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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츄페팬)무엇보다 뽀뽀가 하고 싶은걸
Caption 신체적 접촉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센츄페팬 온라인 교류회 참가 원고였으나 여러 사유로 개인 공개합니다. “뽀뽀가 하고 싶어요.” 팬텀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을 깜빡이며 말을 꺼낸 이를 빤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센츄리온은 우습게도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허벅지에 꼭 붙인 양손은 꼭 말아쥐고, 딱딱해진 어깨에서도 미묘한 긴장이 느껴졌다. 매번 장난스럽게 팬텀을 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팬텀이 입을 열었다가 문득 도로 다물었다. 팬텀은 어지간해서는 센츄리온의 말을 거절하지 않는 편이었다. “싫어요.” 그러니 센츄리온이, 이 칼 같은 거절에 충격을 받은 건 당연했다. “……왜요?” 도로 물어보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그냥 우기거나 마음대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어지간히도 거절당한 게 쇼크였던 듯했다. 팬텀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저기, 내가 말한 건 키스가 아니라…”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 싫어요.”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가 축 내려갔다. 표정 관리가 철저한 팬텀과 달리 센츄리온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팬텀이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다 드러날 만큼. 슬쩍 지켜보던 팬텀이 흘리듯 내뱉었다. “다음에 한 번 더 물어봐줘요.” “그 다음이 언제인데요…….” “오늘이 아닌 날이겠죠. 뭐, 내가 먼저 하자고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너무 속상해하진 말고요.” 그럴 일은 아마 없겠지만. 팬텀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을 말했다. 그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유쾌함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팬텀의 속내를 알 리가 없는 센츄리온의 안색이 단숨에 밝아졌다. “그럼 다음엔 꼭 해주기에요! 알았죠?” “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게요.” “그러지 말고요~ 내가 얼마나 팬텀을 좋아하는지 알잖아요.” 센츄리온이 투정부리듯 말하며 팬텀을 와락 안았다. 팬텀이 보일 듯 말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다 깨닫지 못했지만, 팬텀은 마치 장난치는 센츄리온처럼 미소짓고 있었다. “그럼요. 저도 좋아해요, 센츄리온.” 당장 내일이라도, 몇 시간 뒤라도 입을 맞출 것 같던 달콤한 대화 후. ……석 달이 흘렀다. “페이탈 팬텀~~!!” 절절한 분노가 느껴지는 외침이 하늘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목소리엔 손이 없었고, 들은 척도 안 하는 팬텀을 붙들어놓을 수는 없었다. 날듯이 가벼운 몸이 두터운 가지에 내려앉았다. 습관처럼 총을 빙그르르 돌린 팬텀이 아래를 훑었다. 끈질기게 그를 쫓던 이가 지금 막 도착한 참이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그를 올려다보는 센츄리온의 어깨가 조금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팬텀의 양 입 꼬리가 미묘하게 실룩거렸다. “정말 이러기에요!?” 빽 내지른 불만에 애꿎은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팬텀은 대꾸도 않고 가지를 의자 삼아 편하게 두 다리를 늘어뜨렸다. 내려다본 센츄리온의 양뺨이 열살배기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고작 뽀뽀 한 번 가지고! 