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로 자하는 말이 많아졌다. 원래도 많았지만, 온갖 시시콜콜한 것부터 자신은 상상도 못했던 것들까지. 어떨 때는 그 끈질긴 집착이 짜증나 입을 다물고 버티고 있으면, 바짝 붙어 끌어안고선 대답해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 게 얄밉기 짝이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설영랑은 입맞춤 해봤어?”
“저기요, 지금 대낮이거든요?”
“그래, 말하는 걸 보니 안 해봤구나. 아니 얼굴도 훤칠하게 잘생겨서는 어떻게 아직까지도 접문 한 번을 못 해봤어 그래?”
반박하고 싶은데 틀린 말도 아니고, 오묘한 칭찬까지 끼어 있어서 더더욱 할 말이 줄어들자 설영은 죽을 맛이었다. 서로 좋아한다고 말해봤자 뭐하나, 혓바닥으로 놀아나기엔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러는 상선께선 꽤나 자신 있으시네요. 몇 명이나 해보셨나요?”
“다짜고짜 무례하네, 설영랑. 그럴 땐 해본 적 있느냐고 물어봐야지.”
“이미 답 나온 질문을 뭐하러 합니까?”
“그도 그런가? 아, 그럼 설영랑, 첫 입맞춤에 대한 환상 같은 건? 한 번도 안 해봤다며. 궁금하지 않아?”
설영이 미간을 구겼다.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날카로워졌다.
“안 궁금한데요.”
“…….”
“평범하게 관심이 없을 뿐이니까 딱하고 안타깝단 눈으로 보지 말아주실래요? 진짜 짜증나거든요?”
설영이 성난 고양이처럼 자하 품에서 나가려고 발버둥쳤다. 분명 체격차는 크게 안 나는데도 이 사내는 어찌나 힘이 좋은지, 설영도 나름 힘 쓰는 일에는 뒤쳐지지 않는데도 자하는 돌부처마냥 꼼짝을 안 했다. 볼썽사납게 체력만 낭비한 설영이 결국 먼저 백기를 들었다. 자하가 만족스럽게 웃음 지었다.
“재밌었는데. 더 안 할 거야?”
“…….”
“알겠어, 알겠어.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그런데 나도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거든? 반응이 귀여워서 놀려버렸지만.”
꼭 이 남자는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여서 사람 속을 긁는 재주가 있었다. 뚱하니 그를 노려보던 설영이 문득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장난기를 지우고 다정한 미소만을 머금은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직도 모른 체할 거야?”
“뭐…가요.”
“너랑 접문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
모를 리가 없지. 며칠 전부터 자하가 제 입술을 가끔 뚫어져라 보는 시선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인 사이에 그 정도야 못할 것도 아니고. 다만 설영도, 정말로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는 성미라. 담백하거나 금욕적이라기보단, 그동안 살아오며 생존과 수련 외에는 신경을 쓸 틈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여기저기 자신을 싫어하는 녀석들 천지고, 백호영도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밤낮이고 죽도록 수련해야 했는데 정인과의 낭만이고 뭐고 상상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하기는 싫었다. 자하는 동정하지 않겠지만… 이 남자라면 분명 그걸로 두고두고 놀리며 그의 속을 뒤집어 놓을 테니까.
“나 지금 엄청 진지한데.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두고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해?”
니 생각이요. 니 생각. 심통난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설영이 시선을 피했다.
“…그치만 정말로, 상상한 적도 없고… 막상 한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어떤 건지는 알 거 아냐?”
“이론과 실전은 다르잖아요. 분위기를 어떻게 잡아야할지도 모르겠고, …착각할까봐 말해두는 건데, 저도 그, …안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늘…”
쪽.
방금 뭔가가 입술에 닿지 않았나? 설영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러나 자하는 여전히 웃는 얼굴 그대로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계속 말해봐.”
“……그…러니까, …저도 승려도 아니고, 당연히… 할 마음은 있는데, 이게 당신처럼 쉽게 말로 나오지가 않아서…”
쪽.
