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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셰인)진실게임 ll
Caption 진실게임 다른 편과 이어지지만 앞편은 안 읽어도 무방합니다. 6화 엔딩 이후 시점으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진실게임 할래?” 일리야가 고개를 들었다. 까만 단추처럼 매끈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따끈한 배에 손을 얹고 배부른 고양이처럼 졸고 있던 탓에, 일리야는 셰인의 말을 뒤늦게 이해했다. 부스스해진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셰인이 픽 웃음을 흘렸다.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인 단단한 손가락에 결 좋게 구부러진 머리카락이 휘감겼다. 눈을 느리게 꿈뻑이던 일리야가 작게 하품하며 그 손가락에 머리를 문질렀다. “왜?” “그냥. 갑자기 떠올랐어.” “평범하게 물어보면 되잖아.” “네가 재미없어 할까 봐.” “넌 내가……” 맨날 거짓말만 하는 것 같아? 그러나 일리야는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셰인이 먼저 장난을 거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귀한 일이었다. 게다가 웃음기를 머금고 휘어진 예쁜 눈길이 더해지니, 거절할 명분도 없거니와 굳이 버티고 설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셰인에게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일리야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셰인의 손을 잡아당겨 단단히 깍지낀 그는, 이제 결승전의 빙판에라도 올라선 양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아. 뭐가 궁금해?” “너 내 요가 영상 봤댔잖아.” “그랬지.” “얼마나 봤어? 다른 영상도 봤어? 그러니까… 내가 찍은 광고들 말이야.” “……오.” 일리야가 애매한 소리를 흘렸다. 귀신 같이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눈치챈 셰인이 그와 깍지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 말을 고르던 일리야가 어깨를 과장되게 으쓱였다. “전에 말 안 했나? 잠 안 올 때 봤다니까.” “내가 물어본 건 횟수야. 그 때마다 매번 보진 않았을 거 아냐.” “…….” “……설마 진짜로?” 되묻는 셰인에게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일자로 굳은 입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미묘하게 뒤틀린 두 입술이 서로 엉망으로 겹쳐지고 뭉그러졌다. 누가 봐도 웃음을 간신히 참는 모양새였다. 망할. 일리야가 속으로 욕을 뇌까렸다. 갑자기 이런 표정은 반칙이지. 비장한 결심이 무색할 만큼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일리야가 지지 않고 반격했다. “잠깐. 이건 반칙이야. 질문을 한 번에 두 개나 물어봤잖아.” “…난 처음부터 한 개만 물어보겠다고 한 적 없어. 너도 두 개 물어봐.” “이렇게 나올 거야? 게임이라며?” 일리야 스스로도 구차한 주장이었다. 셰인은 반박도 않고, 도리어 더해보라는 듯 손을 놓고 팔짱까지 꼈다. 일리야는 살면서 처음으로 제 귓바퀴가 불 붙은 듯이 타들어가는 걸 느꼈다. 더없이 즐겁다는 듯 웃고 있는 그를 마주보고 있자니 심장까지 제멋대로 쿵쾅댔다. 일리야는 뛰어난 하키 선수였지만 골텐더의 재능까지 갖춘 건 아니었다. 상대가 침대 위의 셰인이라면 그건 이미 진 싸움이었다. “……그래. 생각날 때마다 봤다. 횟수는 기억 안 나. 누가 평생 먹은 수면제 개수를 다 기억할 수 있겠어?” 까만 단추처럼 반짝이던 눈동자가 차츰 동그래졌다. 패배를 인정한 일리야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부끄러움에 말문이 막히기 전에 다 털어내려는 듯했다. “다른 것도 봤냐고? 당연하잖아. 네가 찍은 광고가 한 두 개야? 롤렉스에 파워드링크에, 난 네가 경기를 한 번이라도 빼먹었다면 모델로 전직한 거냐고 놀릴 생각도 했었는데. 그럴 기회는 안 주더라.” “……….”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혼자 할 땐 안 봤어. 아니, 안 했어. 볼 때마다 예뻐서 미칠 거 같긴 했는데,” 이번에도 일리야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셰인이 그를 끌어당겨 눕히곤 위로 올라탄 탓이었다. 그는 이제 웃음을 참는지 울음을 참는지 모를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리야가 바보처럼 열어두었던 입을 다물며 침을 삼켰다. 셰인이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숨결보다 먼저 스친 코 끝의 감촉이 선명했다. “그럼 왜 봤어?” 일리야는 또 골을 허용했다. 불가항력이었다. “네가 보고 싶은데 어떡해.” “…….” “그거라도 안 보면 미칠 거 같았단 말이야.” 마지막 말은 흡사 투정 같았다. 새카만 눈동자에 별빛 같은 물기가 어리나 싶더니, 셰인은 다행히 눈물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낮게 한숨을 내쉰 일리야가 그의 턱을 잡아당겼다. 짧고 강렬한 입맞춤에 호흡과 타액이 같은 온도로 뒤엉켰다. 먼저 입을 뗀 셰인이 그와 이마를 툭 맞대었다. “넌 질문할 거 없어?” “음… 당장은 없어. 킵은 안 돼?” “한 개만 봐줄게.” “오, 셰인… 네가 먼저 날 두들겨놨잖아. 진짜 이럴 거야?” 입을 비죽거리던 일리야가 대뜸 셰인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니면 대답 대신 다른 걸로 주든가. 원하는 건 확실히 있거든.” 습관처럼 엿이나 먹으라고 말하려던 셰인은 결국 또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일리야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번 키스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길고 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