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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방향에 주의해주세요. 커플링 표기상 아마타카이나 타카스기는 아마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료마도 타카스기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타카스기는 자리에 없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장의 직책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여기저기 아무때고 쏘다니는 건 그의 이해 못할 면모 중 하나였으니. 순순히 돌아가려던 사카모토는 일순의 변덕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딱히 계획에 지장을 주는, 중요하거나 심각한 사안은 없었다. 그를 반드시 봐야 하거나 직접 전해야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카모토는 무작정 걸었다. 표면상 쫓겨다니는 처지인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게 좋았겠지만. 괜히 어슬렁대다가 꼬리라도 잡히면 타케치든 타카스기든 누구에게나 싫은 소리를 듣게 될 것은 뻔했다.
그래도 사카모토는 꿋꿋하게 사이타마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경비가 삼엄한 마력로 일대부터 불빛 으슥한 골목길까지. 어느 곳 하나 타카스기의, 정확히는 타카스기 신사쿠의 성배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딘가는 미약하게, 어딘가는 짙고 촘촘하게, 얼기설기 대충 얽어놓은 듯하면서도 이음매의 처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철 하나로 무기를 만들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걸 어떻게 '무기처럼' 만들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야. 너라면 알겠지, 사카모토 군.'
기억 속의 타카스기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벼워야 할 부분은 가볍게, 무거워야 할 부분은 무겁게, 어딘가는 날카롭게, 어딘가는 무디게…… 각자의 역할을 배분해주지 않으면 그저 철 덩어리에 불과하지. 인간이나 군인도 마찬가지야. 적재적소에, 필요로 하는 장소에 필요한 적성을 갖춘 인재를 투입한다. 그러지 않으면, 날로 손잡이를 만든 검과 다를 바 없어.'
"……그런 생각이었겠지, 타카스기 군."
가로등 불빛이 얕게 깜빡이다가 촛불처럼 꺼졌다. 사카모토는 그제야 자신이 혼잣말을 했음을 알았다. 딱 맞아떨어지거나 각지거나, 완벽한 대칭이나 형테를 그리지 않아도 타카스기 신사쿠가 만든 『사이타마』는 아름다웠다. 그의 계획을 위한 일부일 뿐인, 모든 게 끝나면 눈부시게 산화해버릴 모형임을 알면서도. 가벼우나 쉽지 않은 사내는 이리도 정성스럽게 빚어놓았던 것이다. 끝끝내 마지막 술을 다 비우고도 욕심 가득한 모양새로 샤미센을 잡아쥐던 그 손으로.
사카모토는 몸을 돌렸다. 아까 떠나왔던 건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마 예상이 맞다면 그는 거기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에는 높게 쌓아올린 건물이 많다지? 하늘 가까운 곳에 있으면 바람 쐬면서 술 마시기 좋겠어.'
'하하. 이름 그대로구먼. 봄에는 올라가지 말게. 그대로 날러가버리면 어떡하누.'
'아하핫! 버린지가 언제인 이름을 부르는 거야? 그리고 뭐어, 날라가면 그거대로 재미있을 테니 상관없어! 오히려 세상 중앙까지 날려보내준다면 대환영이다!!'
ㅡ있었다.
사이타마의 가장 높은 곳. 타카스기 신사쿠가 쌓아올린 혼신의 업적. 그 난간에 기대 앉아서 타카스기는 샤미센을 켜고 있었다. 진작 비운 듯한 술병은 잔과 함께 발치에서 굴러다니고, 감긴 눈은 뜨이지 않았으나 사카모토는 구태여 저를 숨기지 않았다. 다만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샤미센의 가락에 귀를 기울이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한 차례 쓸어넘겼을 따름이었다.
그는 처음 만났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붉은 기가 도는 흑발을 짧게 치고, 딱 달라붙는 검은 바지에 마찬가지로 얇고 타이트한 티 하나를 걸친. 서양풍으로 어레인지를 한 듯한 코트는 반만 걸친 채로, 한쪽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가 이내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래도 현을 짚으며 가락을 튕기는 손은 쉴새없이 움직였다. 별도 달도 뜨지 않은 짙은 구름 덮인 밤. 한곳에 갇힌 양 빙빙 맴을 도는 바람이 구슬픈 어조를 싣고 사카모토를 휘감아왔다.
