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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을 위해 연재를 강행합니다.
페이트 기반 지크프리트(단테님 자캐) x 파에톤(눙님 자캐)의 2차 창작입니다.
창공의 폴라리스와 이어지는 스토리로, 창공의 폴라리스를 읽고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천逆天의 폴라리스
지크프리트 x 파에톤?
마브로스와 아스프로스는 파에톤을 위해 태어난 천마나 다름없었다. 마브로스는 힘이 넘치고 사나웠으며 까탈스러웠으나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일탈하지 않았다. 아스프로스는 차분하며 온화하였으나 길을 방해하는 것이 있으면 발굽질도 서슴지 않을 만큼 단호하였다.
두 천마의 비호 아래 파에톤은 아버지 태양신이 내놓은 길을 따라 마차를 몰았다. 너무 높게 날지도, 너무 낮게 날지도 않았으며 일부 별자리들은 마차의 주인이 바뀐 줄도 모를 만큼 평온했다.
파에톤이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을 즈음이었다. 두 태양신의 광휘로 뜨겁게 달아오른 차륜이 불안하게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지크프리트는 화를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파에톤이다. 모습이 어쨌든 어떤 삶을 살았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함부로 말하는 '토니' 역시, 아니, 파에톤보다 더 소중했다. 구원받았다 하더라도 그가 스스로의 잘못을 외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돌이킬 방법도 없다고, 그 세계로 돌아갈 방법조차 없는 현실을 묵묵히 삭히며 살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곳의 '파에톤'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다른 거지."
근본적인 질문을 곱씹으며 지크프리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그가 오리온과 만났던 호수 근처였다. 거대한 모래 더미 뒤에 몸을 숨기듯 앉은 지크프리트가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팔찌에 박힌 금색의 보석은 이미 빛을 잃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고, 그 모양을 푸른 보석이 애타게 쫓고 있었다. 행여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금이 간 보석을 떼어낸 지크프리트가 그것을 주머니에 소중히 챙겨넣었다.
다그닥
"음?"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 따라왔는지, 마브로스가 한껏 거만한 표정으로 목을 쳐들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의 등을 살핀 지크프리트는, 파에톤이 없는 걸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 주인이 보냈나? 지금은 갈 생각이 없다. 잠시 내버려뒀음 좋겠군."
마브로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지크프리트의 다리를 발굽으로 툭툭 쳤다. 마치 옆으로 좀 비키라고 말하는 듯했다. 지크프리트는 어처구니 없단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옆으로 살짝 비켜앉았다. 털털한 사내처럼 풀썩 주저앉은 마브로스가 긴 다리를 구부려 앉으며 긴 목을 부드럽게 털었다. 설마 나를 위로해주러 온 건가. 피식 웃은 지크프리트가 한쪽 무릎을 쭉 펴며 모래 더미에 슬쩍 등을 기댔다.
"정말이지, 너나 아스프로스와 말이 통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썩!"
지크프리트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자세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마브로스가 육중한 머리를 그에게 들이받듯이 기댄 탓이었다. 일반 말보다도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숨도 못 쉬고 있던 지크프리트가 겨우 몸을 반쯤 빼냈다. 거대한 별처럼 꿈뻑이는 눈이 반달로 휘었다. 이 자식! 지크프리트가 이를 갈았다. 주인을 닮아 얄밉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꺼져!"
마브로스는 못 들은 척했다. 지크프리트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앉자 마브로스는 천연덕스럽게 그의 허벅지에 대가리를 턱 얹어놓았다. 빠져나오는 데만 힘을 다 쓴 지크프리트가 도끼눈을 하고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말을 상대로 성을 내는 것도, 예민한 애를 상대로 기싸움을 하는 것도 전부 어리석은 짓이었다.
"...토니와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나한테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 녀석은 그 애밖에 없으니까."
지크프리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없는 하늘은 여전히 뜨겁고 높았다.
"파에톤의 마음을 이해 못할 건 아니야. 말은 못되게 했지만, 실제로 도움이 안 되었으니 답답했겠지. 어쩌면... 나에게 좀 기대했을 수도 있고."
마브로스가 작게 콧바람을 뿜었다. 지크프리트는 그것을 동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변엔 적들 뿐이고, 땅은 아직도 태양빛에 타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건 자기 자신... 보통 사람은 견디기도 어려운 압박감을 느낄 테지. 그가 날카롭게 구는 것도 당연해."