“응, 그래서?”
설영은 자신을 등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자하가 어느새 그와 정면에서 마주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분명 입술이 닿은 것 같은데. 정말 닿았는데? 자하가 계속 말을 시키니 뇌가 꼬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굳이… 상상하라면…”
“응.”
“뭔가 자연스럽게… 그… 검술 수련도 아니고, 뭔가 비장하게 시작하는 건 조금… 우스꽝스러울 것 같아서…”
쪽. 쪽.
머리에 살살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뺨이 화끈거리고 귀가 홧홧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가 그를 가둘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영은 무심코 자하의 옷깃을 쥐어잡았다.
“듣고 있어. 계속해.”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들리는 속삭임은 마치 술처럼 감미로웠다. 온갖 유령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갈피를 못 잡고 동요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억지로 하거나, 밀어붙이지 않고… 그러니까… 대화중이라든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든가…”
쪽.
이번 접촉은 유달리 길었다. 맞댄 입술의 틈으로 자하의 숨결이 밀려들었다. 뒤죽박죽 엉켜 있던 사고가 이젠 백지처럼 새하얬다. 입술을 맞대고서 자하가 속삭였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설영의 손을 자하의 커다란 손이 덮어 감싸쥐었다.
“지금처럼? 말하다가, 자연스럽게?”
“…네, 그… 그러니까, 그게 …상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설영이 참다 못해 그를 밀어내려는 순간이었다. 그를 바짝 끌어당기며 자하가 입을 빈틈없이 붙여왔다. 말캉하고 따뜻한 살덩이가 무방비하게 벌어진 틈으로 밀려들었다. 뻣뻣하게 굳은 혀를 휘감고, 달래듯 문지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작은 입 안을 헤집으며 치열이며 잇몸을 간질이듯 훑고 있었다.
“으응—…”
설영은 제가 콧소리를 내는 줄도 몰랐다. 그저 주저앉지 않기 위해, 자하를 꽉 붙들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혀가 진득하게 얽히자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설영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빨다가 살짝 깨물며 떨어진 자하가 속삭였다.
“눈 감아야지.”
설영의 어깨가 보일 정도로 움찔거렸다. 초점을 잃고 방황하던 눈이 질끈 감겼다.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차마 뜰 용기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가 자신의 팔을 당겨 그의 목을 감싸도록 두르는 게 느껴졌다. 옳지. 착하네. 숨결과 함께 고스란히 닿는 목소리가 마치 주박 같았다. 전신이 처음 느끼는 감각으로 저릿하고 간지러웠다.
“음, 응… 읏…”
다시금 파고든 혀가 느긋하게 여린 살을 따라 움직였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은 살점이 닿을 때마다 적나라한 마찰음이 귓가를 울렸다. 설영이 매달리듯 자하의 목을 끌어당겼다. 차단된 시야 속에서 자하의 숨결과 열기만이 오롯하게 선명했다. 그가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몸이 완전히 자하에게 기대었다. 고르고 정갈한 이가 살살 부어오르는 입술을 약하게 물었다. 일순 정전기가 이는 듯이 손끝이 찌릿거렸다.
“아…!”
마침내 풀려난 입술에서 터진 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낯설기 짝이 없었다. 힘겹게 눈꺼풀을 깜빡거리자 여즉 가까운 거리에서 자하가 그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반쯤 벌어진 채 흐트러진 호흡을 내뱉던 입술에 고여 있던 마지막 방울이 톡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
“…귀여워.”
웃음기가 실린 어조로 말하며 자하가 다시금 이마와 뺨, 콧등에 연거푸 입을 맞췄다.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때? 첫 접문의 소감은.”
설영은 대답 대신 발꿈치를 들어올렸다. 자하는 놀라지도 않고 소리없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이야기하면서도, 처음이 아닌 것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그저 온 감각을 그에게 내맡기고서. 상상보다 달콤한 현실이 이어진 입 안을 그득하게 채웠다.








