“그래서 더, 밉고도 사랑스러운... .......아아, 나를 또... 걷게 만드는......... 나는, 역시, 너를─...”
오랜 방황은 끝났다. 마지막 불꽃에 휩싸인 ‘정성공’의 모습이 지워졌다.
“...결국 해냈다고 해야 하나. 저 둘도 참 대단하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도로테아가 캐스터를 본다. 이 시대의 영월도 ‘정성공’에게 흡수당해 있었으므로, 그가 사라진 시점에서 이 시대의 ‘영월의식’도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캐스터도 점차 형태를 잃고 빛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로선 제대로 속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만?”
“어머. 난 처음부터 네게 ‘영월의식에서 성공하게 해주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는걸? 어쨌든 지금까지 남아 있게 해줬잖아.”
태연하게 대꾸한 도로테아가 팔짱을 끼고 그를 보았다.
“뭐...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처음부터 너를 끌어들였더라면 상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흥. 입 발린 말은 안 통한다.”
“어머. 들켰네.”
콧방귀를 뀐 캐스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미련은 없는 얼굴이다.
“뭐... 이걸로 되었다.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어.”
“...정말?”
“어쨌든 내가 ‘기록한 역사’의 의의는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기록자로서의 보람은... 확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캐스터가 다시 도로테아를 보았다. 어쩐지 눈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절대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지만 말이다.”
남겨진 채 그가 서 있었던 자리를 가만히 보던 도로테아가 한숨을 내쉬며 모자의 챙을 매만졌다.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남자라니까.”
곁에 다가와서 조용히 웃던 쇼세츠. 고개를 돌려 이오리를 찾아보면, 그도 사라져가는 세이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
“......”
투명하게 사라져가는 손을 보던 아처가 고개를 돌려 정성공을 보았다.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 순간. 길어지는 침묵을 먼저 깬 건 정성공이었다.
“...너를 사랑하고 있다, 아처. 앞으로도 내 마음은 너와 함께일 거야.”
“나도 마찬가지다, 마스터.”
“...하지만 분명, ‘그’ 역시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에서 태어난 나. 인간은 나약하고, 마음은 쉽게 흔들리겠지. 그러니 지금 여기서, 네게 영혼을 걸고 맹세하겠다.”
아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꾹 감았던 정성공이 이내 그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눈부시게, 환하게.
“결코 네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고 ‘나’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신념을 잃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바람이 불었다. 긴 밤의 끝을 알리는, 새벽 바다 같은 잔잔한 온기가 둘을 감쌌다.
“아아......”
아처가 비로소 웃음지었다.
“그래. 그거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정명엄다운 모습이다.”
아침해가 떠올랐다. 새하얀 빛이 모두를 감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