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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대만) 너를 읽기까지
Caption 80-90년대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만이 졸업 후 도쿄로 올라와 반년 정도가 흐른 뒤를 상정하고 썼습니다. 호열과 대만이 사귀는 사이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수위는 없고 키스하는 내용이 좀 있습니다. 미확인 음성 메시지 0건. 부재중 전화 0건. 수신 전화 0건. 혹시나 하며 눌러본 미확인 메시지함도 침묵중. 대만은 한참이나 조그만 흑백 화면을 바라보다가 폰을 덮었다. 벌써 연락이 안 온지 나흘째였다. 아무리 바빠도 사흘에 한 번 정도는 연락을 남겨줬었는데. 역시 싫다고 하더라도 휴대폰 하나는 사줄 걸 그랬나. 부담스럽다며 거절한 사정은 이해했어도 연락이 없는 것까지 다 이해해줄 정도로 정대만은 너그럽지 못했다. 그래, 고작 나흘이다. 이 사나이 정대만 이런 걸로 연하 남친 바가지 긁지 않는다! 내일이면 뭐라도 오겠지! 문자는 무리겠지만 전화라든가, 타이밍이 안 맞더라도 음성 메시지 정도는!! 그러니까 지난 메시지를 돌려 듣는다든가 사진보면서 훌쩍이는 궁상맞은 짓은 절대로 안 할 거란 말씀이야!! “……훌쩍.” 마음과 달리 정대만은 사내답지 못했다. 홀로 터덜터덜 걷고 있자니 시려운 밤바람에 콧물도 찔끔 나왔다. 사귀자마자 도쿄로 올라오는 바람에 얼굴을 못 보게 된 것도 아쉬워 죽겠는데 연락조차 힘들 건 무어란 말인가. 전화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다 낼 테니 사주기만 하라고 부모를 졸라댔던 보람이 없었다. ‘하루에 한 번으로 괜찮죠?’ ‘힘들게 뭐 그렇게까지 하냐. 이틀에 한 번으로 해. 사흘에 한 번도 좋고.’ ‘오- 나랑 전화 자주 안 해도 안 외로울 자신이 있으시다?’ ‘말이 왜 그렇게 되냐!? 너 힘들까봐 그러지!! 방에 전화도 없다며!’ 한숨이 푸욱 나왔다. 그럼 일주일에 한 번할게요? 하며 장난스레 웃던 호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올라온지 이제 겨우 석 달 지난 것 같은데. 편지도 간간히 주고받고 내려가서 얼굴도 보고 안아도 봤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도 청승맞아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소매를 길게 빼어 눈물을 슥슥 닦았다. ‘보고 싶네요.’ “나도 보고 싶다.” ‘당장 만나러 갈까.’ “……보고 싶어….” 첫 연애였다. 비록 그 상대가 자기를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팬 두 살 아래의 후배였지만. 주먹이 매운 양아치에서 후배의 친구로, 그리고 자꾸 신경 쓰이는 녀석으로, 졸업식날 두 번째 단추를 건네줄 사람으로. 양호열에게 붙는 수식어는 거짓말처럼 빠르게 바뀌어 갔다. ‘너는 정말 나를 자신 없게 만들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그게 뭐예요. 선전포고인가?’ ‘…그래. 그 비슷한 거다. 정말 알기 어려운… 녀석이지만, 그래도 난 네가 좋아. 사, 사랑한다는, 뜻의 ‘좋아’다! 그러니까, 널 아무리 모르겠어도 내 마음은 이렇다고!!’ 멋없는 고백이었다. 차일 걸 각오한 것치고는 심장은 더럽게 쿵쾅거리고 말도 더듬었다. 그래도 양호열은 제가 예상한대로의 반응이긴 했다. 멍하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시선을 피하고… 귀부터 새빨개지고……? ‘…진짜 못 읽었구나. 하나도.’ ‘뭐, 뭘?’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하려고 했는데.’ “…그때 진짜 귀여웠는데. 젠장… 역시 보고 싶네.” 사랑은 싸움도 스포츠도 아니라, 승패도 순위 가르기도 없다지만서도. 대만은 이럴 때면 역시 내가 널 더 좋아한다고, 호열에게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은 어린애 같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코트를 뛰어다닐 때와는 다른 두근거림과 열기. 뺨을 데우고 손 끝을 간지럽히는 기묘한 감각. 남들은 이럴 때면 자기 혼자만 좋아하는 것 같아 슬프다던데, 대만은 되레 몇 분 전보다 들뜬 걸음으로 어둑한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까짓거. 내가 좀 봐주지 뭐. 