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습니다.”
말을 전하는 알프레드의 표정은 미묘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전달하고 싶은 마음과 이걸 들으면 주인이 분명 기뻐하리라는 믿음이 아직도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에 돌아올 자가 누가 있지. 디오는 반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부친께서는 운명하신지 몇 천 년도 더 되었고, 레이는 바로 어제 다녀간 참이었으니 저런 뉘앙스는 이상했다. 영지를 나간 고용인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보던 디오의 입매가 문득 씰룩였다. 짙은 자색의 눈이 집사를 향했다.
“예. 생각하고 계신 그가 맞습니다.”
디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이 흔들리며 쌓여 있던 서류가 흐트러졌지만 알 바 아니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며 디오가 그를 불렀다. 걸음걸이 만큼이나 조급한 목소리였다.
“알프레드.”
“예. 모셔다 드렸습니다.”
뜻을 전달하는 데 말이 많이 필요 없다는 건 때때로 감동으로 돌아온다. 디오는 눈빛으로 감사함을 표하곤 복도로 튀어나갔다. 버닝캐니언의 영주로서 지낸지 수 년, 위엄 있는 몸가짐은 쉬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앞서는 그리움이 어설프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응접실을 지나쳐 디오는 계속 걸었다. 그는 마기가 짙게 배어 있는 장소를 싫어했고, 그건 이 저택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에서 짠내가 싫다고 하는 것만큼 억지였고, 그도 알고 있었지만, 디오가 사내를 떠올리는 날이면 그 투정도 함께 들려오곤 했다. 그래서 디오는 꽤 오랜 시간을 걸려 그 방을 손보았다. 겉보기엔 평범한, 그러나 무수한 마법진과 결계로 뒤덮인 문을 열어젖힌 디오가 발을 내디뎠다. 우습게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
둘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지크하트만이 팔짱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을 따름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봤던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십대 후반에서 넓게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용모와, 성장이 막 끝난 듯한 늘씬하고 긴 팔다리. 양 어깨에 대충 걸친 코트와 등에 대강 매어둔 대검도 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눈빛일까. 디오는 그의 눈을 그 무엇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부분 증오와 혐오, 살의로 뒤덮여 있었으나, 그 사이에서 기적처럼 피어난 감정을 드물게 비치던 눈동자. 거짓말처럼 차분해진 눈에는 옛날의 그라면 생각할 수 없는 고요와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점차 수면에 잠기듯, 느리게 차오르는 익숙한 감정의 모양. 아마 자신도 같은 눈을 하고 있겠지. 디오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많이 바꿔놨네.”
기껏 다가오는 이를 보며 한다는 게 고개를 돌리며 엉뚱한 말 내뱉기다. 그답기는 했다.
“네가 마기가 싫다고 해서. 인간이 사는 방으로 만들어보려 했다.”
“가구가 바뀐 이유는? 먼지도 없던데.”
디오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참았다. 하지만 아주 잠깐 머물렀을 뿐인 방의 구조를 기억해주는 말이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언제 돌아올지 몰랐으니 말이다. 늘 관리해두어야 바로 쓸 수 있지 않겠나.”
“네놈이 그런 귀찮음을 다 감내하는 성격인줄은 몰랐는걸.”
사내는, 지크하트는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눈썹이 익숙한 삐딱한 모양새로 기울었다.
“뭐야. 너 키 컸냐?”
“한창 클 나이였지. 더 클 거다.”
“짜증나네~! 다가오지 마! 떨어져!”
“사소한 거에 일일이 집착하지 마라, 하이랜더.”
“뭐 인마!”
디오가 성큼 다가섰다. 지크하트가 물러설 틈도 주지 않았다. 그의 허리는 일반인들보다 굵고 단단했으나 디오의 팔뚝에 비하면 한줌이었다. 불만을 토로하려 열린 입술이 곧장 삼켜졌다. 가장하던 담담함이 섞이는 숨결에 여지 없이 녹아내렸다. 그를 밀어낼 듯하던 손이 디오의 어깨를 꾹 쥐며 멈추었다. 몇 백 년만의 재회일까. 혹은 벌써 천 년이 지났을지도 몰랐다. 오랜 삶을 사는 이들은 구태여 기다림을 세지 않았으나 쌓여가는 그리움을 해소할 줄은 몰랐다. 당장 만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서로를 헤집고 훑는 감촉과 열로 서로를 확인할 뿐.
입술이 떨어졌다. 디오는 아직도 그의 허리를 꼭 안고 있었다.
“너도 키가 크는 걸 상상했었지. 침대도 바꿔놨다. 혼자 자기엔 조금 클지도 모르겠어.”
“…….”
“짐을 많이 들고 오는 것도 기대했었다. 이제부터 여기에 살 거라든가, 불만은 있어도 넣어두라든가… 그런 시건방진 말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감동 밀려오다가 도로 사라지게 하네.”
지크하트가 투덜거리며 그를 밀었다. 물론 디오는 요지부동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지크하트가 내렸던 시선을 들어올렸다.
“변하지 않아서 실망했냐?”
“넌 내가 변해서 실망했나?”
“기대도 안 했는데 실망은 무슨.”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네놈은 진짜 최고로 짜증나고 화나는 마족이야.”
지크하트는 한 단어 한 단어 정성스레 힘을 주어 내뱉었다. 디오는 픽 웃고 말았다. 그의 반어적 애정 표현에 일일이 반응하던 것도 옛날이었다. 디오가 팔에 힘을 주었다. 지크하트는 거부하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
품에 그를 꽉 채우고 나서야 진심이 흘러나왔다.
“……에르.”
그리운 애칭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만 허락해주던 이 이름을 얼마나 부르고 싶어했던가. 지크하트가 품에 머리를 기대는 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좋았다. 그를 위해 준비해온 방에서. 그와 함께. 디오는 눈을 감았다. 귓가에 나지막하게, 퍼즐조각처럼 그의 인사가 맞춰졌다.
“나도. 디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