마브로스가 다시금 체중을 실어 그를 눌러왔다. 마치 그걸 다 알면서 그렇게 화를 냈냐고 말하는 듯했다. 정도를 모르는 말이 자신을 짓누르기 전에 지크프리트가 황급히 덧붙였다.
"나한테도 토니는 예민한 주제란 말이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연인이 욕을 먹는 걸 그냥 보고 있으란 건가?"
마브로스가 황당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애한테 그렇게 화를 냈다고?
"그것과 그건 다르지! 나는 상대가 토니라면 전력으로 싸운다! 그것이 같은 파에톤일지라됵!!"
마브로스가 기어이 긴 머리를 휘둘러 지크프리트를 후려쳤다. 모래 더미에 푹 파묻힌 지크프리트의 코에서 붉은 물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지크프리트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번이나 혀를 씹은 탓에 입안에서도 묘하게 피맛이 나는 듯했다.
"......이상하군."
쓸데없는 것을 치운 장수처럼 의연하게 갈기를 털던 마브로스가 지크프리트를 흘겨보았다. 지크프리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까 하던 바보 같은 말다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난 그렇다치더라도, 왜 별자리들까지 파에톤에게 그렇게 진심인 거지?"
너무 세게 받아서 미쳤나. 마브로스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분명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지크프리트가 소매로 코피를 대강 훔쳤다.
"생각할수록 이상하군. 나야 파에톤에게 정이 있으니 이러는 거지만... 잠깐. 멈춰라. 또 들이받지 마. 어쨌든 파에톤이 하늘로 올라가려는 이유는 정당해. 설령 진의가 의심스럽더라도, 결국 파에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들만 손해야. 결국 그들도 못 돌아갈 테니까."
지크프리트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입술과 턱에 남은 핏자국을 마구 문질러 닦아냈다.
"파에톤은 어차피 저주 때문에 별자리들에게 저항할 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그를 죽이려 하는 거지? 그가 태양을 훔쳐 달아날 거라고 굳게 믿을 이유가 있나?"
마브로스가 껑충 뛰듯이 다리를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지크프리트를 한참 바라보던 그가 발굽으로 동그란 원을 그렸다. 지크프리트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 나라의 언어도 아닌 말로 떠들었으나 지크프리트는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그가 원하는 답을 갖고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마브로스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곤, 동그란 원을 하나 더 그렸다. 그리고 먼저 그린 원을 밟았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몇 번이고.
"......음."
지크프리트가 팔짱을 꼈다.
"모르겠군."
푸르릉...
바보...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마브로스의 경멸어린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지크프리트가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그들이 파에톤을 믿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단 거지? 그의 적은 별자리가 다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마브로스는 혀를 차듯 푸르릉 거리고는 먼저 휙 몸을 돌렸다. 코피가 멎었는지 확인한 지크프리트가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곤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있던 세계와 지금 존재하는 세계. 그 두 세계를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파에톤'이었다. 그가 얽힌 일, 마치 그를 거부하는 듯한 세계의 일면에 분명 돌아갈 열쇠가 있다.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토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파에톤은 동굴에 없었다. 아스프로스도 없었다. 떠날 때보다 지친 몰골로 돌아온 지크프리트가 불이 꺼진 장작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를 놔두고 먼저 가버린 마브로스는 태연하게 마른 건초를 씹고 있었다.
"사실 말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거 아닌가? 파에톤이 있어서 점잖은 체 하는 거면 본색을 드러내지 그래."
시비조가 명백한 지크프리트의 말에 마브로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지크프리트가 그를 노려보았다.
"못 알아듣겠다고 시치미라도 떼려는 건가? 난 이 세계 말도 할 줄 안다. 어디 끝까지 모르는 체 해보시지. 내가 나중에 기필코..."
"뭐해?"
지크프리트가 고개를 돌렸다. 마침 아스프로스를 끌고 들어온 파에톤이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또 마차 조각을 찾고 온 건지 허리춤에 찬 주머니가 묵직했다.
"우리 애들이 좀 똑똑하긴 한데, 말은 할 줄 몰라. 말이잖아."
"......"
"너무 바보 취급해서 화나서 그러는 건 아니지?"