걔도 나 좋아한대고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연락 좀 늦는다고 쳐질 필요 있나? 별일만 없으면 되지! 사지 무탈하고 건강하게,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면서ㅡ “왜 이제 와요?” 그래, 왜 이제 오냐고 물어도 보면서… “……엉?” 대만은 우뚝 멈춰섰다. 그의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인영이 일어섰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헛 것을 보나 싶었으나, 그는 대만의 상상으로는 떠올리지도 못할 토라진 얼굴을 짓고 있었다. “근처 전화 부스는 못 찾겠지, 눌러도 대답은 없지. 가 있을 데도 없지.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 “왜 말이 없어요? 선 채로 잠들었어요?” 호열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대만은 여전히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서 그를 보고 있었다. 부루퉁하던 눈이 둥글게 풀리며 이리저리 굴렀다. 아, 이번엔 확실히 읽혔다. 부끄러워하고 있잖아, 이 녀석. “저기, 뭐라고 말 좀 하지 그래요? 괜히 왔나 싶어지잖아.” “…어떻게, 왔… 아니… 왜 왔…냐? 난 연락…… 연… 전화 계속… 기다렸는데.” 힘겹게 튀어나온 말은 바보 같았다. 고백할 때보다 더 엉망이었다. 양호열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거…급하게 돈 번다고 바이트 시간을 늘렸더니 너무 피곤해서. 바이크로 오는 건 무리잖아요. 신칸센 표 끊는 것도 알아보고, 오는 길도 찾아보고… 전화로 물어보는 게 가장 빨랐겠지만.” 눈이 마주치자 그는 멋쩍게 웃었다. 양호열이란 남자는 늘 읽기 어렵고 애매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대만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왜 제가 그에게 고백해야겠다고 결심했었는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었는지.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자각에 심장이 드리블하는 공처럼 쿵쾅거렸다. “당장 만나러 간다고 했잖아요.” 이녀석도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말해버린 뒤부터 계속 그 생각밖에 안 나서ㅡ” 말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 없어, 먼저 뻗어나간 손이 호열의 뺨을 감싸 끌어당겼다. 누구랄 것 없이 거칠고 뜨거운 입술이었다. 일순 놀란 듯 주춤거리던 입이 기꺼이 벌어지며 그를 맞으면 여전히 키스에 서툰 혀가 집요하게 들어와 안을 들쑤시듯 헤집어놓았다. 우둘투둘하고 뜨거운 손바닥이 대만의 뒷목을 감싸 끌어당겼다. 키스하면서 뒤꿈치는 죽어도 안 드는 구석은 여기까지 와서도 변하질 않아서, 대만은 조금 웃음이 나왔다. “ㅡ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봤는데, 다 헛짓거리였던 거 같다.” 입술이 닿을락말락한 거리를 두고 대만이 중얼거렸다. 호열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가요?” “역시 네가 눈앞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 얼굴에 스치던 호열의 숨이 일순 멎는다. 대만은 씩 웃곤 그 새를 놓치지 않고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밖에서 어디까지 할 작정이에요. 빨리 문이나 열어요. 툴툴대면서 등을 두들기는 손짓도 이젠 마냥 귀여웠다. 이제야 좀 읽히는 것 같았다. 양호열이란 사람의 감정이. 저만의 일방적인 애정이 아닌 그만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마음이. “오늘 자고 갈 거지?” “……안 재울 건데?” “넌 진짜 한 마디를 안 져준다? 밖에서 어디까지 할 거냐고 한 것치고는 꽤 도발적…” “됐고 문이나 열라니까요. 다음에 만날 땐 키 복사해서 줘요. 미리 들어가 있게.” “푸핫, 넌 진짜…!! 너 내가 고백 안 하거나 찼으면 어쩔 뻔했, 아, 아아, 때리지 마! 너 지금 감정 실어서 때렸지!!” 구멍에 맞물린 열쇠가 돌아갔다. 문은 손쉽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