제가 키스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어려운 걸 요구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애인인데!” 아마도 마지막 말이 핵심이었을 터다. 처음으로 뽀뽀 얘기를 한 날부터, 이미 센츄리온과 팬텀이 사귄지 석 달은 넘어 있었으니까. 손을 조심스레 맞잡는 것도, 포옹도,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잠드는 것도 해봤지만 정작 입맞춤은 못해봤다는 게 센츄리온의 불만거리였다. 참다 못해 뽀뽀하기 전엔 놔주지 않을 거라는, 원초적인 투정도 부려봤지만 그냥 당해줄 팬텀이 아니었다. 미꾸라지마냥 그의 품을 보란듯이 빠져나가더니, 이제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위를 선점하니 센츄리온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그날 묻지 말고 그냥 해버릴걸. 혼나더라도 저질러놓을걸. 물론 마음 뿐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혹시 이제 와서 수줍음 타는 건 아니겠죠?” “저랑 제일 안 어울리는 단어인 건 알고 있죠?” 팬텀이 턱을 괴었다. 늘 여유롭게, 능글맞게 그를 괴롭히는 건 센츄리온이었는데. 센츄리온은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질겅거렸다. 이렇게 안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그에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작, 고작 입맞춤 정도이지 않은가. 어른스럽게 기다리는 것쯤이야 어렵진 않았으나… ‘하지만…… 그럼 왜,’ “저도 더는 안 봐줄 거예요!?” 기어이 뿔이 난 손이 디스트로이어를 쥐어들었다. 팬텀은 놀라지도 않고 가볍게 뛰어오르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제가 이기면 무조건 뽀뽀 열 번, 아니 백 번! 종류별로 해주세요!” 열 살도 안 할 투정을 부리며 센츄리온이 디스트로이어를 장전한 찰나였다. 나름 비장하게 치켜든 고개가, 시선이 팬텀에게 가 닿았다. 노을빛이 파란 하늘에 장난처럼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역광도 없이 뚜렷하게 드러난 그의 얼굴이 그어놓은 양 선명했다. 또, 또 저러잖아. 센츄리온은 애꿎은 어금니만 꾹꾹 눌러물었다. 눈치 없이 쿵쿵대는 심장에 귀 끝이 뜨거웠다. 팬텀이 정말로 싫어서 거절하는 거라면, 차마 말못할 이유가 있다면 센츄리온도 순순히 납득하고 포기했을지 몰랐다. ‘그럼 당신은 왜 웃고 있는 거죠?’ 센츄리온이 그를 안 이래, 팬텀은 가장 조용하고 부드럽게 미소하고 있었다. 전투는 꽤 길었다. 우습게도, 둘은 서로가 이 단순하고도 유치한 주제에 진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꿎은 나무 여댓 그루가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풀이 무성하던 땅이 흙먼지로 뒤덮일 쯤에야 둘은 겨우 멈췄다. 지구력이나 순발력에 있어선 팬텀이 당연 압도적이었으나, 상대는 무식할 정도의 화력을 빈틈없이 쏟아붓는 센츄리온이었다. 허공을 힘없이 가르던 마탄이 아지랑이처럼 스러졌을 때 팬텀은 승부가 갈린 걸 느꼈다. 총을 겨눈 손이 느리게 떨어졌다. 가라앉는 흙먼지 너머로 끝만 거뭇한 금발이 어른거렸다. “…….” 이마의 땀을 훔친 센츄리온이 눈을 있는대로 구기며 철포를 끌고 질질 걸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고르던 팬텀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센츄리온은 어쩐지 뚱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에 팬텀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센츄리온ㅡ” 부름이 끝나기도 전에, 센츄리온이 팬텀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기력하게 뒤로 넘어간 몸이 반사적으로 상대를 마주안았다. 엉망이 된 잡초들이 파동에 날려 허공에서 꽃잎처럼 나부꼈다. 팬텀이 실소하며 눈을 감았다. “……마지막 일격이 과격하네요.” “뭐 어때요. 이기면 그만이지.” “그것도 그러네요. 인정하겠습니다.” 손이 느리게 센츄리온의 등을 쓸었다. 잠시 지친 숨이 오가며 침묵을 다독였다. 닿은 고동이 조금 빠르고 몸이 더웠으나 이대로도 좋았다. 팬텀이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나른해진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올라탄 자세 탓에 음영이 진 얼굴에 입술이 귀엽게 삐죽 나와 있었다. 