지크프리트는 시간을 딱 5분만 되돌려 자신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안으로 들어온 파에톤이 허리에 매고 들어온 주머니를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습관처럼 장작을 비벼 불을 붙이는 동안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크프리트는 방금 전 곱씹어보던 것을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자신이 어른스럽게 한 발 물러날 때였다.
"......아까는,"
"내가 미안했다."
파에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반응에 놀란 건 지크프리트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에 재차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왜?"
"...왜냐니?"
"왜 당신이 사과하는데?"
지크프리트가 눈을 깜빡거렸다. 파에톤이 얼굴을 한껏 우그러뜨렸다. 순서를 빼앗긴 아이처럼 몹시 억울하고 분한 표정이었다.
"미안해하지 마. 사과하지 마."
"...그렇지만,"
"사과하지 마!!!"
빽 소리를 지른 파에톤이 분함을 못 참고 씩씩거렸다. 어안이벙벙해진 지크프리트에게 파에톤의 잔소리가 우다다다 쏟아졌다.
"아니, 당신이 그러니까 버릇이 나빠지는 거 아냐! 오냐오냐 하지 말라고! 아까 그건 내가 잘못한 게 맞잖아! 그럼 그건 아니다 이런 건 안 넘어가준다 하고 버티든 한 번 더 화를 내든 해야지!!"
"......."
"당신 자아가 없어? 화낼 줄 몰라? 아니, 오리온한테는 잘만 그러더니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그런 친절 필요없고 절대 사양이거든! 나도 아까 일은 실수했다는 자각은 있었으니까!"
어찌나 말을 정신없이 늘어놓았는지 말을 끝맺을 즈음의 파에톤은 열이 올라 빨갛게 익어 있었다. 눈 깜빡이는 것도 잊고 그를 빤히 응시하던 지크프리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너무 화를 냈다는 걸 깨달은 파에톤이 움찔했다.
"풋"
"웃지 마!!"
주춤 밀려오던 후회가 금방 분노로 바뀌었다. 웃음을 감추지 못한 지크프리트가 후련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자아가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부탁을 들어주는 게 익숙하긴 하지만... 예전엔 정말로, 뭐든지 받아주면서 살다가 한 번 혼난 적이 있어서 말이다. 요즘은 무작정 받아주진 않아."
"그럼 왜? 토니 때문에?"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 너도 파에톤이니까."
파에톤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하나는 더 단순한 이유야. 너의 처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바닥을 향했던 파에톤의 시선이 도로 그에게 향했다.
"네가 파에톤이기 이전에... 네가 혼자서 감당키 어려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연관없는 누군가였어도 도와주고 싶었을 거야."
"......"
"뭐, 파에톤이어서 어리광을 더 받아준 것도 있긴 하지만... 크흠. 어쨌든, 난 내가 무리하게 머리를 숙여가면서 사과했다곤 생각하지 않아."
지크프리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마무리지었다. 입마저 벌리고 멍청하게 서 있던 파에톤이 다시금 눈썹을 찌푸렸다. 지크프리트는 일순 그에게서 토니를 보았다. 부끄러워하거나 쑥쓰러워할 때, 그러나 그것을 티내고 싶어하지 않을 때 곧잘 짓던 표정이었다.
"이상한 사람."
지크프리트는 소리없이 웃었다.
"익숙한 평가다."
파에톤은 주머니를 마구 뒤져선 뭔가를 꺼내 던졌다. 일전에 지크프리트가 물을 뜰 때 썼던 뿔 안에 마른 과일이 들어 있었다.
"이거나 먹어."
"너는?"
"신경 꺼."
지크프리트는 더 말하지 않고 과일을 베어물었다. 수분이 없어 퍼석했지만 상하지도 맛이 나쁘지도 않았다. 입을 꾹 다문 파에톤이 홀쭉한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입에 든 것을 꿀꺽 삼킨 지크프리트가 돌연 표정을 굳혔다.
"넌 왜 사과 안 하나."
"......당신이 먼저 했잖아."
"아니지. 토니에 대해서 말한 건 사과해라."
"이제 와서?"
"사과해라. 난 몰라도 내 토니에 대해서 함부로 말한 건 못 참아. 사과하지 않으면 켄타로우스의 꼬리털이라고 부를 테다."
파에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빽 내지른 목소리에 짜증이 심술처럼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죽어도 사과하나 봐라!! 이 끈질긴 바다뱀 허물 같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