"……."
사카모토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잔잔했던 눈썹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또 '그'다. '사카모토 료마'가, '사카모토 료마'로서 저 진창 아래에서부터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이 곡, 진혼곡이었던가. 타카스기가 의도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으나 이에 반응하여 전에 없이 격렬하게 고동치는 그는 꽤 신선했다. 이번엔 사카모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이 움직였다. 형태가 무너질 듯 일렁거렸다.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해군 제복의 흰 바지가 낡은 하카마 자락으로 덧씌워지며 펄럭거린다. 그래서? 뭘 하려고? 시시각각으로 이지러지며 바뀌던 '료마'의 모습이 일찍이 창을 쥐던 시절에서야 멈춘다. 곡조가 느려졌다. 시큰둥하던 붉고 가는 눈동자가 뜨이다 이내 커다래진다. 나쁘지 않았다. 그를 찾아 헤맨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수확이었다.
금세 기세가 등등해진 사카모토가,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빼앗았다.
"여전히 멋진 연주야,"
입 꼬리가 주욱 당겨 올라갔다. 내면에서 울리다 멀어지는 비명도 그리 즐거울 수가 없었다.
"「타카스기 씨.」"
뭔가가 바람을 갈랐다. 뺨을 찢듯이 긋고 지나간 건 타카스기가 쥐고 있던 바치였다. 사납게 노려보는 시선에 살의와 한기가 소리없이 고여들었다. 사카모토는 뺨을 닦으며 태연히 말을 이었다.
"칭찬을 한 건데 그런 반응이라니 너무한걸. 게다가 날려버리다니ㅡ 안 주우러 가도 되는 거야?"
"사카모토 군한테 주워오라고 할 거니까 상관없어."
"개 취급인가. 그건 좀 별로인데."
"연주 좋았다며? 공연비 들은 셈 쳐. 애초에 초대하지도 않았던 걸 죽이지도 않고 돌려보내주는 거니 감사한 줄 알라구."
샤미센을 챙겨든 타카스기가 일어섰다. 사카모토의 옆을 지나갈 즈음엔 그의 머리칼은 다시 긴 적발로 바뀌어 유려한 곡선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손을 뻗어 붙들고 싶은 충동을 속으로 음미하며 사카모토가 반 걸음 돌아섰다.
"왜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은가 보지."
"그랬다면 흥이 깨진 시점에서 얘기했겠지. 이것도 집어던지기 전에 돌아가."
"야박하네, 타카스기 군."
"아, 그거 들으니까 내 쪽에서 용건이 생각났는데."
타카스기는 사카모토를 돌아보는 데에 시야 반쪽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빙그레 웃음 지었던 눈이 살기등등하게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다른 데선 몰라도 내 앞에서 어중간하게 '사카모토 군'인 척 하지 말아줄래? 역겨우니까."
"정말 너무하는군. 나는 사카모토 료마인데도?"
"말장난 시키지 마. 재미없어."
타카스기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열려 있던 철제문이 처음부터 그랬던 마냥 굳게 닫혔다. 한참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사카모토가, 이번엔 난간을 향헤 걸어갔다. 버려진 술병조차도 그를 귀찮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그걸 살피려 몸을 숙이던 사카모토가 뻗던 손을 우뚝 몸추었다.
잔이 두 개였다. 하나는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것이었다.
"……."
약속을 잡은 적은 없었다. 타카스기가 누군가에게라도 바람을 맞았다고 처량하게 샤미센을 켜고 있을 성격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얼굴조차 아니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던 봄바람과, 아름답고 맑은 곡조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던 사내의 모습. 마치 이 도시처럼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던 그림 같던 풍경에, 설령 누구인들 억지로 끼워넣을 수 있을까.
사카모토는 사용하지 않은 잔을 들어 입가에 대었다. 차가운 도자기의 감촉이 유독 입술에 오래 남았다.
"……이런 걸 재미없다, 고 하는거군. 너는."
기분이 미묘했다. 이건 확실히 '사카모토 료마'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는 그러고도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불청객처럼, 명화에 들러붙은 얼룩처럼. 제법 오랫동안.
던져놓은 싸구려 잔은 산산히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재미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