팬텀은 또 피식 웃고 말았다. “뽀뽀 안 해요? 이겼잖아요.” “……그 전에 말해주세요.” 생뚱맞은 요구였다. 팬텀이 눈을 깜빡거렸다. “뭘 말이죠?” “내가 뽀뽀해달라고 할 때마다 웃고 있었잖아요.” 센츄리온이 투덜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어요. 나랑 뽀뽀하는 게 싫었으면 그렇게 웃을 리가 없을 텐데. 뭔가 의미심장해보이고, 놀리는 거 같고… 대체 왜 웃은 거예요?” 팬텀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말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자기가 웃는 것도 몰랐던 건지. 어느 쪽이든 센츄리온에게는 납득될 만한 결론은 아니었지만…… “…풋.” “……? 왜 웃어요!” “미안해요.” “거짓말! 하나도 안 미안하죠!” 내가 팬텀을 모를 줄 알아요? 잔뜩 약이 오른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던 찰나였다. 벌어진 입에 부드러운 감촉이 꾹 닿았다 떨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센츄리온은 목을 휘감는 힘에 아래로 당겨졌다. 코앞까지 가까워진 팬텀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요 근래 자주 보았던, 달큰한 향이 날 듯한 부드럽고 말랑한 미소. 센츄리온은 숨을 삼켰다. “진짜에요. 많이 화났다면 미안해요.” “…….” “처음엔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저도 당신을 많이 좋아하니까, 뽀뽀든 뭐든 닿는 것도 좋았고요. 그런데…” 조근조근 이어지던 말이 흐려졌다. 센츄리온이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눈빛으로 보챘다. 팬텀이 다시금 실소했다. “당신이 귀여워서였어요.” “……네?” “해달라고 조르는 게 귀여웠어요. 이게 뭐라고, 거절할수록 필사적으로 매달리잖아요.” 센츄리온의 표정이 점점 멍청해져갔다. 그에 반해 팬텀은 지금 순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 같았다. “평소의 당신은 늘 여유로우니까. 내가 이렇게 애태우기가 쉽지 않잖아요?” “…….” “한 번쯤은 해줄까도 싶었는데, 당신은 먹잇감을 잡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타입이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안달난 표정을 못 보게 되니까, 아쉬워서ㅡ” 이번엔 팬텀의 말이 끊겼다. 팬텀과 달리 센츄리온은 제법 오래도록 입을 맞대고 있었다. 혀가 엉키는, 숨이 섞이는 것도 아닌 그저 닿아 있을 뿐인. 그럼에도 온기와 애정이 전해지는 입맞춤. 센츄리온을 안은 팬텀의 팔이 부드럽게 느슨해졌다. 호흡조차 느리고 긴 시간이었다. 한참 뒤에야 입술을 떼며 센츄리온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애태우지 않아도… 충분히 당신에게 안달내고 있다고요.” “삐졌어요?” “네. 그러니까 또 그러면 이번엔 뽀뽀로 안 넘어갈 거니까요. 술래잡기는 오늘만 해요.” 다음에도 또 이러면 저 숨 넘어갈지도 모른다고요. 투덜거리며 센츄리온이 팬텀의 가슴에 툭 뺨을 기댔다. 이럴 땐 어린애 같다니까. 웃으며 팬텀이 부슬부슬한 금발을 어루만졌다. “아쉽네요. 나름 재밌었는데.” “…이런 게 취향이에요?” “전 늘 쫓는 쪽이었으니까요. 사냥감이 된 기분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다음에 잡히면 뽀뽀로 안 넘어간다니까요?” “그럼 그때는요?” 센츄리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늘 제가 쥐고 흔들던 팬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얄밉게 웃는 표정. 제가 고스란히 비치는, 평소보다 날이 누그러진 눈매. 부루퉁하게 그를 노려보던 센츄리온이 결국 먼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를 이기지 못할 모양이었다. “일단 지금부터 즐기고요.” 못한 만큼 잔뜩 해주고 싶으니까요. 말을 맺으며 센츄리온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팬텀이 조그맣게 소리내어 웃었다. 다시 맞댄 입술은 거짓말처럼 달았다. 사랑 같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